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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모다 Mar 19. 2024

연습 말고 연구

소리를 만들기 위한 여정 

  

잘못된 시작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진척이 별로 없는 데다, 처음 어쭙잖게 시작하면서 습득한 나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악기는 처음에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새로운 습관을 익히는데 걸리는 것의 몇 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는 잘못된 시작 덕분에 아직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수 차례 그만둘까 고민했는데도 운명처럼 아직 이 악기를 붙들고 있다. 

  

멋모르고 시작하면서 어쭙잖은 흉내를 내다 제대로 레슨을 하게 되면서 돌고 돌아 다시 기초를 익히는 중이다. 왼손의 정확한 현의 위치선정과 손, 손목의 모양, 위치 그리고 팔의 움직임과 함께 오른손의 활 쓰기가 함께 만들어내는 음은 다채롭다. 원하는 음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자세, 정확한 손의 위치, 그리고 정확한 활 쓰기가 전제조건이다. 특히 왼손의 4번 손가락 즉 새끼손가락은 가장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제일 끝에 붙어 있고, 제일 짧고 작다. 다른 손가락과 함께 연주의 과정에서 동일한 기능을 해야 하기에 새끼손가락이라고 봐주는 건 없다. 소리는 새어나가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병색이 짙은 환자들의 그것으로 들리기도 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건강한 소리,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나이 들어 악기를 시작한다는 것, 그것도 처음에 잘못 접근한 이유로 갖게 된 나쁜 습관이 있을 경우, 이 일은 가성비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극도의 비효율적인 행위, 극도로 어리석어 보이는 이 행위를 위해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웬만해서 내가 내는 소리에 듣는 사람의 귀가 즐겁기가 힘들다. 그저 내 만족, 그것도 아주 드문 경우에만 느끼는 내 만족에 불과하다. 아무도 장려하지 않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나는 더더욱 겸손해지는 지도 모른다. 운명처럼 음악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을 졸졸 따라다니는 탓에 휴휴 한숨을 쉬면서도 나는 바이올린을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연습하지 마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무거운 악기를 들고 레슨을 받으러 가는 내게 어느 날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진다. '갑자기 소리가 다 망가지셨네요' '연습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연습을 많이 해서 오히려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 꽤 연습을 하고 갔는데도 완전히 박살이 나서 돌아온다. 그럴 때면 바이올린을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연습하지 말고 연구하세요 

   

'제대로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하세요. 들으세요. ' 레슨을 받아도 이전의 나쁜 습관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습관적으로 소리를 내며 오래 연습을 하는 것은 백해무익이다.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끙끙거리는 고령의 제자에게 차마 못할 말을 하는 선생님의 마음도 참 힘들 것 같다. 필요한 말은 언제나 가시처럼 아프니까. 중간에서 포기하면 모를까 제대로 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면 박살이 나는 아픔을 통과해야 한다. 어렵고 아프다. 

 

널 놓지 않을래 


그런데 그 어려운 악기가 조금씩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고통스러운데 나를 매혹한다. 소리를 터득하는 과정은 마치 수련을 하는 것과 같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심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것과 같다. 그 지난한 과정의 희열이 있다. 나는 아직 그것을 잘 알지 못하지만, 희미한 안개 너머에 나를 부르는 소리에 홀린 듯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순간만큼은 순도 100%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아득해서 아찔한,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바이올린을 나는 오늘도 가까이하고 싶은 바이올린 바라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연습 말고 연구를 하고 싶어 진다. 기계적인 움직임 말고, 진짜 움직임을 배우고 싶다. 바이올린 소리 하나를 만들면서 나는 인생을 생각한다. 


우리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냥 소리 말고 진짜 소리를 지향하듯, 맨날 살아온 대로 살지 말고 지금 여기의 생명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만물은 내게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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