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영 발차기를 하며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 씨의 뛰어난 기량의 이유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 바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는 매일 빠짐없이 몇 시간씩 공차는 훈련을 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거의 감각적으로 공을 찰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적인 거물급의 운동선수, 어떤 분야의 탑에 이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꾸준한 훈련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를 부러워하지만, 과정을 직접 실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상에 오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저 레인에 있는 저분에게 손뼉 쳐주세요!
오늘 나는, 수영장에서 수영강사분에게 칭찬을 받았다. “Good!” 도 모자라, 수영 시간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았다. 동네 수영장에서 벌어진 아주 작은 칭찬이었지만, 춤추는 고래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수영을 잘해서 받은 칭찬이 아니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오전 시간에 강습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20-30대 사람들이다. 이전 같으면 대부분 주부들이 많은 시간인데, 특이한 현상이라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요즘 젊은이들에게 수영이 인기종목이라고 한다. 수영황금세대가 활약하는 시대라서 그런가? 여하튼, 나는 수영장에서 청년들과 함께 강습을 받으니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코로나 시기부터 수영장을 멀리 하면서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수영장에 빈자리가 잘 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다시 건강의 이상신호가 보여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어 기웃거리다 용케 자리가 나서 1월부터 수영강습을 재개할 수 있었다. 자유형, 배영까지는 그래도 배운 것이 있어 따라갈 만했다. 평영, 접영으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도무지 평영은 앞으로 나아가지가 않았다. 킥할 때 힘을 주라고 하는데 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발차기가 거의 전부이니 발차기 연습을 제대로 하라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나만 자꾸 뒤에 쳐지니 낙심이 되기도 하고, 그냥 강습을 받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영법만으로 자유수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싶었다.
일단, 내 상태 그러니까 나이와 체력, 그리고 신체적인 조건등을 받아들였다. 내가 젊은 사람들처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받아들이자! 게다 나는 허리도 부실한 상태라 여러 가지로 악조건이 많다. 나는 꼴찌다! 이렇게 선언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조심스럽게 강사분이 내게 초보자 레인으로 다시 넘어가 키판을 붙들고 발차기연습에 집중하기를 권하셨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속도도 내지 못하고 민폐만 끼칠 일은 아니었다. 낙제를 한 꼴이 되었다.
나는 초보자들이 천천히 키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는 레인에서 평영 발차기 연습을 했다. 강사분은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나는 잘 안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와 함께 시작했던 젊은이들은 내 옆 레인에서 접영을 멋지게 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도무지 진전이 없으니 강사분도 그냥 혼자 연습을 하도록 시간을 허락하는 것 같았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포기하고 그만둔다. 벌써 함께 하다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순간 소위말하는 쪽팔림이 느껴지면 여기서 중도하차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 나이는 도움이 되나 보다. 이게 쪽팔릴 일인가? 내가 계속 연습하지 않고 핑계 대는 것이 쪽팔리는 일이지, 내가 못해서 여전히 초보자 레인에서 발차기만 하고 있는 것이 쪽팔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수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유형과 배영을 꾸준히 연습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다. 자유수영시간에도 내가 연습하는 양을 조금씩 늘여갔다. 처음에는 왕복 50미터를 5바퀴 도는 것도 숨이 차고 힘들었는데, 그것이 7바퀴 10바퀴가 가능해졌고, 15바퀴를 지나 최근에는 17바퀴까지 거의 쉬지 않고 돌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을 키우며 강습시간에는 평영발차기 연습에 집중했다. 마음을 비우고 될 때까지 편하게 해 보자 하는 생각으로 적어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영법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평영만으로 물에 오래 떠 있고 더 오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강사분이 설명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잘 되고 있다는 감이 오기 시작했다. 다리를 오므렸다가 필 때 힘차게 물살을 헤치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하다, 결국 오늘은 칭찬을 받았다. 내가 하는 걸 보고 강사분이 "Good!"이라고 외쳐주셨다.
이 레인 계시다가 저쪽으로 가셨는데, 아주 좋아지고 계십니다.
옆의 청년들이 내게 박수를 쳐주었다. " 와!! 다음 달에는 이쪽 레인으로 오세요!" 청년들에게 격려를 받는다. 그 기분이라니!!
수영만 그렇겠나. 모든 배움에서 필요한 과정이다. 언어를 배울 때도, 운전을 배울 때도, 스케이팅을 할 때도, 축구를 할 때도, 고수가 되고 달인이 되기까지는 오랜 과정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수영이라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운동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함께 하다가 연습시간에 잘 나오지 않다가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연습에 충실히 나오는 사람들은 결국 성과를 보고 끝까지 남아 있는 걸 보게 된다. 청년들 중에도 수영장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성장을 일구어 내고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열심을 다하는지를 보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중도하차를 많이 했던 나였지만, 이번의 기회를 계기로 한번 불가능한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평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면, 접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오리발을 낀 채로 자세를 교정하게 되고, 나비처럼 날아가는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날을 기다린다. 오늘도 우리는 수영강습을 끝내며 이렇게 외친다.
수영을 즐기자!
즐기는 게 마음대로 되나? 한 번의 킥을 포기하지 않고 차는 훈련의 과정이 없다면 즐길 수 없다.
그러니, 무언가 바라는 목표가 있다면,
한걸음 내딛는 행동 그것이 모여서 가능하다.
피와 땀의 대가로 오는 즐거움. 그것이 인생의 신비이다.
천국은 지옥 바로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