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생각을 마주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27년간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겨우 몇 달 떠나 있었다고 어색한 분위기이지만 또 겨우 몇 달이어서 익숙한 분위기가 싫었다. 아, 다시 돌아왔구나.
지난 4개월의 시간이 꿈이라면 정말 꿈이었던 시간이었다. 내 생에 다시 이 같은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책임감이라는 걸 처음으로 내던져 버렸다. 물론 자잘한 것들은 여전히 가방에 매고 다녔지만 말이다. 직장? 일? 돈?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것들은 걱정 뒤편으로 사라졌다. 물론 돈이야 매일 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버리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것들만이라도 가벼워져서 후련했다.
유럽의 생활은 단순했다. 먹고 이동하고 보고 느낀 대로 글을 썼다. 한국에서 신경 써야 하는 것들 상당수를 시선에서 제외시켰다. 경주마들이 달릴 때 쓰는 가리개를 쓰듯 정면만 보고 살았다. 그렇다고 애써 외면한 건 아니었다. 매일 마주하면서도 조금은 덤덤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따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었다. 동시에 매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고민은 하나였다.
뭐 하고 살지?
여행하러 떠난 곳이 일상이 되고, 일상을 떠나 다시 여행지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Reality Blue"라는 걸 경험하고 있다. 차라리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왔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나 보다. 긴 여행으로 돈을 다 까먹고 빚쟁이가 되어 돌아왔다. 가족에게, 지인에게 손을 벌린 결과였다. 자그마치 395만 원. 이제부터 모든 신경은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한 곳에 집중했다.
알바를 2~3개 해볼까? 아니면 쿠팡이나 택배를 뛰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재택알바를 찾아봤다. 대부분 블로그 포스팅이나 문서작업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해오고 있으니 이걸 살릴만한 방법은 없을까? 이제 온통 돈 생각뿐이다. 4개월간 내가 쌓은 건 뭘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흘려보내면서 동시에 나한테 의미 있는 결과물이 될 수 있을까?
일단은 어떤 형태든 글로 남겨볼 생각이다. 내 경험이라 얼마나 강렬한 감동이나 희망을 심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각을 떠올려보자. 나는 왜 살고 싶어 할까? 나는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왜 의미를 먼저 찾으려고 할까? 왜 돈을 버는 건 항상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걸까? 돈을 벌어야 해서 일을 하고 싶진 않은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없을까? 사랑, 꼭 해야할까? 지난 경험과 선택은 가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