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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페토 Apr 28. 2023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관계정리

관계를 이어가는 법

파리로 향하는 비행 전, 차곡차곡 짐을 싸고 있습니다. 잊어버린 건 없는지 계속 목록을 확인하고,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면서 정신없는 한 주입니다. 

당신의 한주는 어떤가요? 걱정 한가득이시라면, 이 편지를 통해 조금 덜어낼 수 있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 Great Ideas, "관계(Relation)"


살아온 환경도, 경험도 다른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까요?







파리로 떠나기 위해 열심히 짐을 싸다가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친한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가, 점심을 먹은 후 바로 차를 몰고 5시간을 달려 부산 장례식장에 도착했어요. 연로하신 큰고모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였어요. 하루 안에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오가면서, 지인들과 친척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끝맺어야 할까요?



보통 중요한 관계들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맺어지는 것 같아요. 최초의 관계, 즉 탄생은 부모에 의해 시작하고, 가족과 평생을 살아가죠. 부모 형제 친척을 선택할 수 없고요. 이런 강제성은 우리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삶을 마치는 죽음, 즉 관계의 단절 또한 마찬가지고요. 누구든 죽음을 원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죽음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은 보통 준비할 새 없이 이루어지나 봐요.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의 관계, 이웃 관계, 혹은 비즈니스 관계 등 모든 관계가 이런 우연성과 강제성을 통해서 시작해요. 그리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붓죠. 그중 하나, 홉스가 이야기 한 사회계약론의 내용이 떠올라요. 




홉스에 따르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던 자연상태의 인간은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하나의 계약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 형태가 국가이고, 이 체제에서 서로의 자유를 동일한 만큼 포기한다는 계약을 맺은 거죠.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기 눈에 선한 대로 행동했지만, 사회계약이 이루어진 이후엔 사회가 동의한 법을 따라야만 하게 되었어요. 



 





  

결혼식이 하나의 예시라고 봐요.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누구도 이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설치한 방어막인 거죠. 각 종교, 문화마다 제각기 성대한 잔치로 이루어지며,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이라는 제도를 배척하는 분위기였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란 인간의 의지로 인해 형성된 관계인 거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혼 또한 인간의 의지임에 동시에 우연성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자유결혼에 한해선, 개인과 개인이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헤어지거나 죽거나 마음이 변하는 등 수많은 변수를 뚫고 혼례를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강제성과 우연성이 맺어주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얼만큼의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원리는 복잡한 우연의 결과 같지만, 그런 우연이 계속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거든요. 결국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요구된다는 기본적인 사실로 돌아가게 되네요.


 



  


혹시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아본 적 있나요? 누구나 튼튼하게 높이 쌓아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흘러내리는 경험을 해봤을 거예요. 그래서 지반부터 튼튼하게 다지지 않으면 높이 쌓인 모래성이 무너져 내릴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진 것 같아요. 친했던, 친한 줄 알았던 관계들이 한순간에 남이 되어버린 경험을 하면서 점점 인간관계라는 것에도 전략이(?) 필요하단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감사하게도 종종 먼저 연락을 주는 친구가 있어요. 바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전화나 카톡을 줘요. 하지만 저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스타일을 고수하죠. 먼저 연락이 와도 답장이 늦거나 간략하게 보내는 사람이었어요. 


 
또 나에겐 이 사람이 전부이지만, 그 사람에겐 나와 같은 관계들이 많다는 걸 깨달으며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것이 과연 알맞은 선택일까 하는 질문도 들어요. 모두에게 적당히 관심을 표현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마음을 다치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이 모든 전략이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내 침상 주위에 남아있을 사람은 가족뿐이겠지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가져보지만, 장례식장에 부리나케 달려와 미안하다고, 더 일찍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눈물로 인사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해요. 각자 일상이 바빠 나누지 못한 이야기 마저 나누자고 상주를 대신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지인도 있을 거고요. 죽어서 다 듣진 못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그래도 뿌듯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연히 지금의 관계들 속으로 툭 떨어진 건 아닐까, 상황과 주변 관계들에 절망하며 더 좋은 것들을 바라던 때가 있었어요. 매번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사이가 넘쳐났죠. 태어날 때부터 죽음까지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맺어진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지 정도는 선택할 수 있죠. 항상 웃으며 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고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안부 전화 정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웃과 눈 마주쳤을 때 고갯짓 정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금상첨화이고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편하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한창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누가 평생 같이 갈 내 편인지 따져본 적이 있어요. 일 년에 몇 번 연락하는지, 전화 통화나 직접 만나는 횟수는 얼마나 되는지 기준을 세웠어요.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정작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요.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거나 거절당할까 봐 지레 겁먹고 미뤘던 거죠. 그래서 오늘 아침엔 카톡을 남기기로 했어요. 매일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던 친구에게요. 







당신도 차마 미안해서


혹은 너무 바빠서 연락을 미루던 친구가 있지는 않나요?


비 내리는 오늘, 날씨의 감성을 탓하며 먼저 연락해 보는 건 어떨까요?








떠오른 작품이 있어 공유합니다.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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