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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 Mar 17. 2024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최근에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음... 뭐랄까 사탕발림이 가득한 유튜브와 자기계발서적 속에서 정말 맛이 고약한 한약을 먹고 정신이 차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출처: 알라딘)


나를 정면으로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 동안 계속 풀리지 않는 켕기는 느낌이 나를 땅으로 잡아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그 느낌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한국 사회에서의 아웃사이더"로 정의를 스스로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하고 있었다.

유난히 잘 맞지 않았던 한국에서의 중고등학교 교육, 한국 친구들보다는 외국인 친구들과 더 편한 모습들, 한국의 삶보다 더 편하고 행복해서 떠나기 싫었던 해외살이, 정말 친한 한국 친구들 또한 "한국 사회에서의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었고, 술자리보다는 춤을 출 수 있는 파티를 더 좋아하고, 자동차 소음과 스카이라인이 보이지 않는 고층빌딩이 가득한 서울보다는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유럽 소도시가 더 좋아서 언젠가는 서울을 꼭 벗어나리라 수도 없이 다짐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를 "한국과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해외가 더 잘 맞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겪는 여러 심리적 · 상황적 어려움들을 그닥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해외에 나가면 좀 나아지겠지, 라며 한국 사회를 탓하곤 했었지.


유튜브를 켜면 가득 나오는 10분 정도 길이의 자기계발/라이프스타일 유튜버들의 영상들은 그런 나의 태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영상들이 나쁘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 자아가 정말 희미해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을 시작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튜브는 나에게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을 정면으로 볼 용기를 얻었고, 우울증과 자기 의심으로 가득했을 때 유튜브의 영상들은 나의 핸드폰 속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사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본인에게 맞는 라이프스타일과 일이 있고, 그것을 찾아야 하고, 그러면 현재의 문제들이 (많이) 해결될 것이라는 메세지들.


나는 바로 위의 메세지에 공감하고, 추구해야 하는 삶의 태도라고 믿는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들을 제대로 바라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떻게 해외에 나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태도로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결점이 많은 인간이다. 허세가 가득하고, 논리적인 비약을 좋아하며,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인간. 하지만 이러한 결점들은 뒤집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자신감이 있고, 창의적이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줄 알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장점만 보느라 단점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단점으로 인한 상황과 결과를 이해하고 온전히 책임지는 데에 많이 소홀했었다. 아니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서,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기에 급급했었지.


나는 진실되지 못했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집단 속에서도 진실되지 못했다. 20살이 된 이후에,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적절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자소설과 이력서에서의 적절한 MSG는 인턴 및 직장을 구하게 해 주었고, 학교에서의 멘토링이나 스터디를 중간에 그만두어야 했을 때 내 현재 상황에 대한 적절한 거짓말은 복잡하고 부끄러운 내 감정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다른 것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것처럼 나 자신을 속여서 좀 더 안전하고 대중적인 길로 가도록 유도하였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직장과 삶 속에서 나는 거짓된 페르소나라는 얇은 천을 내 겉에 두르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어. 젠장. 그런 거짓된 삶의 모습이 오히려 내 삶을 옭아매는 요소들이 될 줄도 모르고.


그래서 지금까지 느껴왔던 그 켕기는 느낌은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 만연하였던 부끄러움이었나?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움? 사실 나는 형편없고 결점투성이라는 부끄러움? 아니면 그런 나의 약점이 언젠가는 까발려질 것만 같은 불안함?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깨뜨려버린 나에 대한 실망?

 

마크 맨슨의 책은 외면해왔던 위의 질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내가 생각보다 더 형편없는, 자아도취에 빠진 이기적인 머저리라는 사실은 (어감이 좀 쎄긴 하다 -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내가 나에게 느낀 감정은 저게 맞다) 나를 아프게 했지만, 지금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조금 어려운 것 같다. 문제를 안다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까지 알게 되는 건 아니라서, 삶의 꼬인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또 머리싸매고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겠지. 


나에게 진실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현대사회 속에서 나의 욕구를 오롯이 들어주고 진실된 방향으로 두려움을 마주하며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방식이고, 안전해보이지 않으며, 타인의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그래서 진실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이제는 폭발할 것 같아서 삶의 불확실성을 안고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내가 부디 이 생각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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