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아들 하나 아들 둘
“오늘 웬일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노트북 위에 비타민이 놓여 있었다. 간만에 남편이 챙겨달라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챙겨준 지 알고 반가웠다.
“내가 한 거 아닌데?”
그러면 단 한 사람뿐이다. 첫째가 챙겼나 보다.
원래 무엇인가 잘 챙겨서 먹는 스타일은 아닌데, 임신하면서부터 챙겨야 하는 영양제들이 생겼다. 뱃속의 아이를 위에선 필수 영영제였다. 유일하게 잘 챙기는 시기인 임신 기간과 모유 수유 기간, 나는 이번에도 나는 세 번째 모유 수유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영양제 복용을 하고 있다. 철분, 칼슘, 마그네슘, 비타민D, 비타민C가 그것이다.
하지만 홀로 챙겨 먹는 것은 쉽지 않다. 너무나도 귀찮기도 하고, 맨날 까먹기도 한다. 가끔은 나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서럽기도 하다. 모유 수유만으로 아이의 밥을 책임지고 있기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남편한테 얘기했다. 하루라도 안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생각하고 챙기라고. 그렇지만 그도 종종 까먹는다. 그래서 난 서운함이 저 하늘까지 뻗어져 있다. 그나마 첫째 때는 잘 통했다. 거의 빠짐없이 챙겨줬는데, 둘째 때는 달랐다. 심지어 챙겨달라는 잔소리만 듣다가 어느 날 싱가포르로 가벼렸다. 이번 셋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챙기라고 하였다. 하지만 쉽지 않다. 세 번의 임신, 세 번의 길고 긴 모유 수유 기간, 안 먹으면 나이 들어 뭔가 뼈가 아플 것 같고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릴 것만 같아서 걱정인데도 그는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얼마 전 월화수목금토일의 요일별 약통으로 챙겨 받기로 했다. 우연히 아이들과 함께 약국에 갔다가 장만했는데, 아이들의 의지로 가족 수 대로 마련했는데 아주 요긴하다.
나와 남편의 대화를 듣던 첫째가 얘기했다.
“엄마, 아빠가 안 하길래 내가 챙겼어!”
역시나였다. 비타민과 물을 한 세트로 아주 야무지게 챙겨놨다. 남편이 챙겨준 것보다 더 감동이다. 영양제만 띡 주곤 해서 물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우리 아드님은 달랐다. 남편은 아들이 챙길 듯해서 본인이 안 챙긴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잘 키운 아들 하나, 이렇게 감동을 준다. 엄마 비타민도 알아서 챙기고, 본인 것도 알아서 챙겨먹고,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다. 약통 왜 사는가 싶었는데,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다.
둘째 출산한 다음 날이었다. 오후에 출산하였기에, 첫째는 전날 병원에 저녁 식사 후 들렀다. 병실로 와서 엄마랑 만나기도 하고, 유리창 안의 동생과의 첫 만남을 했다. 그날도 처음으로 떨어진 엄마를 보러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보고 싶다고 울다가도 영상통화만 하면 뒤로 숨어버려서 결국은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아이는 날 보자마자 안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엄마~!”라고 부르며 주머니를 뒤적뒤적했다. 그러고는 부스럭부스럭하며 소리를 내더니 뭔가를 꺼냈다. 비타민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의 손에 비타민 한 알을 주었다. 교회학교에서 받은 가장 좋아하는 비타민 하나를 안먹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챙겨 갖고 온 것이다. 엄마가 띵띵 부어서 아파 보였나보다. 뭔가 엄마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나보다. 아이의 예상치 못한 선물에 놀랍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 뭉클했다. 엄마에게 이걸 챙겨주려고 어떻게 해서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온 것이라니. 출산 직후라 그런지 감정이 예민할 때라 아이가 친정집으로 간 뒤, 아이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리고 감정이입이 되어서 펑펑 울었다. 엄마는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셋째를 출산하고 산후조리 기간에 손을 잘 쓸 수가 없었다. 출산한 지 백일이 지난 지금도 양쪽 두 번째 손가락은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요청하는 것 중에 손가락을 쓰는 것을 잘 못 할 때가 있다. “엄마 손가락이 아야 해.” 아이들에게 계속 주지시키지만, 특히 둘째는 잘 까먹는다.
“잠깐만, 엄마가 한번 해볼게.” 하지만 가끔 역부족일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는 막 생각이라도 난 듯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얘기를 한다. 깜박하고 또 엄마한테 해달라 해서 좀 미안했나 보다.
“엄마 약 먹었어? 엄마 손가락 아야 해? 내가 호해줄게.”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감동을 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나에게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엄마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생각을 한다. 나는 육아에 지쳐 쉼을 찾으려 하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무한 사랑을 보낸다. 엄마랑 뭐든지 함께, 엄마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두 아이 모두 집중된 것 같아서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아이 셋에게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디에 치중할 수가 없는 순간이 있다. 하나둘 챙기다 보면 점점 체력이 부칠 때도 있다. 온몸으로 기대 치대기라도 하면 왜 나에게만 그런 것일까 하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TV만 틀어주고 쉬고 싶을 때가 많다. 잠시 잠깐 핑계를 대고 홀로 산책을 하고 싶기도 하다. 잠깐이라도 자유를 갖게되면 탈출이라도 한 것처럼 행복감,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싱가포르에 오면서 남편의 육아 참여가 늘어났다. 아이 셋이 되면서 남편의 존재가 커졌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남편의 역할들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도 이제 아빠를 찾을 때도 있다. 아빠의 순위가 엄마보다 앞섰다가 흠칫 놀라서 엄마를 1순위로 바꿀 때도 있다. 잠자는 시간에도 아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아빠 밤엔 자야지. 그만 일하고 잠자러 와. 엄마랑 아빠랑 나랑 형이랑 동생이랑 다같이 자자.”
오늘도 둘째는 외친다. 엄마, 아빠, 형, 동생과 함께 다 같이 자자고. 남편은 재택근무하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아이들 재우는 시간에 자유시간을 갖곤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둘째의 요청에 녹아내려 아이들을 같이 재우러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과연 언제까지 이럴지 모른다. 엄마, 아빠의 품보다 친구들이 더 재밌고 소중할 때가 머지 않았을 수도 있다. 후에는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 같다. 지금의 행복을 즐기자. 우리는 오늘도 다 같이 모여 한 방의 패밀리 침대에서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