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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heur maman Aug 18. 2021

조금은 틈이 있어도 괜찮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틈이 있는 삶 속에서 행복찾기

오늘도 난 나의 삶에서 어떤 틈을 만들었을까?

가끔 나를 돌이켜보면 참 피곤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은 많이 내려놓은 덕분에 나의 완벽주의가 좀 덜해지고 있긴 하지만,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가끔 답답했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을 고쳐먹고 조금은 틈을 갖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어느덧 나도 모르게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멈칫할 때도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이미 그렇게 살아왔는걸, 고치기는 쉽지 않다.

아이는 나를 투영하는 존재, 아이 모습 속엔 내가 있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일까? 나의 성향을 닮아 태어나는 것일까?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며 놀라곤 한다. 그러고는 반성한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이는 조금은 틈이 있었으면 하는데 하는 생각에, “괜찮아, 괜찮아.” 얘기하며 오히려 폭풍 잔소리를 하고 있다. 괜히 아이는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더해져서 그러한 것 같다. 왜 이런 걸 닮았나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마치 나에게 하는 잔소리를 아이에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는 감정이 울컥한다. ‘나 또한 완벽주의 엄마의 삶을 닮아서 살아가고 있었구나. 나에게도 엄마가 보이는구나.’ 그러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느 날 아이가 트니트니 할 때였다. 대근육, 소근육을 발달시켜주는 아이 체육활동 시간인데 이번 수업 시간엔 징검다리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아이들이 하나둘 스스로, 또는 엄마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여러 명이 차례로 징검다리 위를 지나가다 보면 흐트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어떤 아이는 일부러 흩트려 놓으며 장난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아이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아이는 앞쪽으로 달려가서는 본인이 건너야 할 징검다리를 점검하고 일렬로 비슷한 간격으로 바로잡았다. 모든 준비가 된 뒤에야 다시 처음의 본인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하나 건너고 있었다. ‘굳이 점검을 다시 해서 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냥 건너기 어려운 부분만 그때그때 바로잡거나, 때론 징검다리에서 잠시 내려와서 걸어가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찡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그랬었는데.


어느 날 아이의 유치원 온라인 수업 시간이었다. 이번 시간에는 가위로 자르는 활동이 많았다. 보통 무엇인가를 가위로 정확하게 자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직 아이는 어려서 그런 것이 서툴기에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은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아이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지나가다 아이를 보니 뭔가 안절부절못하였다. 문득 옆에서 지켜보니 아이에게서 흔들리는 눈빛이 보인다.

“엄마가 좀 도와줄까?” 아이는 안도했고, 살며시 종이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었다.

“굳이 이런 건 정확하게 자를 필요 없어. 대충대충 잘라서 완성해도 괜찮아. 조금 삐뚤어진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어.”

언젠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 위한 힐링캠프를 간 적이 있다. 그때 나도 가위로 잘라 무엇인가 나에 관련된 그림을 완성하는 활동을 하였었다. 꽤 넉넉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시간이 빠듯했다.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 다 쓰고 가까스로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손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같이 활동을 하던 그룹의 사람들은 일찍 끝나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말이다.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조바심도 났다.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떻게 다들 일찍 완성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의아했다. 완성된 그림을 들고 발표할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위질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들 대충 삐뚤빼뚤하게 자른 그림들을 보여주며 발표하였고, 이내 그들은 나의 자로 잰 듯 깨끗하게 자른 내 결과물을 보며 감탄했다. 나는 조금 민망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난 무엇을 위해 정확한 가위질에 집착했을까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괜찮아. 그래도 돼.”

나는 얘기를 반복하여 아이를 이해시키려 했다. 나를 회상하며 아이는 나처럼 틈 없이 살기보단 조금은 틈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주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완벽을 내려놓는 습관이 생겼다. 나도 사람인지라 틈을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무엇인가 완벽하게 하고 있겠다는 걸 느낄 때면, 과감하게 한 조각을 빼내었다. 블록 하나를 빼놓는 듯하며 나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일부러 한켠에 틈을 주었다. 그렇게 되니 끝까지 완벽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미 한 조각이 빠져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뭔가 숨 막히거나 힘든 상황이 생겨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나는 틈 있는 삶을 즐기고 있다. 가끔 너무 틈을 줄 때도 있지만, 틈이 있는 삶은 내가 앞으로 가져가야 할 삶인 듯하다. 완벽을 추구하다 무너지지 않도록 말이다. 다행인 건지 나는 틈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결혼했다. 본인은 완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항상 얘기한다. 결혼하면서 그에게서 틈 속에서 사는 법을 깨우쳐 나가고 있다. 나의 완벽의 잣대를 적용하여 주위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되뇌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행복은 마음속에서 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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