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onheur maman
Aug 21. 2021
"둘째야 힘들지?"
오늘도 난 우리 둘째를 향한 고민이 가득하다. 어찌하면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 둘째는 유난히 정이 많다. 그는 나에게 항상 방긋 살인미소를 지으며 웃어준다. 그리고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그의 사랑을 표현한다. 우리 둘째는 뭐든지 다 잘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많았다. 게다가 첫째랑 2살 차이지만 마냥 어려 보이는 것이 둘째였다. 가끔 그가 무엇인가를 해내면 깜짝깜짝 놀랬다. “난 잘 크고 있어요.”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 뭐든지 잘할 것만 같던 우리 귀염둥이 둘째가 요즘 우리 가족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요즘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이는 아픈 손가락이 바로 둘째이다. 그의 반항 아닌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귀염둥이 둘째가 달라졌다. 아주 빡세게. 뭐든지 힘들지 않을 것 같은 다 해줄 것 같은 둘째에게서 이제 “싫어!”란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션을 깨는 듯한 느낌이다. 하루에도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지만 참는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 그가 동생이 생겨서 그런 건지, 그럴 나이가 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힘들고, 그도 힘들고,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다.
처음 셋째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둘째 챙겨라." 말씀하실 때 난 그 의미를 몰랐다. 셋째 출산 후 엄마와 떨어져서 병원과 산후조리원 있는 내내 매일매일을 울며 지내는 첫째가 걱정이라며 고민을 털어놨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 얘기를 들으셨는데도, 둘째 얘기만 하셨다. 지금 잘 챙겨야 할 때라며. 이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둘째는 웃으면서 잘 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생각하며 "네네" 하고 웃어넘겼다. 동생 태어나서 인사도 하고, 엄마와도 잘 떨어지고, 잘 지냈는데 말이다. 난 유난히 둘째 육아에 깊숙이 참여하신 엄마가 둘째만 이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는 점차 달라졌다.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시작되었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갔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뿐이었다.
처음엔 남편에게 서운했다. ‘난 아직 산후조리를 해야 할 때인데, 어찌 계속 둘째 컨트롤 하나 못해서 나한테 맡기지?’ 하며 생각했다. 나 또한 뒤집어지는 둘째 앞에서 노력하고 있고 힘든데, 왜 아이 하나 잘 다루지 못하나 했다. 부글부글한 마음을 드러내면 더 뒤집어 지기에 평정심을 가지려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공감하고 또 대화했다. 아이에게도 서운했다. 엄마가 노력하고 있는데 왜 계속 심해지는 건지, 믿었던 둘째가 왜 컨트롤조차 안 되는 건지. 엄마가 아프다고 하는데도 왜 봐주지 않는 건지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로만 얘기하고 정작 왜 힘들게 하나 싶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더불어 미안했다. 엄마가 부족했어.
첫째가 처음 동생이 생길 땐 정말 엄청 신경을 많이 썼다. 첫째와 둘째와의 만남, 그리고 처음 둘째가 집에 올 때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연구도 많이 했다. 그들의 첫 만남을 위한 딱 마음에 드는 선물도 준비하고,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그땐 첫째도 막 24개월이 지난 나이었기에 더 신경 썼다. 하지만 둘째가 동생을 만날 때는 안심했던 것 같다. 둘째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자만심, 이제 40개월이 넘었기에 다 컸다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 그것 뒤에 기다리고 있을 아이의 서운함은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난관에 봉착했다. 뒤늦게 준비했기에 아이 마음에 안 들었던 선물, 도와줄 사람이 없이 오롯이 남편과 둘이 했기에 부족했던 사랑이 그를 사랑에 목마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살이로 인한 타지에서 10개월의 셋째 임신 기간, 난 힘들지 않아, 잘할 수 있어를 반복하며 그 기간을 버텼다. 엄마가 필요한 시기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잠깐만”, “조금 있다가”, “다음에 하자.”를 반복하며 다음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게 실망감과 무한의 기다림을 안겨줬다. 조금 덜 예민한 아이였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나에게 “지금”, “지금”을 외친다. “엄마랑 놀래, 엄마랑 놀래.”라고 무한 반복하며,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같은 말을 계속해서 말하면서 해줄 때까지, 될 때까지 운율을 타듯 노래한다.
“빡세지만 파이팅!” 요즘 우리 부부가 둘째를 대할 때 서로를 응원하는 문구이다. 아이를 이해하며 매일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나름대로 우리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합심하여 실천하고 있다.
원하는 때에 바로바로 해주는 서비스, “지금!” 요청할 때, “오케이” 해주니 아이가 행복한 눈웃음을 선사했다. 화가 날지라도 절대 화내지 않기, 티 내지 않기 그리고 너무 힘들면 그 순간을 피했다. 그러니 머리끝까지 가는 화까지는 가지 않게 되었고, 점차 우리는 화를 다스려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위기의 순간은 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서든 그 위기를 서로 합심해서 헤쳐나가는 전우애가 있다. 한 사람이 폭발할 것 같으면 다른 한 사람이 뒷받침해 주고, 수습해주고,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눈빛으로 대화하며 그 상황을 풀어나갔다. 엄마랑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하는 둘째를 위해, 나는 그와 항상 함께했다. 아이가 업어달라고 하면, 바로 업어주며 아이의 행복감을 유지해줬고, 아이는 엄마 등 위에서 “나 위에 있지요!” 하며 신났다. 엄마랑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충족시켜주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쳤다. 모든 걸 함께했고, 아이는 만족했다. 그리고 그는 매일매일 “엄마, 사랑해!”,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를 말한다. 그는 표현하고, 우리도 표현했다. 힘들어지면 주문을 걸듯 반복하여 애정을 표현했다.
첫째와 둘째의 트러블이 생길 때의 패턴을 발견했다. 가족은 함께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고쳤다. 함께할 때도 있고, 각자 시간을 보낼 때도 있어야 각자에게 맞게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을 분리하였다. 이로 인하여, 서로 경쟁하여 서로 좌절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을 가질 때, 나는 각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서로가 엄마를 차지하고자 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엄마랑 가질 때 평안해졌고, 편안해졌다. 둘째는 형과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본인의 나이에 맞는 자리에서 스스로가 빛나게 되었다. “나는 잘 못 해.” 라고 얘기하며 좌절하는 모습도 줄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태권도를 할 때도 주도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감도 드러냈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로를 그리워할 때도 생겼다. 그리움의 끝에는 다시 싸움이 시작되긴 하지만, 서로를 분리할수록 아이들은 돈독해져 갔고, 싸움의 시간도 줄었다.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째와 둘째와 싸우더라도, 한 명 씩 방으로 데리고 가서 각자를 위로해주고, 생각하며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혼나러 가는 시간이 아닌, 엄마와의 시간을 가지러 간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하였다. 방에서 어떤 얘기가 이루어지는가에 궁금해하기도 하였다.
아직은 끝이 안 보이지만 아이는 달라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이 셋 육아는 나를 항상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첫째, 둘째, 그리고 아직 어리지만 셋째까지, 그들을 신경 쓰려면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오늘도 잘 지나갔다. 아이의 웃음을 보며 마음이 녹는다. 특히 잠든 모습을 보며 행복하다. 그도 힘들 것이기에 짠하기도 애잔하기도 하다. 후에 ‘너도 그땐 그랬어.’ 하며 회상하며 행복함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둘째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