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듯이 적당량의 차와 물 그리고 그 둘을 품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차호(茶壺)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차를 우릴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검은 정장을 멋지게 빼입은 저승사자도 마찬가지다. 시공을 초월한 찬란한 신(神)의 사랑도 멋있었지만 저승사자의 비주얼 혁명으로 기억에 남는 tvN의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하는 망자의 찻집을 떠올려보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어디 즈음에 있는 망자의 찻집을 찾은 망자에게 저승사자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넨다. 삶을 품어내듯 차를 품어낸 차호에서 찻잔으로 흘러내리는 차는 마치 망각의 강처럼 망자에게 다가간다.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전하는 저승사자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포다법이다.
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우려내는 것을 포다법이라고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흔하고 흔한 이 방법은 명(明) 대에 보편화되었다.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혼자 비렁뱅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나라를 세우고 천하의 주인이 된 주원장(朱元璋)이 일등 공신이다.
废团茶,兴散茶
산차 형태 - 운남성 홍차 <전홍 대금침>
주원장은 1391년(홍무 24년)에 단차(團茶) 폐지령을 내린다. 당․송대에 생산하던 병차, 단차 형태의 차를 황제의 명에 의해 산차(散茶) 형태로 황실에 공납하기 시작한다. 완성된 차의 형태가 산차로 변함에 따라 제다법과 음다법에도 변화가 생긴다. 증청(蒸靑) 제다법은 차의 쓴맛을 없애기 어렵고 향을 보존하기 힘든 반면에 초청(炒靑) 제다법은 차의 본래의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있어 산차의 생산에 널리 이용된다. 이는 훗날 육대다류(六大茶類)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는 차의 맛과 향을 그대로 한 잔에 담길 수 있도록 차를 품어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산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포다법이다. 포다법은 방법이 간단하면서도 차의 향을 잘 유지하기 때문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유행하기 시작한다. 장원(張源)이 1595년 경 저술한 『다록(茶錄)』에 의하면 차호에 차와 물을 넣는 방법도 세 가지가 있다. 차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면 쉽다. 차호에 물을 먼저 붓고 차를 넣으면 차가 물 위에 있으므로 상투법(上投法), 반대로 차를 먼저 넣고 물을 부으면 차가 물의 아래에 있으므로 하투법(下投法), 마지막 한 가지는 물을 먼저 붓고 차를 넣고 다시 물을 붓는 중투법(中投法)이다.
포다법
제다법, 음다법에 이어 다구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차호와 개완을 이용하는 등 차를 우리는 방법이 다양화되고 특히 작은 차호가 애용되었다. 송대에 등장한 자사호(紫砂壶)도 포다법의 유행과 함께 크게 발전한다. 포다법은 차를 우리는 방법 자체는 간단하지만 차의 양과 물의 온도를 맞추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구의 선택과 사용이 이전에 비해 까다로워진 단점이자 재미도 생겼다.
한 잔의 차를 만들 때 차 이외에 물, 다기, 공간, 음식 등 세세하게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차를 선택하는 취향 외에는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다. 호 하나에 잔 하나를 준비하고 포다법으로 차를 마시되 다기의 재질이나 물과 불의 종류는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나의 티타임은 언제나 부족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없음으로 인해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