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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Mar 26. 2024

Vol.21 <PALEBLUEDOT>

기록보관소

사서 이연주입니다.

문득 익숙한 향기에 발걸음을 멈춘 경험이 있을 거예요. 한 번 뇌리를 스친 고유한 향은 자연스레 우리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그 기억은 더욱 진하고, 깊게 자리 잡고 있지요. 제 마음속에는 산에 몸을 맡기고 느꼈던 감각들이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나무의 상쾌함, 초록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얀빛까지. 그날 제가 보았던 숲은 모두 하나의 ‘향’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향을 마음에 담고 있나요?

여행의 순간을 향으로 선물하는 브랜드, ‘페일블루닷’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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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사구를 통해 뿜어 나오는 방울들이 어딘가에 닿는다. 잘 도착했다는 안심도 잠시, 이젠 스며들 차례다. 경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연결되고 싶었던 것뿐이니.


퍼지다

페일블루닷의 시작은 임향미 조향사의 24살 첫 해외여행이었다. 일본학과를 전공한 그는 4학년이 되어서야 일본에 다녀왔다. 당시에는 여행에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귀국한 지 한참 후, 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일상생활에 여행의 장면이 문득문득 떠올랐던 것. 잠을 잘 때도 버스를 탈 때도 툭툭 나타났다. 분명 좋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신기했다. 이처럼 짙은 잔상이 남은 이유는 하나. 처음 맡아 본 이국적인 냄새 때문이었다. 외국의 풍경이나 사람보다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가 신선했다. 여행을 기억하기 위해 캐리어에 담아온 기념품들이 무색하게 말이다. 그때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손에 쥐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임 조향사는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그래서 여행의 순간을 향기로 전달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페일블루닷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를 부르는 명칭이다. 칼 세이건의 저서 ‘COSMOS’에서 인간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았다. 페일블루닷의 향을 만들기 위한 여정은 모두 이 행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행성이 사라진다면 향의 근원지를 설명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인종 등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여행지 자체의 가치를 전달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다. 페일블루닷은 여행과 일상의 간극을 향으로 메운다. 캔들,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 방 안의 오브제를 통해 그사이를 은은하게 파고든다. 퍼진 향은 여행지의 기억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페일블루닷은 이 일련의 과정을 ‘좋은 향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부른다. 꼭 거창한 이동만이 여행은 아니다. 갈색 병의 뚜껑을 열기만 해도 그 안에 작은 세계가 넘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채우다

“어떤 향 좋아해?”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향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을 가진 향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가 된다. 페일블루닷의 센트 리스트는 여행의 순간을 내포한다. 그 찰나를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임 조향사는 모든 향을 직접 제작한다. 주제를 잘 표현하는 것. 그가 조향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다. 3가지 시리즈를 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각각의 시리즈는 페일블루닷의 키워드를 나타낸다. <EARTH>는 ‘여행’, <DOT>은 ‘일상’, <ROOM>은 ‘공간’의 느낌을 표현한 향들이 모여 있다. 일상과 여행의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머무른 공간을 연결하면 결국 삶이 된다. 향기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란다는 조향사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우리는 숨을 쉬기 시작한 때부터 줄곧 냄새를 맡아 왔다. “냄새는 인간의 삶 속에 빈틈없이 다가와 모든 시공간의 여백을 채워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향은 우리의 모든 기억에 연결되어 있다. 특히 페일블루닷의 향에는 임 조향사가 떠났던 여행이 담겨있다. 우리는 그 여정을 엿보면서도 저마다의 추억을 덧입힌다. 여행가의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페일블루닷의 향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OKINAWA

오키나와의 숲과 바다의 조화를 나타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선물해보자. 역효과는 당장 바다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ORUM

비 오는 여름의 제주도 아부오름을 표현한 향. 라임과 소나무가 상쾌함을 더해준다. 모든 게 꿉꿉하게 느껴지는 날 제격이다.


COZY ROOM

불면증에 뒤척이던 어느 겨울날, 익선동의 ‘낙원장’이라는 스테이에 머물렀다. 잠을 솔솔 불러오던 그곳의 훈훈한 공기와 오리털 이불에서 영감을 받아 조향한 향이다. 침구류와 궁합이 좋은 바닐라 향료를 사용했다.

잇다

페일블루닷은 다양한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섯 가지 감각이 모두 만족할 때 삶은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널리 알린다. 브랜드 생일에는 프로젝트 ‘SENSE COMBINING’을 운영하며 여러 감각을 결합해 방문자들에게 선물을 준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날이 되는 셈이다. 2주년 때는 후각과 시각을 주제로 삼아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처럼 페일블루닷은 향을 통해 오감을 잇는다. 소포를 연상시키는 패키징은 우체부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우체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식을 전해주듯, 향기 우체국이 되어 여행지의 향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느릿함을 추구한다. 언제 편지가 올지 몰라 우편함 앞을 서성이던 모습처럼 말이다. 정성스러운 포장은 선물하고 싶은 누군가를 잠시 생각하게 하고, 자기 전 룸 스프레이를 뿌리는 여유를 갖게 한다. 일상에 여백을 주면서도 단절되었던 것들 사이의 틈을 메운다. 앞으로 101가지의 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페일블루닷. 그들의 향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꿈꿨던 세계 일주를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INFO

Instagram | @palebluedot_official

Website | your-palebluedot.com

Address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46번길 2층 (주말에만 운영)


Vol.21 <BLUEPALEDOT> 中

Editor 정현지

Photographer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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