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는 과장이지만 싫기는 정말 싫었다
저는 직장생활에서 상사운이 대체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상사들을 많이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는 되지 않았어도 합리적인 업무 처리와 적당한 수준의 매너로, 같이 일하는데 큰 불편이 없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딱 세 분만 빼고 말입니다. 이 세 분은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억지로 맞추기는 했는데 심한 스트레스 속에 버티다가 결국 안 좋게 헤어졌던 케이스들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제게 상사의 쓴맛을 알게 해 준 분은 신입사원 시절에 만났던 P상무입니다. P상무는 업무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지나치게 신경 쓰던 분이었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그리고 문단번호에 극단적으로 집착했습니다. 특히 문서작성 규정에 나오는 '1, 가, (1), (가), 1), 가)'로 이어지는 사문화된 문단번호 순서와 맞지 않거나, 상하좌우 여백이 정확하지 않으면 기안서 자체를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기안서를 써서 갔다가 제대로 보고도 못한 채 번호 매기기와 여백에 대한 빨간펜 설교에 빠꾸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두 번째로 만났던 끔찍한 상사는 검토만 신경 쓰고 실행은 나 몰라라 했던 K 본부장이었습니다. 제가 과장 시절 상사였습니다. 이 분이 다양한 경영기법과 참고 자료, 화려한 그래픽을 요구하며 수정을 계속하는 바람에 저는 제안서를 수도 없이 고치느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제안서가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 열심히 해보라는 말 외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부서장이 나 몰라라 하는 기획안은 흐지부지 되거나 심하면 바로 사장되는 불쌍한 신세가 되는 데도 말입니다. 이 분과 더 일하다가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아서 저는 1년 만에 그 부서를 때려치웠습니다.
마지막 끔찍했던 상사는 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헷갈리게 했던 G전무였습니다. 뻑하면 자리를 비웠고, 사무실에 있을 때도 전화로 수다 떨기에 바빴습니다. 일하는 것처럼 책상에 앉은 날도 알고 보면 사적 모임을 위한 행사 준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리벽 너머로 들리는 전화 통화와 부주의하게 버린 프린트물을 통해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눈치 빠른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짤리라고 빌었던 분입니다. 제 바람이 먹혀서 퇴사를 하기는 했는데, 이 양반 퇴직금을 두둑이 받고 나가셨습니다. 세상 참 불공평하지요.
저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제가 미워했던 이분들처럼은 절대로 살지 않으렵니다.
2022년 11월 24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