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인연
Michael Schur의 How To Be Perfect를 얼마 전 읽으면서 남아프리카에서 유래된 ‘우분투(Ubuntu)’라는 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IT 쪽에서는 무료 컴퓨터 운영 체제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 개념을 Michael Schur의 말을 빌어 설명하자면,
A person is a person through other people.
I am, because we are, and since we are, therefore, I am.
We exist through others.
요즘 생각하는 흐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더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원 뜻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나타내며 공간적 개념에 더 가깝지만, 내게 이 말은 시간적 개념으로 다가왔다. 바로 내가 나 된 것은 숱하게 겹겹이 쌓인 인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삶에서 겹겹이 쌓여 말을 건네고 있는지...
5월이 되면 늘 떠올리는 구절이 있다.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5월"이라는 말인데 대학교 시절 동아리 선배가 한 말이다.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그 선배의 모든 것은 잊히고 5월이 될 때마다 그 구절만 다시 살아나 초록잎들과 함께 빛난다. 어떤 이는 듣는 순간 바로 그 시절 그 공간으로 돌아가는 노래로 남았고, 어떤 이는 인생의 지평을 넓힌 책으로 남았다. 어떤 이는 헤어지고 돌아오던 기찻길, 어느 작은 역에서 멈춰버린 기차 창 밖으로 보이던, 오렌지빛 가로등 아래로 눈이 소복하게 내리던 아련한 풍경으로만 남았다.
어떤 이는 생일 선물로 준 화초로 남아 우리 집에서 가장 크고 잘 자란 대표 식물이 되었고, 어떤 이는 무심코 준 씨가 우리 집 뒷 뜰에 봄마다 보랏빛 꽃으로 매년 피어오른다. 어떤 이는 처음 먹어본 오이나물로 남아, 뭔가 몸이 허할 때 해 먹게 되는 순한 보약 같은 음식으로 남았고, 어떤 이는 갖고 있던 토기그릇을 귀국하면서 주고 가, 손님을 치를 때마다 정성스러운 상차림에 꼭 등장하는 귀한 그릇으로 남았다.
...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한 인연들이 머물고 지나갔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울고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었다. 사람은 인연 따라가고 없지만, 그 모든 마음씀이 선물처럼 남아 겹겹이(layer upon layer) 쌓였다. 나를 형성해 온 생각과 신념과 앎은 물론이고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 타인의 흔적과 마음과 선물이 가득하다. 내가 나 된 것은 내가 만난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준 선물이다.
우분투.
공간적 개념으로는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만 내가 있을 수 있고,
시간적 개념으로는 쭈욱 이어져 온 인생길에 숱한 사람들의 흔적들로 채워진 것이 나다.
꽃보다 잎이 아름다운 5월을 보내며,
오늘 여기까지 나를 나 되게 해준
모든 이들에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