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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비 Apr 10. 2024

여행이라는 예술

낯설게 하기

여행은 보통 낯선 곳으로 떠나 새로운 풍경과 문화와 음식과 사람을 만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나에게 진정한 여행의 의미는 돌아와서 시작된다.


문학 및 예술적 용어로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라는 개념이 있다. 30년도 넘은 대학원 시절에 문학 비평을 전공할 때, 빅토르 슈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의 이 개념을 처음 접하고 너무 기발하고 신선해 한동안 매료되었었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행위를 낯설고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가 예술이라는 개념인데, 예를 들어, 걷는 행위를 다르게 비틀어 움직일 때 춤이 되고, 우리가 내는 말의 높낮이와 길이를 달리 할 때 노래가 탄생하고, 글의 길이, 운율, 표현을 낯설고 비유로 나타낼 때 시가 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비트는 행위 자체인 동시에 그 낯선 행위를 통해 익숙한 모든 현실을 새롭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행이 '낯섦(Unfamiliarity)'이라면, 여행에서 돌아옴은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이다. 낯선 곳에서 짧든 길든 여행을 마치고 오면, 갑자기 익숙하던 집 공간과 매일의 일상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 너무나 익숙해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낡아 벗겨진 줄도 모르고 쓰던 프라이팬이 그제야 보여 버리기도 하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소품을 정리하기도 하고,

슬금슬금 늘어났던 커피 양을 줄이기도 하고,

익숙하던 동선이 사실은 불편했음을 깨닫고 바꾸기도 한다.


한 번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갑자기 혼자 한국을 급히 나가야 할 상황이 있었다. 초등 저학년이었던 두 아이들과 늘 같이 있을 때는 인지 못하던 아이들 목소리를 한국에서 수화기 너머로 들었을 때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아... 이렇게 아직 어린 아이들이구나..." 그때 큰 아이를 몹시 엄격하게 키우던 시기였는데,  낯설게 들려온 그 목소리가 얼마나 아직 아기던지. 그 놀람 덕분에 나는 돌아와서 진심으로 큰 아이에게 사과했다. 네가 이렇게 어린데 엄마가 이리 무지했구나. 너를 그리 몰아세웠구나. 이때 행동과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적어도 나에게 여행은,

돌아와서 진정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돌아온 여행은,

떠났던 공간이 아니라 다시 마주한 실제 삶의 공간에서

익숙하고 무디어져 놓친 것들을 낯선 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마음의 방향을 바꾸거나 재정비하는,

어쩌면 조금은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Museum of the Foundation Joan Miró @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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