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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Oct 26. 2024

사막의 시간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떨어지듯, 민수의 비행기가 카이로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활주로에 닿는 순간, 그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집트, 시간의 강, 나일강이 흐르는 이 땅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공항을 빠져나온 민수는 곧바로 사막의 열기에 휩싸였다. 뜨거운 공기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마치 수천 년의 역사가 한 번의 숨결로 그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시간의 도시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수가 고개를 돌리자, 한 젊은 남자가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그의 눈은 사막의 모래처럼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민수가 말했다.

      

"제 이름은 민수입니다."

      

"반갑습니다, 민수 씨. 저는 아멘입니다."

      

아멘의 안내로 민수는 기자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로 고대의 유적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역사책 같았다.

     

"저기 보이는 게 피라미드인가요?"

      

민수가 물었다.

     

아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이 바로 기자의 대피라미드입니다. 4500년이나 된 건축물이죠."

      

"4500년······."

      

민수는 그 숫자를 되뇌었다. 그의 인생 전체가 그 시간 앞에서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차가 피라미드 근처에 도착했을 때, 태양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거대한 피라미드의 그림자가 사막을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었다.

     

"이제 곧 해가 질 텐데,"

      

아멘이 말했다.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가 보시겠어요?"

      

민수는 망설였다.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나요?"

     

"물론 금지되어 있죠. 하지만 제가 민수 씨를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놓았어요. 이집트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들은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돌계단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듯했다. 민수는 자신의 발걸음이 그 역사에 새로운 한 줄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 민수는 숨을 멈췄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장엄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그 위로 붉게 물든 하늘, 그리고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는 태양.

     

"이것이 바로 영원의 순간입니다,"

      

아멘이 말했다.

     

민수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영원의 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지금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멘,"

      

민수가 물었다.

      

"당신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요?"

      

아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강물과 같아요. 끊임없이 흐르지만,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할 수 있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영원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민수가 물었다.

      

"붙잡으려 하지 마세요,"

      

아멘이 미소 지었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그때 당신은 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해가 완전히 저물고, 밤하늘에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시간의 베일이 걷히고 우주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저 별들도 시간을 품고 있나요?"

      

민수가 물었다.

     

"물론이죠,"

      

아멘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들의 시간은 우리와는 달라요. 어떤 별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데 수만, 수천 년이 걸리죠. 우리가 보는 밤하늘은 사실 과거의 모습이에요."

      

민수는 그 생각에 현기증을 느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하늘. 그것은 마치 시간의 미로와도 같았다.

그들은 피라미드에서 내려와 사막으로 향했다. 달빛 아래 펼쳐진 사막은 마치 은빛 바다 같았다. 모래 위를 걸으며 민수는 자신의 발자국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슬프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욱 값지게 만들었다.

     

"보세요,"

      

아멘이 갑자기 멈춰 서서 말했다.

      

"저기 오아시스가 있어요."

      

민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멀리 야자수와 작은 연못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신기루처럼 흐릿했다.

     

"저기 정말 오아시스가 있는 건가요?"

      

민수가 물었다.

     

아멘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신의 마음이 결정해요. 시간과 마찬가지로, 현실도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들은 오아시스를 향해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아시스는 조금씩 선명해졌다. 마침내 그들이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닌 진짜 오아시스였다.

     

"믿음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거군요."

      

민수가 말했다.

     

아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시간을 초월해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사막에서 영원을 발견했어요. 그들의 믿음이 피라미드를 세웠고, 그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시간을 견디며 서 있죠."

      

그들은 오아시스의 연못가에 앉았다. 물에 비친 달빛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시간의 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민수 씨,"

      

아멘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왜 이곳에 오셨나요?"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 자신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을 찾는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여정이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찾는 그 자신은 이미 당신 안에 있어요. 마치 오아시스가 사막 한가운데 있었던 것처럼요."


아멘이 대답했다.

      

민수는 그 말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그의 여정은 외부로의 여행이 아닌, 내면으로의 여행이었다.


밤이 깊어갔다. 사막의 별들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민수는 문득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아멘,"

      

민수가 말했다.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요?"

      

아멘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기억하려 하지 마세요. 그저 경험하세요. 이 순간은 이미 당신의 일부가 되었어요. 시간이 흘러도 이 경험은 당신과 함께할 거예요."

      

민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사막의 공기, 오아시스의 향기, 밤하늘의 별빛. 모든 것이 그의 감각을 통해 그의 영혼에 새겨지고 있었다.

     

"영원은 한순간에 존재하고, 한순간은 영원을 담고 있어요."

      

아멘의 말이 사막의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민수는 깨달았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매 순간, 우리는 영원을 경험하고 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사막의 밤이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영원의 순환이었다.

     

"이제 가볼 시간이에요,"

      

아멘이 말했다.

     

민수는 일어섰다. 그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남았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자국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걸어갔다는 사실, 그가 이 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다시 피라미드를 향해 걸었다. 이번에는 해가 피라미드 뒤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건축물의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졌다.

     

"저 피라미드도 언젠가는 사라질까요?"

      

민수가 물었다.

     

아멘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은 변화해요. 하지만 그 의미는 영원히 남죠. 피라미드가 상징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것은 시간을 초월해요."

      

민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이 여행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것, 그가 배운 것은 영원히 그의 일부가 될 것이다.

     

"아멘,"

      

민수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감사해요."

   

아멘은 미소 지었다.

      

"저도 당신을 만나서 기뻐요. 기억하세요, 민수 씨. 당신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어요. 매 순간이 새로운 발견의 기회예요."

      

그들은 피라미드 앞에 섰다. 아침 햇살이 피라미드의 돌 하나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민수는 그 빛나는 돌들 하나하나가 시간의 조각들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아멘이 말했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집트에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아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어요,"

      

민수가 말했다.

      

"당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제 상상 속의 인물인 걸까요?"     

아멘은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당신의 마음이 결정하는 거예요.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니까요. 중요한 건 우리의 만남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당신이 여기서 무엇을 배웠는지예요."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멘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이 경험은 분명 실재했다. 그가 느낀 감정들, 깨달은 진리들, 그것들은 모두 진실이었다.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민수가 말했다.

      

"저에게 당신은 시간의 스승이었어요. 그리고 그 가르침은 영원할 거예요."

      

아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자, 이제 당신의 여정을 계속하세요. 기억하세요, 매 순간이 영원이에요."

      

그 말과 함께 아멘의 모습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침 안개가 걷히듯, 그의 형체가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민수는 두렵거나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평화로움으로 가득 찼다.     

민수는 피라미드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수천 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 그것은 마치 시간의 산처럼 그곳에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모래시계를 꺼냈다. 아멘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것을 볼 때마다 기억하세요,"

      

아멘이 말했었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민수는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모래가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이구나. 한순간 한순간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한······.'


이집트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민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막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경험은 절대 작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마치 시간의 바다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공간. 민수는 문득 자신이 그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시간은 강물이 아니라 바다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항해 그 자체다."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아갔다. 민수는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이집트의 모래 위를 걷던 순간들,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바라본 석양, 오아시스에서의 대화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원은 한순간에 존재하고, 한순간은 영원을 담고 있어요.'

      

아멘의 말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민수는 미소 지었다.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아갔고, 민수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그의 가슴 속 별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제 그 별은 단순한 동경이 아닌, 그의 영혼을 비추는 영원의 빛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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