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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Oct 26. 2024

고원에서 마주한 고요

민수가 라싸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숨이 가빴다. 해발 3,650미터의 고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고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도 높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궁극의 평화를 찾아 이곳에 왔다.

     

"숨쉬기가 힘드시죠?"

      

그를 맞이한 가이드 텐진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적응하실 거예요. 여기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진행됩니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곳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그들은 차를 타고 라싸 시내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이 지평선을 감싸고 있었고, 맑은 하늘은 그가 본 그 어떤 하늘보다도 가까워 보였다.

     

"저기 보이는 게 포탈라궁전이에요."

      

텐진이 가리켰다. 언덕 위에 우뚝 선 거대한 건물은 마치 천상의 궁전 같았다.

     

"정말 멋지네요,"

      

민수가 말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저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텐진이 미소 지었다.

      

"신념의 힘이죠. 티베트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인내와 믿음으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어요."

      

민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여행도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은 조캉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 앞 광장에서는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온몸을 땅에 엎드려 절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민수는 깊은 헌신을 느꼈다.

     

"저분들은 왜 저렇게 하시는 거예요?"

      

민수가 물었다.

     

"그것은 자아를 비우는 행위예요,"

      

텐진이 설명했다.

      

"우리의 에고를 내려놓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거죠. 모든 것을 비워야 비로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요."

     

민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의 여행도 결국은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민수는 티베트 전통 가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주인 할머니가 버터 차를 내어주었다. 짭짤하고 기름진 맛이 낯설었지만, 민수는 그 맛에서 이상한 위안을 느꼈다.

     

"이 차는 우리를 추위로부터 보호해줘요,"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차를 나누는 행위 자체예요. 우리는 차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도 나누죠."

      

민수는 그 말에 진정한 소통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그들은 수도원으로 향했다. 고요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도원에서 민수는 젊은 승려를 만났다.

     

"당신은 먼 곳에서 오셨군요,"

      

승려가 말했다.

      

"무엇을 찾아 이곳까지 오셨나요?"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화를 찾아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정확히 무엇을 찾고 있는지."

      

승려가 미소 지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깨달음이에요. 우리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두 번째 깨달음은 우리가 찾는 그것이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민수는 그 말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그의 여정이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수도원의 명상실로 향했다. 텐진이 먼저 민수에게 명상의 기본을 가르쳐주었다.

     

"그저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세요,"

      

텐진이 말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바라보세요. 판단하지 말고, 그저 관찰만 하세요."

      

민수는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의 여행, 만난 사람들, 경험한 것들······. 하지만 점점 그 생각들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깊은 고요 속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민수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무언가가 변했음을 느꼈다. 세상이 달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어떠셨어요?"

      

텐진이 물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민수가 대답했다.

      

"하지만 뭔가······. 평화로워요."

      

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성이에요.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게 되죠."

      

그날 오후, 그들은 티베트고원을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서서, 민수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동시에 그는 이 광대한 우주의 한 점 위에 서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보세요,"

      

텐진이 말했다.

      

"저 멀리 야크들이 있어요. 그들은 이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가요. 그들에게서 우리는 적응과 인내를 배울 수 있죠."

      

민수는 야크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티베트의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붉은색, 주황색, 보라색이 섞여 마치 우주의 팔레트 같았다.

      

"티베트에서는 하늘을 '남카'라고 불러요,"

      

텐진이 말했다.

      

"그것은 '하늘의 공간'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무한한 잠재력의 공간을 의미하죠."

      

그날 밤, 그들은 작은 불 주변에 모여 앉았다. 텐진이 티베트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젊은 수행자가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였다.

     

"그 수행자는 결국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민수가 물었다.

     

텐진이 미소 지었다.

      

"그 이야기의 끝은 열려 있어요. 왜냐하면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여정은 평생 계속됩니다."

      

민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여행도 이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그들은 티베트의 성스러운 호수인 야마드록 초로 향했다. 호수의 푸른 물빛은 마치 하늘을 담은 듯 맑고 깊었다.

     

"이 호수는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곳이에요,"

      

텐진이 설명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호수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해요."

      

민수는 호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호수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민수는 자신의 발자국이 이 성스러운 땅에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여정이 이 땅의 역사와 만나는 순간 같았다.

     

"여기 와서 느낀 점이 있나요?"

      

텐진이 물었다.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 자신이 모든 것의 일부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티베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에요. 우리는 작지만, 동시에 무한해요. 우리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우리가 있죠."

      

그날 오후, 그들은 티베트의 전통 의학인 티베트 의학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현지 의사인 로브상이 그들을 맞이했다.

     

"티베트 의학은 단순히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에요,"

      

로브상이 설명했다.

      

"우리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죠."

      

민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양한 약초들을 살펴보았다. 그 향기에서 그는 자연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몸은 작은 우주와 같아요,"

      

로브상이 계속했다.

      

"우리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하죠. 건강이란 그 내면의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해요."

      

민수는 그 말에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작은 티베트 사원에서 열리는 풍등 축제에 참여했다. 수많은 등불이 밤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지상의 별들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 풍등들은 우리의 기원을 담고 있어요,"

      

텐진이 설명했다.

      

"우리는 이 등불들과 함께 우리의 소망을 하늘로 보내죠."

      

민수도 하나의 풍등을 들고 자신의 소망을 속삭였다.

      

"평화와 지혜를 찾을 수 있기를······."

      

그는 풍등을 놓아주었고, 그것은 천천히 밤하늘로 올라갔다.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거예요,"

      

텐진이 말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진정한 평화와 지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찾아야 해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그들은 티베트의 고대 동굴 수행처를 방문했다. 험준한 산비탈에 자리 잡은 이 동굴들은 수백 년 동안 수행자들의 명상 장소였다.

     

"여기서 수행자들은 무엇을 했나요?"

     

민수가 물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어요,"

      

텐진이 대답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오로지 그들의 내면과 마주하는 거죠. 때로는 몇 년, 때로는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는 수행자들도 있어요."

      

민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둡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마치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민수가 물었다.

     

텐진이 미소 지었다.

      

"깨달음은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어요. 우리 마음이 열리면, 이 작은 동굴도 우주만큼 넓어질 수 있죠. 중요한 건 우리의 관점이에요."

      

민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여행을 통해 그는 점점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세계도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오후, 그들은 티베트의 전통 예술인 탕카 그리기를 배웠다. 섬세한 붓질로 그려지는 불교 신들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탕카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에요,"

      

예술가가 설명했다.

      

"이것은 명상의 한 형태죠. 우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을 그리는 거예요."

      

민수는 조심스럽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점점 그의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붓질도 자연스러워졌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티베트의 전통 음악 공연을 감상했다. 낮고 깊은 목소리로 불리는 티베트 성가는 마치 대지의 울림 같았다.

     

"이 노래들은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거예요,"

      

텐진이 설명했다.

      

"그것들에는 우리의 역사와 지혜를 담겨 있죠. 그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경험해요."

      

민수는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그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과거의 지혜가 현재의 그를 통해 미래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그들은 산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길은 험했지만, 민수는 이상하게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욱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이 여정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에요,"

      

텐진이 말했다.

      

"때로는 험하고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하죠. 그리고 결국 우리는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오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민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마지막 날, 그들은 다시 포탈라궁전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이 궁전은 천 개의 방이 있다고 해요,"

      

텐진이 말했다.

      

"각 방에는 각기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죠. 이는 마치 우리의 마음과도 같아요."

      

민수는 복잡한 미로 같은 궁전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의 마음도 이 궁전처럼 수많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그 방들을 하나씩 열어보고 있었다.

궁전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라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민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곧 떠나야 할 시간이에요,"

      

텐진이 말했다.

      

"무언가 깨달은 점이 있나요?"

      

민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네,"

      

민수가 이어서 말했다.

      

"저는 이제 알았어요. 우리는 모두 순례자라는 것을.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큰 순례 여정이라는 것을."

      

텐진이 미소 지었다.

      

"그래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순례의 목적지는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면이에요. 모든 것을 비워야 비로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베트를 떠나는 날, 민수는 포탈라궁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그 웅장한 건물은 이제 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신념의 상징이었다.

     

"가시기 전에 이것을 드리고 싶어요,"

      

텐진이 말하며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그 안에는 티베트의 기도 깃발이 들어있었다.

     

"이 깃발에는 평화와 지혜를 비는 만트라가 적혀 있어요,"

      

텐진이 설명했다.

      

"바람에 날릴 때마다 그 기도가 우주로 퍼져나간다고 해요."

      

민수는 감사의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깃발이 아니라 그의 여정의 상징이 되었다.

비행기에 오르며 민수는 창밖으로 티베트의 산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그 웅장한 산들은 이제 그의 내면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민수는 눈을 감았다. 귓가에 티베트의 만트라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미소 지었다.

      

'그래, 나는 이제 평화의 언어를 배우고 있어.'

      

비행기는 하늘 높이 올랐고, 민수의 영적 여정은 계속되었다. 그의 가슴 속 별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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