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일어나는 일
중요한 면접이 있던 날, 우연히 신었던 양말. 그날 면접이 잘 풀렸다. 다음 면접에도 그 양말을 꺼내 신는다. 시험 전날 먹었던 찰떡. 그날 성적이 좋았다. 다음 시험 전날에도 찰떡을 찾는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징크스'라고 부르며 웃어넘긴다. 미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그 양말을 신으면 안심이 된다. 찰떡을 먹으면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이 사소한 습관 속에 인간 사고의 근본적인 오류가 숨어 있다. 두 가지가 연달아 일어났을 때, 우리 뇌는 즉각적으로 둘 사이에 선을 긋는다. "A 다음에 B가 일어났으니, A 때문에 B가 일어났겠지."
라틴어로 이를 "Post hoc, ergo propter hoc"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이것 다음에 일어났으므로, 이것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는 뜻이다. 서양 논리학에서 가장 오래된 오류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함정에 우리는 매일 빠진다.
행운의 양말 정도야 웃어넘길 수 있다. 문제는 이 오류가 개인의 미신을 넘어 사회 전체를 휘두를 때다.
먼저 개념을 정리하자.
상관관계(相關關係, correlation)는 두 가지 현상이 비슷하게 움직이는 상태를 말한다. A가 늘어날 때 B도 늘어나거나, A가 줄어들 때 B도 줄어드는 식이다. 그러나 왜 둘이 함께 움직이는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
인과관계(因果關係, causation)는 훨씬 강력한 주장이다. "A가 원인이 되어 B라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확신이다. A가 없었다면 B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해야 한다.
가장 유명한 예시를 들어보자. 여름에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나면, 동시에 익사 사고도 늘어난다. 그래프를 그리면 두 선이 거의 평행하게 움직인다.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이 익사 사고를 유발하는 걸까?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하면 익사 사고가 줄어들까?
당연히 아니다. 여름이라는 제3의 변수가 숨어 있다. 날씨가 더워지니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고, 동시에 물놀이를 많이 가서 익사 사고도 늘어난 것이다. 아이스크림과 익사 사고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제3의 변수를 놓치면, 우리는 엉뚱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이 오류는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직장에서 만난 상사들을 떠올려 보자. 커피를 마시지 않던 상사는 성격이 좋았고, 커피를 달고 살던 상사는 고약했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이면 "커피를 많이 마시면 성격이 예민해진다"는 믿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업무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이 커피를 많이 마시고, 동시에 예민해진 것일 수 있다. 커피는 원인이 아니라 지표일 뿐이다.
요즘 한류 열풍과 함께 외국인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오해가 퍼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추위를 타지 않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겨울에 롱패딩을 걸치고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모습, 영하의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든 모습을 보고 그렇게 추측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국의 주택은 온돌 보일러로 실내가 따뜻하다. 집에서는 가벼운 실내복과 슬리퍼 차림으로 지내다가, 잠깐 편의점에 갈 때 귀찮으니 롱패딩만 걸치고 나오는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추위와 무관하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물처럼 옆에 두고 홀짝이는 음료다. 사무실 안은 따뜻하니 얼음이 든 음료가 문제 되지 않는다.
외부인은 겨울과 슬리퍼, 겨울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표면만 연결해서 "한국인은 추위를 안 탄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 맥락을 모르면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로 둔갑한다.
까마귀가 울면 불길하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낮에 거미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밤에 거미를 보면 나쁜 일이 생긴다. 이런 미신들도 같은 구조다. 까마귀와 까치와 거미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인데, 인간이 멋대로 우연의 일치에 의미를 부여했다. 누군가 까마귀가 운 날 안 좋은 일을 겪었고, 그 기억이 전해지며 "까마귀 = 흉조"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여기까지는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오류가 집단적 공포와 결합하면 비극이 된다.
중세 유럽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사역 동물로 여겨졌다. 1233년 교황청은 칙서를 발표해 고양이를 악마의 분신으로 규정했고,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고양이를 "악마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자 모든 마녀의 우상"이라고 선언했다. 그저 검은색 털이라는 이미지가 뭔가 악마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추측이 검은 고양이=악마의 동물로 규정된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유럽 전역에서 고양이 사냥이 벌어졌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무차별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종탑에서 던져지고,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쥐의 개체 수가 급증했다. 그리고 14세기 중반, 쥐에 기생하는 벼룩을 매개로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 유럽 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흑사병의 원인을 고양이 학살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고양이를 마녀와 연결 지은 미신이 쥐의 번성을 막을 천적을 제거했고, 이것이 역병 확산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점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된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한 결과가 이토록 끔찍할 수 있다. 검은 고양이가 나타난 뒤 불길한 일이 생겼다고? 그건 고양이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고양이가 나타난 "때"에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다.
21세기에도 이 오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SNS와 24시간 뉴스 사이클 속에서 더 빠르게, 더 널리 퍼진다.
2012년에는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국가별 초콜릿 소비량이 많을수록 노벨상 수상자 수도 많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은 이를 "초콜릿이 뇌 기능을 향상한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실제로는 경제적 풍요라는 제3의 변수가 숨어 있었다. 부유한 나라일수록 연구에 투자할 돈이 많아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고, 동시에 국민들이 초콜릿 같은 기호식품을 살 여유도 많았던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사례는 1998년에 발표된 백신과 자폐증 연구다. 한 의사가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다. 아이들이 백신을 맞는 시기와 자폐증 증상이 처음 나타나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이 근거였다.
수십 년간의 대규모 조사 결과, 백신과 자폐증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 해당 논문은 데이터 조작으로 철회되었고, 저자는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미 퍼진 공포는 되돌릴 수 없었다. 백신 거부 운동이 일어났고, 사라졌던 전염병이 다시 창궐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2024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공의들이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을 때, 특정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사망했다. 언론은 즉각 연결했다. "전공의들이 없어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사망했다."
조사 결과, 해당 환자는 이미 임종기 단계의 말기 암 환자였으며, 의사들의 부재와 상관없이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사망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믿게 만들었다. 사직 "후에" 사망이 일어났다고 해서, 사직 "때문에" 사망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타이레놀과 자폐증 논란도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임신 중 타이레놀을 복용한 여성의 아이들이 자폐증이나 ADHD 진단을 받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가 있었다. SNS에서는 "타이레놀이 아이의 뇌를 망친다"는 공포가 퍼졌다.
그러나 의학계의 시각은 다르다. 타이레놀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엄마가 타이레놀을 먹어야 했던 이유, 즉 심한 고열이나 염증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타이레놀은 그저 "열이 났다"는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였을 뿐이다.
이 사례는 복잡한 과학적 사실을 "단 하나의 악당"으로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원인을 찾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둔갑시킨다.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깊이 생각하는 건 피곤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아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A 다음에 B가 일어났네? 그럼 A 때문이겠지"라고 빠르게 결론 내리는 게 훨씬 편하다. 복잡한 제3의 변수를 찾고, 진짜 원인을 추적하고, 여러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건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을 가짜뉴스 생산자들이 노린다. 사람들의 "생각하기 싫은 본능"을 이용해서 단순한 인과관계를 던져주면, 피곤한 대중은 그냥 받아들인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아이스크림이 익사를 부른다, 검은 고양이가 불행을 가져온다.
진짜 세상은 복잡하다. 하나의 결과에는 수많은 원인이 얽혀 있고, 그 원인들은 또 다른 원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이 더 빨리 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을 제시하진 않겠다. 다만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다음에 누군가 "A 때문에 B가 일어났다"라고 말할 때, 한 번만 멈춰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건 정말 "그래서"인가, 아니면 그냥 "그때"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