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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둥지 Aug 30. 2022

EP3. 1인 가구의 가계부 정산법

처음으로 돈의 부족함을 느꼈다

컵떡볶이 사먹을 500원만 있으면 됐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입시로 정신없어 돈을 쓸 여력이 없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한평생 돈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낭비만 하지말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꾸미는 데도 별 관심이 없었고 취미가 웹툰을 보는 것 뿐이었기 때문에 세상 돈 쓸 일이 없었다. 코로나로 본가에서 생활하며 보냈던 대학교 1학년 시절에는 주식에 흥미를 붙여 과외를 해서 번 돈을 다 쏟아부운 주식계좌를 하루에도 몇 번을 드나들었지만, 돈에 대한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집에 음식이 있는 것은 당연했고, 욕실에 샴푸와 린스가 떨어지면 새 것을 꺼내놓기만 하면 됐으니까. 한평생 내가 했던 돈에 대한 고민은 이것 뿐이었다. 


'5000원짜리 케이크를 먹을 것인가, 기왕 먹을 거 돈 좀 더 써서 6000원짜리 케이크를 먹을 것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자각없이 돈을 썼다. 아침으로 3000원짜리 토스트 사 먹을 수도 있고, 친구들 만나서 밥 먹을 때 2만원 정도는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옷을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셀렉샵에서 파는 비싼 샴푸를 쓰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지'하고 그냥 필요해 보이는 곳에는 돈을 썼다. 나는 5만원이 넘지 않는 옷을 입고, 쿠팡에서 파는 4000원짜리 샴푸를 써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도로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지출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믿었고, 이 믿음은 내게 카드결제 100만원을 웃도는 통지서로 내게 돌아왔다. 


100만원이 넘는 통지서를 받고 충격을 받은 후, 아! 무지출 연속 7일! 생활비 30만원 절감!과 같은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여전히 카드결제는 100만원을 웃돈다. 비싼 옷을 사입는 것도, 배달을 자주 시키는 것도 아닌데 20살 초반 1인 자취가구의 생활비는 100만원이 넘는지, 그리고 가계부를 어떻게 정산하고 다음 가계부에 반영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나는 엑셀로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다. 매일매일 컴퓨터를 저녁에 켜야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매일매일 가계부를 체크하면 확실히 낭비를 덜 하게 된다. 나는 무려 14개의 카테고리로 소비를 분류하고 있다.

가계부 구성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무조건 지출을 줄이고자 하지는 않는다. 아직 대학생인데 돈 때문에 경험과 배움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 아깝다고 교재를 사지 않거나, 교통비가 아깝다고 팀 프로젝트에 불참하지는 않는다. 쓸 것은 쓰되, 아낄 수 있는 것들은 아끼자는 것이 나의 경제관념이다. 


1. 조정 가능한 카테고리와 조정이 불가한 카테고리를 분류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가 조정가능한 항목과 조정 불가한 항목이 나온다. 여기에는 개개인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나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에 인색하고 싶지 않아 선물 비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물론 무분별하게 선물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나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고 싶을 때는 돈을 적절하게 쓰는 편이다. 8월에는 팀원 언니 2명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1명,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을 전했다. 반면 전기세의 경우 어느 정도 아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 '관리비 등 고정' 항목은 조정 가능한 카테고리에 넣었다. 이런 식으로 조정불가한 항목과 조정가능한 항목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나누면 된다. 


1) 조정 가능한 카테고리 > 516,706원

(1) 데이트추가비용: 8만원

(2) 관리비 등 고정: 14만원

(3) 식비(optional): 6만원

(4) 취미: 2만원

(5) 교통비: 14만원

(6) 집 관리: 5만원

(7) 기타: 3만원


2) 조정 불가한 카테고리 > 720,440원

(1) 데이트정기비용: 20만원

(2) 학업: 6만원

(3) 식비(essential): 12만원

(4) 만남비용: 1만원

(5) 꾸밈비용: 13만원

(6) 선물비용: 18만원

(7) 학생회: 3만원

2. 조정이 가능한 카테고리 중 낭비한 금액을 파악한 후 줄일 수 있는 금액을 찾는다. 

조정이 가능한 카테고리 중에서 줄일 수 있었던 돈을 찾는다. (ex.교통비: 여름 휴가 기차비용으로 10만원이 나갔다. 다음 달에는 추석 때문에 내려가야하는데, 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아껴보자. 14만원을 10만원 안쪽으로 줄여보자) 그러면8월의 경우 약 13만원 정도 줄일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카테고리를 세세하게 나눠서 돈을 기록하고 낭비한 금액을 찾아서 다음 달 소비에 반영하는 것까지 해야 가계부 정산이 끝나는 것이다.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자취 초반에는 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당황했다. 간식까지 다 포함해서 한 달 내 식비는 현재 약 17만원 정도이지만, 초기에는 거의 40만원 정도가 나왔다. 아무래도 요리를 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고, 싼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했던 탓이다. 하지만 아무리 싼 음식을 먹어도 하루에 1만원은 쓰게 된다. 그렇게 싼 음식들로 2~3일 지내다보면 갑자기 비싼 음식이 먹고 싶어지고, 그러면 하루에 식비로만 3~4만원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가계부를 잘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고 차차 조절한 결과 10만원 후반대로 식사에서 간식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가정도 아닌데 가계부를 이렇게 치밀하게 쓸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다. 하지만 대부분의 1인가구들도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돈으로 생활하기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더 쓰려면 치밀한 가계부는 필수다. 어떻게 보면 가계부의 카테고리를 정하고 분류하는 일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 힘을 줄만한 곳에 주고, 뺄 곳에는 빼는 것. 나는 앞서 말했듯 식비를 최소화하되 선물 카테고리는 여유있게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사야하는 것도 많은 세상에서 1인 가구가 '카테고리화해서 가계부를 쓴다'는 말은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일상을 꾸려나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가계부를 보면 한 사람의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9월에는 8월보다 더 내 가치관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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