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kwanEJ Feb 03. 2022

브라이어 대법관 은퇴 선언

바이든에게는 드디어 하나라도 성과를 낼 기회?

 글은 2022 2 1, 뉴욕 라디오 코리아 (FM 87.7)와의 인터뷰 내용을 글을 옮겨  이야기입니다.  과정에서 약간의 내용 추가와 수정을 거쳤습니다. 주간 <미국 정치 이야기> 인터뷰 내용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26일, 미국 뉴스는 하루 종일 한 가지 소식만을 다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방 대법관 중 한 명이 곧 은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월 27일, 이 소식의 주인공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2023년 6월에 끝날 연방 대법원의 이번 회기를 끝으로 대법관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워싱턴 정가와 시사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이 소식을 오늘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aka the High Court)과 브라이어 대법관

연방대법원에는 총 9명의 대법관이 있습니다. 헌법 제정 당시에는 대법관의 구성을 의회의 권한으로 맡겼고, 1789년 연방대법원법이 처음 제정된 뒤 대법관의 숫자는 여러 번 바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끝나고 난 뒤, 가부동결을 방지하기 위해 홀수인 9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직 대법관 9명 중 3명이 진보 성향, 6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대법관 임기는 종신제로 사망 또는 자진 사퇴 시에만 공석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경우 대통령만이 새로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으며, 지명자는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임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직 대법관 중 3명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 대통령의 지명으로 임관했고, 6명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그중 무려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법관으로, 이전 대통령인 오바마가 임명한 대법관의 수 2명보다도 많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단일 임기 동안 대법원의 성향을 진보 4: 보수 5에서 진보 3: 보수 6이라는 성향으로 "밸런스"를 본인의 방향으로 크게 바꿨습니다. 참고로 역대 대통령들의 평균 임명 대법관 수는 2.6명이고, 역사상 임기 중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프랭클린 로저벨트로 무려 9명의 대법관을 임명한 바 있습니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스티븐 브라이어 (Stephen Breyer) 대법관은 지난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명으로 대법관의 임기를 시작해, 현재 2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법관에 임명되기 전에 그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 상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전문 변호사, 연방 특검보, 연방 순회 항소법원 판사 등을 역임한 평생 법조인입니다.


그의 은퇴에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브라이어 대법관의 상원 인준 절차 중 인사청문회를 주재하던 당시 상원 법사위원장은 다름 아닌 조 바이든입니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이제 브라이어 대법관이 은퇴를 선언하게 되어, 그의 후임자 또한 임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요, 이로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 대법관의 인사청문회를 주재하고 그의 후임까지 지명하게 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2022년 1월 27일, 브라이어 대법관은 백악관에서 은퇴를 선언하며 미 헌법 (Constitution)의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 AFP/Getty Images)


지금 은퇴하는 이유

은퇴를 지금 선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 번째는 故 긴즈버그 대법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두 번째는 지금 정치적 수세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을 돕기 위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2020년에 작고하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Ruth Bader Ginsburg) 대법관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역사상 여성으로 연방대법관이 된 두 번째 인물이자, 평생을 성평등을 위해 애쓰신 분이시죠. 그의 나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하고는 했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임기 후반이었던 2014년에 이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큰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당시 긴스버그 대법관은 81세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보수정당의 후보인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차기 진보 대통령을 기다리겠다며 건강관리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보수 대통령의 임기 동안 본인이 은퇴를 하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본인을 대체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진보 4: 공화 5 였던 대법원의 균형이 보수 쪽으로 확 쏠리게 될 것을 걱정했던 것이죠.

RBG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살아생전 무려 6편이나 나왔으며, 그에게는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과 오페라에서도 출연 요청이 쇄도했었다.

그러다 2020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어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만으로 83세가 된 브라이어 대법관은 혹여나 이런 전철을 밟게 될까 하는 우려에 은퇴를 마음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진보 성향의 시민활동가들은 진보 성향인 '브라이어 대법관 자리에 또 다른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들어올 수 있게 사퇴하라'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고령이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불명확하고, 더욱이 예측 불가능한 정치 지형을 맞닥드리고 있기에 이런 결정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퇴를 하게 되면, 정치적인 견해는 비슷하되 상대적으로 젊은 대법관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죠. 연방대법관의 평균 임기가 26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30여 년간은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일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년간은 그의 정권에 있어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 시국과 그에 따른 경기 침체, 예상보다 큰 희생이 따른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인프라 투자 법안도 수개월 답보 상태에 있다가 겨우 통과가 되었고, 취임 초기부터 공언했던 사회 인적자원 투자 겸 경기부양법안은 상원 통과가 불투명해 보이고, 어떻게든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으나 허무하게 가로막힌 투표권 증진 법안, 멕시코와의 국경에 몰리는 인파, 러시아 중국 등과의 갈등 등등 너무나도 많은 과제가 산적되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모든 대통령들이 최우선 성과로 꼽는 본인과 같은 성향의 대법관 임명이라는 큰 선물을 바이든에게 안길 수 있다면, 수세에 빠진 바이든에게는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 또한 될 수 있습니다.


대법관 지명자 후보군 소개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본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반드시 흑인 여성을 대법관에 임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에 현재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후보군 또한 모두 흑인 여성 판사들입니다. 오늘은 언급되는 후보 중 3명을 소개드리고자 하는데요, 그에 앞서 바이든은 왜 콕 집어서 흑인 여성을 대법관에 임명하겠다고 선언했을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785년에 미 연방헌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임명되었던 연방대법관 총 115명 중 여성은 단 5명, 유색인종은 단 3명밖에 없었습니다. 이 중 유색인종이자 동시에 여성인 대법관은 단 1명이고요, 흑인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에 흑인 여성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 과 같은 맥락으로 다양성 증진이라는 상징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공식적인 후보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지명자에 대해 2월 말까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아래 말씀드리는 후보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 절차를 이해하는데 돕고자 추려낸 인물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먼저 말씀드릴 분은 현재 연방 항소법원 워싱턴DC법원의 판사를 맡고 있는 케탄지 브라운 잭슨 (Ketanji Brown Jackson)입니다. 이분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중 가장 먼저 임명했던 연방 판사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도 하는데요, 무엇보다 현직 연방 항소법원 판사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연방 항소법원은 연방 법원 체계에서 대법원 바로 밑 단계에 위치해 있고, 특히 연방 항소법원 DC법원은 행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을 다루기에 세칭 “미니 대법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실상 전국단위의 영향을 끼치는 곳입니다. 이 분은 판사가 되기 전까지는 국선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다음은 미셸 차일즈 (J. Michelle Childs) 판사입니다. 현재 연방 지방법원 사우스 캐롤라이나 지법에 계시고요, 노동법과 고용법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이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사실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짐 클라이번 (Jim Clyburn) 하원의원 때문입니다. 하원 원내총무를 맡고 있고, 오랫동안 남부지역의 흑인 표심을 움직여온 클라이번 의원은 특히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2020년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 경선 중 벼랑 끝에 몰렸던 바이든 캠페인을 본인의 지역구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프라이머리를 며칠 앞두고 공개지지하고 대대적으로 지원한 덕분에 바이든 대통령이 당시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라이번 의원이 차일즈 판사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이후, 같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이지만 정치성향은 정 반대인 린지 그레이엄 (Lindsey Graham) 연방 상원의원 또한 차일즈 판사가 적절한 인물이라고 보인다며 언론에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오바마 정권부터 연방 대법관에 대한 상원 인준 표결에 가부표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중진 의원인 그레이엄 의원의 이런 행보는 굉장히 이례적입니다. 그는 또한 상원 법사위에도 소속되어 있기에 인준 절차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클라이번 하원의원과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나아가 연방 대법관들은 아이비리그 출신 일색이기에, 보통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비-명문대 출신 판사를 임명하는 게 옳다는 주장을 또한 펼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후보는 레즐리 에이브럼스 가드너 (Leslie Abrams Gardner)입니다. 사실 이분은 기용될 가능성이 앞서 말씀드린 두 분에 비해 낮은 게 사실인데요, 그럼에도 공식 지명자가 발표될 때까지는 이분의 성함이 뉴스에서 많이 거론될 겁니다. 왜냐하면 이분의 언니가 바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Stacey Abrams) 전 조지아 주 하원의장이기 때문입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는 조지아 주지사에 출마하며 아주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며, 공화당 텃밭으로 여겨졌던 조지아 주에 신규 민주당 유권자들을 대규모로 발굴해낸 인물입니다. 바이든이 작년에 조지아 주에서 당선된 것, 또 같은 선거에서 무려 두 명의 민주당 후보가 조지아에서 연방 상원에 당선된 큰 이변 또한 결국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2017년부터 진보 성향 시민들의 민심을 다진 결과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또한 사실 부통령 후보로 바이든 대통령이 고민하던 최후의 3명 중 한 명이었던 만큼, 그의 동생을 대법관에 임명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갚지 않을까 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레즐리 에이브럼스 가드너는 현재 연방 항소법원 북 조지아 법원의 판사로 재직 중입니다.


일각에서는 또한 현재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를 대법관에 임명하는 깜짝 드라마가 있는 것 아니냐 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대다수의 워싱턴 인사이더들은 정치적 상상 정도로 선을 긋는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역사상 전직 또는 현직 부통령이 연방 대법관에 임명된 경우는 전무하며, 전직 대통령이 연방 대법관에 임명된 경우는 단 한차례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으로, 그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본인의 꿈은 연방 대법관이라고 밝혀온 법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한 사람

대법관 지명 절차를 다시 한번 정리해드리자면 다음과 같은 수순이 있습니다. 먼저 대통령이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고, 상원 법사위에 지명자의 인준을 요청합니다. 상원 법사위에서는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뒤 상임위 심사 표결이 진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 본회의 표결에 상정됩니다. 본회의장에서 50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면 가결로 간주하여 임명 절차가 완료됩니다. 물론, 이 수순을 거치면서도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은 심사숙고와 꼼꼼한 검증이 수반되기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고, 상원 법사위의 절차는 법사위원장 또 본회의 표결은 상원 다수당 리더에게 전권이 있기에 진행 속도는 전적으로 그들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상원의 구성이 민주당 소속 의원 50인, 공화당 소속 의원 50인인 현재 상황에서는 소수당 또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상원 소수당 리더는 다름 아닌 밋치 맥코넬 (Mitch McConnell)이기에 민주당은 더욱이나 긴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밋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리더 (출처: Getty Images)


맥코넬 의원은 1984년 연방 상원에 처음 당선되어 현재 38년째 켄터키를 대표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상원 공화당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이 된 2015년부터 2020년 말까지는 사실상 상원의 리더였죠. 미 연방상원의 구조는 독특해서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모든 절차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동시에 다수당 리더는 상원의 모든 절차를 조정하고 또 수정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맥코넬 의원은 본인의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상원의 특성을 십분활용했기에 공화당 리더로서의 위치를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그의 상원 공화당 리더로서의 임기는 공화당 역사상 최장기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최우선 목표는 연방 법원에 보수 성향의 판사를 가능한 많이 앉히는 것입니다. 이는 연방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임명권 그리고 상원에 인준권이 주어지는 총 874석의 연방 판사직을 모두 목표로 한다는 뜻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시기가 여러모로 많은 연방판사—특히 단일 임기를 지낸 대통령이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임명했다는 것은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를 임명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맥코넬 의원의 전방위적인 노력과 헌신적인 열정으로 트럼프 정권이었던 2016년부터 2020년 단 4년 동안 총 234명의 연방판사가 임명 또 인준될 수 있게 이끌었습니다.


보수 성향의 판사 임명에 (요즘 말로 하면) "이렇게 진심"인 그는 반대로 진보 성향의 판사 인준 절차에 있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절차를 지연하거나 아예 낙마하도록 접근합니다. 일례로, 그는 오바마 정권 마지막 해 2016년에 당시 연방 대법관이었던 안토닌 스칼리아 (Antonin Scalia)의 사망으로 발생한 공석에 대체 법관을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새로운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빼앗는 행위"라며 인준 절차를 일절 진행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4년 뒤, 새로운 대선 정국이었던 2020년에는 선거를 불과 몇 달 남겨두고 사망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자인 에이미 코니 배럿 (Amy Coney Barrett) 판사를 신속하게 인준해 민주당의 지탄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16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자는 대선으로부터 270일 전에 발표되었고, 2020년에는 대선을 불과 47일 남겨두고 대법관 지명자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뿐만 아니라 그는 2017년 상원의 필리버스터 제도를 대법관 인준 절차에 한정해 폐지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법관 후보자 인준은 상원의 가결 정족수인 60표가 아닌, 단순 과반수 50표로 통과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지난주 브라이어 대법관의 은퇴 선언 이후에 워싱턴 정계에서 나온 농담 중에 “맥코넬은 본인 배우자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더라도, 그 임명권자가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반대할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맥코넬 의원의 아내인 일레인 차오 (Elaine Chao)는 대만 출생 이민자로, 조지 부시 정권에서는 노동부 장관 트럼프 정권에서는 교통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대법관 임명의 중요성

이렇게 긴 설명을 들으시면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연방 대법관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길래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거야?


앞서 말씀드린 대로, 무엇보다 대법관 임명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어 가장 큰 성과로 뽑을 만큼 중시되는 역할입니다. 1960년대 이후로 연방 대법관의 평균 임기는 26년으로, 임명한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더라도 거의 한 세대 동안 그의 정치적 견해가 연방대법원에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이라고 하면 우리 일상으로부터 굉장히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곧 있을 하버드 대학 입시 과정에 대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예의 주시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재판에서는 하버드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두 곳만이 피고로 정해져 있지만, 판결에 따라 앞으로 대학입시에 있어 현재 심사기준으로 널리 사용되는 항목 중 하나인 "인종 및 문화적 배경"이 고려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주: 저는 개인적으로 affirmative action을 지지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정부기관 소속 근로자 대상 백신 의무화 정책의 시행이 중단되었고, 작년에는 텍사스 주에서 새로 제정한 낙태금지법에 손을 들어 각 주에서 유사한 형태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12년 동성혼에 대한 판결, 또 1897년에는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부모님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의 시민권자로 본다는 판결 등등 굉장히 많은 판결이 현행 법과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연방 법원이고 미국 중앙 정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 삶에 밀접하고 지대한 영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변화는 내일 당장 느껴질지 몰라도 멀지 않은 미래에 분명하게 우리 일상에서 느껴질 것입니다.



*상원의 필리버스터 폐지 또는 수정은 흔히 "핵 옵션 (nuclear option)"으로 불릴 정도로 그 사용에 있어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한번 수정이 되고 나면 새로운 선례가 생겨 미래에 다수당과 소수당의 지위가 바뀐 뒤에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3년 핵 옵션을 통해 대법관을 제외한 연방판사의 인준에 있어 필리버스터를 폐지한 당시 상원 다수당 리더 해리 리드 (Harry Reid, 민주-네바다) 의원의 결정으로 오바마 임기 동안 연방판사 인준 절차에 공화당과의 협상할 필요가 줄어들었지만, 그 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크게 후회했습니다. 또한 이 결정을 선례로 들어 맥코넬 의원이 트럼프 임기 중 상원 다수당 리더의 지위로 대법관 인준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본회의 절차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법사위 내에서도 연방판사 인준에 있어 해당 법원이 소재한 주의 상원의원들의 의견이 법사위에 제출되기 전까지는 인준 절차를 임시 중단하는 관례 (이 의견은 파란색 종이에 기재하여 제출하기에, 흔히 블루 슬립 blue slip이라고도 지칭됩니다) 또한 트럼프 임기 중 무시되어, 바이든 정권이 시작되고 나서 민주당 법사위원들 또한 같은 관례를 무시하며 보복을 행하고 있습니다. 선례를 굉장히 중시하는 상원의 운영방식과 구조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유사한 형태의 법안이란 비단 낙태라는 주제에 제한하지 않고, 주정부가 실제로 해당 사안에 대한 법집행을 도맡아 하지 않고 일반 시민 누구든 제보를 하는 경우 큰 보상을 내리는 형태로 시민들의 감시와 신고를 독려하는 방식의 규제법안을 의미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디슨의 악몽, 우리의 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