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연방 의사당은 침공당했고, 나는 울었다.
지난 2014년에 난생처음 워싱턴 DC의 연방의사당을 방문했을 때,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어리고 평범한 시민일 뿐인 나의 말을, 그곳에서 금빛의 명함을 갖고 양복차림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영화에서만 봤었던 가죽 노트에 열심히 적어가며 경청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발을 들이기 불과 하루 전에야 우리 동네 연방 의원이 누군지 찾아봤고, 당시에도 하원 의석수 조차 몰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운 좋게 여러 명의 의원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십 수 명의 보좌관들과 면담했으며, 심지어 의사당 내 (현재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원내대표실까지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지난 6년간 셀 수도 없이 자주 들르는 장소가 될 줄은 당시에는 몰랐다. 때때로는 뉴욕에서 동트기 전 출발해, 하루 종일 상·하원 의원회관 여섯 건물을 쭉 돌고 다시 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의 선배이자 사수는 그 먼길을 항상 도맡아 운전했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도 배로 많이 오갔던 길이었다.
이제는 입장할 때 긴장하지도 않고, 어느 위치에서나 화장실을 찾을 수 있고 친한 보좌관들과 우리만 아는 비밀의 장소도 생겼지만 의사당에 갈 때마다 아직도 매번 설렌다.
의사당과 의원회관의 계단은 대부분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의원회관 내 계단에는 오랜 시간 동안 지나간 수많은 발걸음으로 움푹 팬 자국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복도를, JFK와 그의 동생 RFK도 의원 시절에 걸어 다녔을 테고, 의사당 안의 복도는 220년 전 링컨이 숨 쉬며 고민했던 장소다. 그 역사의 흐름에 나 또한 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그런데 지난주, 처음 보는 발자국이 생겼다. 완전무장한 경찰특공대의 모습이었다.
자동소총을 지닌 의회 경찰관의 모습은 간혹 봤지만, 전투복장의 군인이 무리를 지어 의사당 캠퍼스에서 실내를 거니는 모습은 평생 처음 봤다. 며칠 전에는 의사당에 주방위군 군인 천여 명이 수면을 취할 곳이 없어 의사당 본관과 방문객 센터 복도 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미 해병대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 네 차례 파병 경험이 있는 한 하원의원은, “지금 아프가니스탄 보다 이곳에 더 많은 병력이 모여있다”며 이 광경을 표현했다.
모든 사람의 상상 밖에 있었을 법한 이런 모습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난 1월 6일 의사당 침공에 따른 반응이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결과가 빼앗겼다는 음모론—이제는 the Big Lie라고 통용된다—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고, 트럼프를 비롯한 여러 연사들의 발언에 따라 집회 후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날 현장에서 본 이 집회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마스크 착용은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메시지가 적힌 옷이나 깃발을 소지했었다.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이 곳까지 먼 걸음을 한 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흉흉한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사람 중 상당수는 무전기, 헬멧은 물론 흔히 방탄조끼라고 하는 플레이트 캐리어 등 "가짜사나이"의 UDT 요원들이 착용할 법한 작전 장비(tactical gear)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주도해서, 의사당의 경찰관들을 공격하고 의사당 건물 안으로 무단 침입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폭도들은 낸시 펠로시 의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특정 인물들을 찾아다녔고 상원 본회의장까지 점거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하원 본회의장 진입은 실패했지만, 당시에는 2020년 대통령 선거 결과의 인증절차를 상·하원 합동회의를 통해 막 시작했던 때라 수백 명의 의원들과 보좌관, 의회 직원, 기자들이 내부에 있었고 그들은 오후 내내 숨죽이고 피신해야만 했다.
의사당이 점거당한 수시간 동안의 사건, 이 폭동에 의해 발생한 다섯 명의 사망과 여러 명의 상해사고, 폭도들의 목적과 사전 모의된 계획 같은 것은 이미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고, 또 연방정부와 워싱턴 DC 시정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를 통해 속속히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미국에 가져온 충격의 깊이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미 연방 의사당은 자유의 성 (citadel of liberty) 또는 민주주의의 신전 (temple of democracy)과도 같은 거창한 문구로 표현된다. 실제 현존하는 의회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국가단위의 입법기관인 미 연방의회가 만나는 건물이기도 하다. (국가단위를 제외하면 버지니아 주의회가 현존 입법기관 중 가장 오래되었다.)
의사당의 아이콘과도 같은 돔은, 미국 의회를 대표할 뿐 아니라 수도 워싱턴 DC를 넘어 미국을 상징하는 모양이며, 의사당에는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고 바로 앞에는 연방대법원이, 양 옆으로는 상·하원의원회관이 포진되어 있다. 의원회관은 한국과 달리 전적으로 열려있고, 입장 시에 일절의 신분확인 절차도 요구되지 않는다. 반입금지 물품을 소지하지 않는 이상, 아무 제제 없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며 그 누구의 지역구도 국적도 묻지 않는다. 실제로 이 부분은 한국의 국회의사당과 가장 큰 차이점인지, 한국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은 항상 신기하게 여긴다.
의사당 본관은 그와 다르게 보좌관 대동 없이 또는 본관 내 업무목적이 인증되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하고, 상·하원의 본회의장 입장에는 더욱이 조건이 까다롭다. 관계자 외에는 반드시 보좌관 또는 의원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것도 휴회일에만 본회의장의 바닥 (well)을 밟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원이 방문하는 경우에는, 모두 자리를 비켜야 하는 규율 또한 적용된다. 링컨 기념관 등 미국의 역사 유적에서와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되, 어떤 신성함에 대한 예의가 누가 명시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불문율로 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당 침입 사건은 폭동이자, 내란 선동 (insurrection), 국가 전복 시도 (sedition)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 뉴스 보도에서 "민주주의가 짓밟혔다"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흘렸다.
미국은 하나의 국가임을 넘어, 특정한 가치와 이상의 집합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고, 나와 같이 이민자 가정 출신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은 곧 꿈이자 희망이다. 이 날 사건은 그래서 한 건물이 더럽혀진 정도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과 같은 이방인 그리고 소수자들의 꿈과 희망이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이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에 살기 위해 그 고생을 하셨는가"라는 회의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날 의사당에는 내가 우러러보는 의원들과 그들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한인도, 백인도, 흑인도 있고, 라틴계도 무슬림도 있었다.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다들 목숨에 위협을 느꼈고 큰 트라우마를 겪었다. "다음에 우리 사무실에 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라고 한 보좌관 친구는 두려움을 표현했고, 다른 친구들은 앞으로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안부를 묻는 문자에 한 친구는 이렇게 답을 했다: "같이 힘내자. 이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정부라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
매일같이 의원실에서 업무를 본 뒤에도 늦은 밤까지 의원을 운전해서 모셔다 주는 친구에게 온 말이다. 당장 건물 밖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논리도 증거도 없이 무력으로 정부를 장악하려는 무장 폭도들이 있는데도, 초연히 보낸 그 문자 메시지에는 그 친구의 진정성이 담겨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시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날 폭동이 시작되기 전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밋치 맥코넬 의원은 대선 결과 인증에 이의를 제기하는 같은 당 의원들을 비판하며, 본회의장에서 평소와 다르게 날이 선 연설을 전했다. 대선 결과 인증 투표가 본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가 될 것이라며 전한 이 연설에는 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We cannot keep drifting apart into two separate tribes with a separate set of facts and separate realities, with nothing in common except our hostility towards each other and mistrust for the few national institutions that we all still share.
서로 다른 사실과 동떨어진 현실만 가지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고는 서로를 향한 증오와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적인 제도에 대한 불신밖에 없이 우리는 계속 두 개의 공동체로 갈라지고 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두 개의 현실로 갈라져 살고 있는 걸까. QAnon 등 음모론과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와 열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주장이 실제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지고 나서,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내용 규제를 시작했다. "검열" 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이 그에 맞서 나오기 시작하고, Parler 등 소위 "대안" 플랫폼으로 극우 성향의 유저들은 옮겨가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시대 전에도 도시지역은 점점 더 사회 다원화에 호의적이고 진보적으로 (liberal), 반대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은 더욱더 보수적으로 (conservative) 변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하고, 실제 감염 케이스를 겪지 못한 시골지역에서는 코로나 19를 헛소문이자 음모라고 치부한 것 또한 그 결을 같이 한다.
약 250년 전에도 미국의 헌법 제헌가들 (Founding Fathers)은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방지하고자 헌법적인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었다. 연방주의자 논문 제10호 (Federalist Paper No. 10)에서 매디슨은 사회가 계파로 나뉘는 현상은 자연스럽고—특히 미국과도 같이 방대한 영토의 국가에서—언제든 반복될 것이기에,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원을 통하는 간접 민주주의 (Republic) 제도가 미국에 적합할 것이라 주장했다.
So strong is this propensity of mankind to fall into mutual animosities, that where no substantial occasion presents itself, the most frivolous and fanciful distinctions have been sufficient to kindle their unfriendly passions and excite their most violent conflicts.
긴 글에 중요한 논지가 여러 개 있지만, 역시나 오늘날에도 유효한 우려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시민은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우며, 사회가 여러 계파로 분열이 될 때 대의와 공공의 이익보다 계파로서의 우위 선점에 휩싸인 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문제 또한 그 우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소셜미디어의 유행 자체가, 또는 플랫폼의 적절한 규제 정책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 놓기 위한 알고리즘 때문에 사용자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비판에서 멀어지고, 점점 더 자신과 같은 관점의 사람들 하고만 교류하게 된다. 스스로를 "버블"에 가둬놓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한 한국의 친구들에게 카톡이 많이 들어왔다. 우연히 하나 같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친척들에게 단톡 방을 통해 받은 소위 "가짜 뉴스"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 또는 조작된 내용을 유튜브 링크 등의 형식으로, 그분들께서도 속해있는 다른 단톡 방 같은 경로로 받으셨을 테고, 진심으로 세상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우리들에게 공유하셨을 테다.
소통의 방식은 점점 편리해지고 다양해지는 와중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편협한 교류만을 찾고 있다. 나와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서로 더 많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최소 노출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다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좀 더 돌아봐야 할 것이다. 매디슨의 악몽은 오늘날 현실이 되어버렸다.
오늘 바이든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온 나라가 희망에 찬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의사당에 다시 편한 마음으로, 또 평소와 같이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발을 디딛는 날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 같다. 바이든이 취임 기간동안 의사당에서의 전시를 위해 고른 그림에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 즉 "언덕위의 빛나는 도시" (the shining city upon a hill)의 모습이 담겨있다. 현실과는 다르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을 그림에서 찾는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날 폭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불평등과 양극화에 고통받고 있고, 세계화와 다문화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소외계층이며, 1월 6일 의사당 침입 사건은 그 분노의 표출이라고 표현했다.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1차원적인 해석이며, 본인이 원하는 결론에 필요한 사실만을 편집해 쓴 글이라 일부라도 다시 읽을 가치가 없어 링크를 걸지 않겠다. 백인이자 낮은 소득 수준과 심화되는 양극화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 중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날 워싱턴 DC에 집결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중산층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중에 하루 이상의 시간을 내서 먼 걸음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수의 보도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의 대다수는 DC 시내의 호텔에서 1박 이상을 묵었다. 트럼프가 직접 연설하는 대규모 집회가 있는 날에 DC 시내 호텔 가격은 평소보다도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예삿일이고, 사진과 영상기록으로 보다시피 의사당에 침입한 폭도의 다수는 비싼 군사 작전 수행용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일부는 개인용 비행기를 전세 내어 DC에 방문했고, 외부 단체에서 무료로 제공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참가자도 많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트럼프 캠페인 용품과 의류를 착용한 것으로 볼 때 이 날 워싱턴 DC에 있었던 그들은 결코 경제적 위기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