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권을 보장했던 Roe v. Wade 판결이 뒤집힐 수 있었던 건
Roe v. Wade가 뒤집혔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다. 대법원 판결이 번복된 적은 지난 232년간 단 233차례뿐이다. 대법원이 다룬 모든 재판에 비하면 2%에 못 미치는 수치인데, 그런 만큼 이번에도 설마 뒤집겠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난 49년간 사실상 미국의 법으로 인식되었고, 큰 논란이 된 법리적 사안들이 이 판례에 기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 파장은 더욱이 크다. 오늘 Dobbs v. Jackson 판결로, 지난 Roe에 대한 판결이 무효되어 임신중지권은 더 이상 연방에서 보장하는 권리가 아니다. 나아가, 같은 논거로 시민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목적으로 보호되었던 다수의 민권 또한 침해될 가능성이 열렸다.
단 몇 명의 생각으로 수백만명의 권리가 순식간에 빼앗기다니. 역시 뭐든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것일까. 어쩌면 잃기에 쉽기 때문에 얻기 어려운 게 아닐까.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세명은 의견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작성했다: "With sorrow...we dissent."
오늘 Dobbs 판결에 있어 짚어볼 만한 인물이 몇 있다. 임신중지권 관련 활동가나 법률가들이 아닌 이 사안의 정치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다.
2005년부터 대법원장을 맡고 있다. 부시43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에서 78표:22표로 인준되었다. 당시에는 너무 보수적이지 않냐는 우려가 있었고, 오바마 임기 때에는 그 우려가 더 심화되었지만, 트럼프가 취임하고 나서는 온건중도파로 재조명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버츠 대법원장은 스스로를 institutionalist라고 표현한다. 본인의 이념이 있지만 대법원이라는 기관이자 곧 제도인 개념 자체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 다시 말해 대법원의 역할은 소위 "속도조절"이라고 생각하는 대법관이다. 때문에 트럼프의 임명으로 보수성향의 대법관이 늘어나면서 판결의 성향이 정치 스펙트럼의 가운데로 빠르게 옮겨갔다. 이번 Dobbs 판결에서도, Dobbs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그렇다고 지난 판례인 Roe v. Wade를 뒤집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때문에 오늘 언론에서는 대법원의 판결이 5:4였다라는 보도와 6:3이라는 보도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1948년 생으로 1991년 부시41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대법관이 되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흑인 연방 대법관이 된 인물이다. 현재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으로, 오늘 Dobbs 판결에 별개의견을 내면서 지난 Griswold, Lawrence, 그리고 Obergefell 판례 또한 번복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판례는 순서대로 피임에 대한 권리, 동성 성행위에 대한 권리, 그리고 동성혼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왔다.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보수성향이기에, 오늘 판결을 통해 사실상 무게중심은 이제 토마스 대법관에게로 넘어왔다는 해석이 널리 퍼지고 있다. Supermajority에 맞서 로버츠 대법원장이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그 한계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다. 토마스 대법관의 아내 Ginni Thomas는 유명한 보수 활동가로 2020년 대선 부정투표 음모론에 기반해 일부 개표상황을 저지하려 했으며, 또한 2021년 1월 6일에 벌어진 의사당 난동 사건에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토마스 대법관이 번복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판례에 타인종간의 결혼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 둘이 다인종 부부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중도주의와 초당적 협치를 중시하는 현재 상원의원 4명 중 한 명으로 1997년부터 메인주를 상원에서 대표하고 있다. (그의 전임자 Olympia Snowe 상원의원 또한 오랫동안 초당적 협치를 중시해온 인물이다.)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는 사회 이슈에 대다수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과 종종 다른 입장을 보이기에, 대법관 인준과도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 있어서는 항상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Garland와 Kavanaugh 대법관 인준에 있어서 찬성표를 던질 것인지가 미지수였는데, 당시 후보들로부터 "Roe v. Wade는 성립된 법이며 판례를 뒤집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기에 찬성했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지난 5월 3일 Dobbs 판결문의 초안이 누출되었을 때도 콜린스 의원에게 입장이 많이 보도되었고, 그는 오늘도 "그들이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초당적 협치를 중요시하는 4명의 상원의원 중 청일점이자,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원인 조 맨친 의원은 바이든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당의 최우선 순위 현안에 빈번히 반대표를 던져 주요 법안을 다수 좌초시켰다. 때문에 오늘 Dobbs판결 이후 그가 발표한 입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항상 낙태에 반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하지만 명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Roe v. Wade 판결이 지금까지 보호해왔던 권리들을 법제화할 법안을 지지한다." 럭비공 같고 상대당의 첩자 같다고 맨친 의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전문을 읽어봤으면 한다. 시류에 휩쓸리거나 당의 정치적 상황보다 스스로의 가치와 신념에 기반해서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가톨릭이자 보수적인 웨스트버지니아의 의원으로 이런 입장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 판결이 발표된 이후 상당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성소수자 포용 등 다양성 보호에 앞장서온 예수회에서 오늘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큰 반발이 뒤따랐다.) 그는 또 Gorsuch 대법관과 Kavanaugh 대법관이 인준 청문회에서 선서 아래 약속을 깨고 기존의 판례를 뒤집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을 두고 승자와 패자를 갈라서는 안 되겠지만, 맥코넬 의원에게는 오늘 판결이 삶에서 손에 꼽을 만한 성과일 것이다. 그의 의정활동 최우선 순위이자 평생 숙원은 최대한 많은 숫자의 보수 성향의 판사를 임명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런 판결과 같이 보수주의자들의 주요 현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탐탁지 않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선물이었다. 트럼프의 임명권을 사용해 단 4년 만에 총 226명의 연방 판사를 임명할 수 있었다. 단일 임기로서는 가장 많은 숫자에 속한다. 대통령은 총 870명의 연방 판사를 임명할 권한을 갖지만, 해임할 수는 없기에 연방 판사의 임기는 종신제와 같고, 이렇게 많은 판사를 임명하기 위해서는 상원에서의 다수당 지위와 함께 시기적으로 운이 따라야 한다. 트럼프와 맥코넬이 함께 임명한 세 명의 대법관들의 연령대를 봤을 때, 앞으로 최소 20년간 그들의 영향력이 연방법 합헌 여부 판결에 있어 이어질 것이다.
이번 주에는 미국 정치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여럿 있었습니다. 총기 소지/휴대권과 임신중지권에 관련해 대법원에서도 또 의회에서도 이례적인 일이 이어졌는데요, 어제 포스팅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판결문이 발표된 이후 연방대법원에는 저격수를 포함한 많은 경찰인력이 투입되어 대법원 캠퍼스를 에워쌓았고, 이 판결을 축하하는 인파와 반대하는 인파가 순식간에 몰렸습니다. 시위는 곧 전국 각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