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kwanEJ Jun 22. 2022

미국에서 가장 기피해야 할 주제 두 가지

총기 소지권 그리고 임신 중지권 두 가지를 한 번에 다뤄야 하는 이번 주

불과 몇 시간 전, 상원에서 총기 소지 규제 강화를 위한 초당적 개혁안이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5월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끔찍한 총격사건이 일어난 이후, 민주 공화 양당 소속 상원의원 각 10명이 초당적 임시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규모 총기 살상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힘을 합쳤는데 약 한 달 만에 성사된 합의입니다. 이러한 속도와 초당적인 협치만 해도 요즘 미국 정치상황에서는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인데, 해당 개혁안이 법제화된다면 근 30년 사이 통과된 총기 규제 강화 방안 중 가장 강력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코네티컷을 대표하는 크리스 머피 의원, 공화당에서는 텍사스를 대표하는 존 코닌 의원이 주도하여 이뤄진 성과입니다.


크리스 머피 의원은 지난 2012년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의 총격사건 이후 총기 규제 강화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왔고, 존 코닌 의원은 이번 참사가 일어난 텍사스주를 대표합니다. 상원 공화당 내 유력한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 여겨지는 코닌 의원은, 지난 주말 사이 텍사스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총기 규제 강화에 반발하는 당원들의 강력한 비난과 야유를 피부로 받았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고, 또한 현재 공화당 원내대표인 밋치 맥코넬 의원의 굳은 지지를 업고 이번 합의안 성사에 큰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유밸디 총격 사건 이후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며 본회의장에서 무릎을 꿇은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


개인적으로는 이번 개혁안이 너무나도 점진적이고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아직 초당적 협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 놀랍고도 이례적으로 고무적인 성과로 보고 있습니다. 소위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상원에서 최소 61표의 찬성표 확보가 기정 사실화된 이때, 바이든 대통령의 책상으로 이 법안은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번 개혁안은 협의체 구성원들이 기본 프레임워크에 동의한 지 9일 만에 도출된 합의입니다. 양측에서 많은 양보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지난 주말 사이 이 합의를 좌초시킬 수 있었던 변수가 무려 세 가지나 떠올랐습니다. (초당적 총기 규제 강화 개혁안에 대한 요약이나 구체적인 설명은 다른 글을 통해서 많이 접하실 수 있을 줄로 알기에, 저는 법안의 본문을 공유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가장 많이 보도된 쟁점은 소위 '보이프렌드 허점 (boyfriend loophole)'이라고 불리는 가정폭력 전과자의 총기 소지 규제에 있어 그 폭력 대상의 범위, 그리고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을 끼친다고 판단이 되는 자로부터 총기 압수를 허용하는 '레드 플래그 (red flag)' 조항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등잔 밑 그림자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암초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이드 조항 (Hyde Amendment)'입니다.


미 연방의회에서는 초당적 합의가 없이 통과되기 어려운 법안이나, 법적 또는 정치적으로 반드시 통과되어야만 하는 법안에 대다수의 의원들이 각자 개인적인 현안을 법안 내 하나의 조항으로 끼워 넣으려고 빈번히 시도합니다. 이는 법안의 본래 취지나 내용과 상관없이, 본인의 찬성표에 대한 대가로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대다수의 경우 결의안의 형식으로 몇 줄 추가하는 정도로 합의를 보게 됩니다. (다만 국방수권법안NDAA 같이 거대한 법안에는 다양한 주제를 국방 및 안보와 관련 있다고 주장이 가능하니, 법안 그대로를 하나의 조항으로 삽입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에 있어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하이드 조항"으로, 연방정부의 예산을 임신 중지 행위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이번 초당적 총기 소지 규제 개혁 법안에도 Hyde 조항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가 지난 주말 사이 일어나,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는데 며칠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이 처럼 사회-문화적으로 대립되는 이슈는 미국 정치와 법 모든 곳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판결문 초안 유출 뒤 연방대법원 앞에 운집한 임신 중지권 옹호 시위대


임신 중지권은 지난 두 달간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주제입니다. 지난 5월 초, 미시시피주의 낙태금지법 위헌소송에 대한 대법원 내부 문건인 판결문 초안이 누출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해당 재판에 대한 최종 판결은 6월 말에서 7월 말 사이에 나올 예정입니다. 현재 재판 중에 있는 미시시피주의 낙태금지법이라는 국소적인 법을 넘어, 지난 50년간 사실상 법으로 여겨졌던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 보장에 대한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이 크기에 많은 미국인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중입니다.


이 시점에서, 현행법 중 유일하게 집행중지 명령을 비껴가고 있는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 (S.B. 8)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 9월 1일 텍사스 주의 새로운 낙태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텍사스 주 내 임신 중지 시술에 대한 지원이 불법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관련 시술과 더불어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 등에서 연방대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2021년 12월 10일 연방대법원은 "임신 중지 시술 제공자가 해당 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소송 대상은 텍사스 주 내 관련 인허가를 관장하는 주체로 제한된다"며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즉, 주지사 또는 주 법무장관/검찰총장 등 대다수의 주정부 대표는 소송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8:1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텍사스 주의 SB8은 바로 이런 허점을 겨냥해서 전략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텍사스 및 기타 주에서 지난 수십 년간 제정되었다가 위헌 판결을 받은 낙태금지법이, 유사한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법의 성공적인 시행을 위해, 해당 법은 주정부가 법의 집행 또는 감시 의무를 지지 않고, 대신에 일반 시민이 해당 법에 대한 저촉행위를 신고하도록 독려함으로써 법의 집행의무를 우회적으로 부여합니다. 신고를 접수하는 텍사스 주민에게는 유효한 신고인 경우 건 당 최소 $10,000의 포상금이 주어지고 관련 소송비용 또한 환급받을 수 있습니다. 집행정지 신청에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소니아 소토마요 대법관은 "이 법이 사실상 시민들을 현상금 사냥꾼으로 만든다"라고 소수의견에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의 의견에 포함된 문장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위의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대법관들 또한 정치적인 입장을 초월하며 신청 내용은 이 법안이 연방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집행정지 신청의 타당성에 한정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텍사스 주 낙태금지법 SB 8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임신 약 6주 차 이후의 모든 임신 중지 행위를 금지하고, 모든 텍사스 주민이 임신 중지 즉 낙태행위를 방조하거나 지원한 주체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부여합니다. 다시 말해,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 소송의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준 모두가 민사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의료보험을 제공하거나, 시술 비용을 대납 또는 빌려준 사람, 자동차 운전을 해주거나 상담을 해준 사람 등 해당 법은 소송의 대상을 굉장히 광범위하게 정의한 것입니다.


그 이후, 올해 3월 말에는 아이다호 주에서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을 차용해 거의 똑같은 법안을 제정했는데요, 유일한 차이는 민사 소송의 대상이 텍사스의 법에서 처럼 광범위하지 않고, 낙태 시술을 받는 환자의 생물학적인 친척으로 제한하며 관련 시술 제공자에게는 최소 $20,000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점입니다. 또 테네시와 오클라호마 등지에서 텍사스의 법과 유사한 법안이 발의가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 연방대법원에서 낙태금지에 관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런 법안이 더 많은 주로 퍼질 것인지도 정해질 것 같습니다.


SB8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하지만 임신 중지권에 대한 위헌 여부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텍사스 주 법 SB 8 설계의 중심에는 바로 새로운 법의 제정에 있어 법의 집행과 감시 역할을 "관" (정부 기관 및 대표자)이 아닌 "민, " 즉 일반 시민에게 떠넘긴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주리 주에서는 이런 우회 메커니즘을 사용해, 낙태 시술을 위해 미주리 주 밖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신고 (민사소송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이 발의되었습니다. 나아가, 캘리포니아에서는 올해 2월에 같은 법적 우회 방식을 통해 살상용 무기 (assault weapon) 및 특정 총기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즉, 주정부가 규제하고자 하는 총화기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민 누구나 해당 총·화기 제조업체 또는 유통업체, 그리고 해당 총·화기 소지자 및 관련 부품 소지자를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가능케 하는 방식입니다. 텍사스의 SB8과 마찬가지로,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 원고는 $10,000의 지원금을 주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되기 전인 2021년 10월 말, 캘리포니아의 총기 소지 옹호단체인 <총기 정책 연대 (Firearms Policy Coalition)>에서는 대법원에 amicus brief라고 불리는 의견서를 제출하여 텍사스 주 법 SB8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해당 법은 사법부의 견제를 무력화시켜 삼권분립의 원칙을 위협할 뿐 아니라, 유사한 법을 통해 향후에도 헌법으로 보장된 미국 시민의 다른 기본권을 침해하는데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논거입니다.


트럼프가 임명하고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중 가장 보수적인 두 명에 손꼽을 수 있는 브렛 카바노 대법관도 텍사스의 SB8을 재판함에 있어, 이 법과 같은 논리라면 향후에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같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도 침해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유사한 법이 유행하면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은 불가피합니다. 법안은 점점 더 교묘하게 만들어지면서 각 이념 진영에서는 더욱 자극적인 이슈에 맞춰 전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에 여론은 더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치적인 양극화로 다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그에 따라 연방의회에서는 입법 정체가 빈번해지고, 주정부에서는 그에 맞서고자 극단적인 입법활동을 전개하며 결국 피해는 민생에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총기 소지권과 임신 중지권은 미국 사회에서 기피해야 할 가장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주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있고, 또 같이 엮여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번 주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연방 의원들이 상하원 할 것 없이, 공화·민주 할 것 없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여름 방학"이 다가와서 일까요? 태산처럼 쌓여있는 밀린 숙제를 앞에 두고,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은 오늘 방송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생방송 시작 한 시간 전에 상원에서 초당적 총기 규제 강화 합의안이 발표되어 부랴부랴 방송 내용을 반 정도 수정했습니다. 앵커께서도 저도 정신없이 코너를 치르면서도 역시 이런 게 생방송의 묘미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지난 3월부터 뉴욕 FM 87.7에서 매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정치 이야기" 방송은 올여름을 끝으로 하차하려고 합니다. 과분한 기회를 얻은 덕분에 저도 우리말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꼭 알리고 싶은 미국 TV 정치광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