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구분이 무슨 의미겠냐마는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코로나도 세 번 걸려 고생을 많이 했고, 가족상도 세 번이나 치렀습니다. 8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퇴직하기도 했습니다. 선거 캠페인에 뛰어든 뒤, 예기치 않은 일로 한국에 오래 다녀와 무려 3개월 만에 워싱턴DC의 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새삼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파란만장했는지 느껴졌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어도, 사실 그저 또 다른 하루이기에 올해와 확연히 분리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은 바람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2년에 있었던 몇 가지 고무적인 일 중 하나는, 제가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단발적인 기고만 몇 번 해왔는데 연재는 확실히 다른 수준의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4월 부터 8월까지는 뉴욕 지역 라디오에서 주간 정치 브리핑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지면으로 칼럼 쓰는 것은 역시 달랐습니다. 올 한 해를 회고 할 겸 칼럼 연재를 하며 느낀 점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제게 지면이나 마이크가 주어지는 기회가 생길 때 제게 제일 먼저 드는 질문은 "왜 나지?"입니다. 하기 싫어서 나오는 저항의 반응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많은데 굳이 제가 발언할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뜻으로 일종의 비교 우위 (competitive advantage 또는 edge)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사양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강연과 같이 일시적이거나 대상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런 질문에서 좀 자유롭지만, 글은 독자층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기록이 반영구적으로 남기 때문에 조금 더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행히 이번 연재의 기회에서는 시작 전에 제게 제안을 주신 분과 충분히 상의를 나눌 수 있어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첫걸음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이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쓰려는 글과 주제나 주장, 심지어 예시라도 겹치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물론 원고 작성과 송고는 오롯이 저 혼자의 몫입니다. 작성에는 물론 리서치도 필요하고, 원고를 보내기 전에 최소한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교정은 제 스스로가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글쓴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좁습니다.
발행 매체에서 내부적으로 윤문과 편집을 최소 한차례 진행할 것이고, 그 이후에 헤드라인과 소제목 그리고 간혹 사진도 추가됩니다. 많은 외부 기고가들이 원고를 보내면서 스스로가 원하는 제목을 알리지만, 그 제목이 그대로 헤드라인으로 발행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의 경험은 제한적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빗대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것은 사실 칼럼/오피니언뿐 아니라 기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행일로부터 최소 이틀 전까지는 원고를 보내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키워드는 "최소"입니다. 원고 작성은 스스로의 관점을 본인만의 글로 하는 작업이지만, 그 뒤 발행 등의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배려하며 진행해야겠습니다.
이 것은 제 스스로에게 꾸짖는 말이기도 합니다 :)
저는 아마존에서 물건을 고를 때나, Yelp같은 앱을 통해 새로운 식당을 찾을 때 리뷰를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별점이나 리뷰를 보면 대개 1점이나 5점에 몰려 있습니다. 마치 정규분포의 반대되는 양상이랄까요. 조금 다른 이유이지만 비슷하게 "정말 맛있는 중국음식점을 찾으려면 평점 3.5점 식당으로 가야 한다" 라는 주장도 있죠.
몇 년째 이런 리뷰들을 보면서 만든 제 가설은 아직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거나, 아니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거나 극단적인 반응만이 리뷰로 이어집니다. 이는 한국에서 네이버 리뷰라던가 배달 앱 리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겁니다. 그리고 특히, 불만이 이런 행동 양식으로 이어질 확률이 대만족이 동기가 되는 경우보다 현저히 높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댓글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댓글에 불만과 비판이 많다고 해도, (제게는) 표현되지 않은 감탄과 만족이 분명 더 크게 댓글창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내용은 읽지 않고 헤드라인만 보고 반응한 사람들이 십중팔구로 보입니다. 가끔씩은 글쓴이를 해당 매체에 소속된 기자로 오인해서인지 언론과 기자에 대한 막연한 혐오를 쏟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모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인 듯합니다. 클릭해주시고 관심 주신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기고문 한 편을 작성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은 꽤나 깁니다. 특히 정치나 시사 관련해서 작성하는 경우에는 팩트체크에도 유난히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번 더 쓰다 보면 속도가 조금 더 나겠지'라는 제 생각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주변에 기고가들을 볼 때, 교수님들께서는 상대적으로 편하고 빠르게 원고를 작성하시는 듯 하지만, 상근 활동가나 다른 직업이 있는 경우에는 저랑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원고 작성에 드는 품과 시간을 미리 넉넉하게 계산해서 준비하시기를 추천합니다.
게다가 정기 연재인 경우에는 그 준비작업의 중요성이 더 큽니다. 그럴수록 내가 기고를 하는 이유는,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인용에 대한 소스를 꼼꼼히 모아두자, 그리고 글의 알멩이를 잘 살펴보자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새로운 통찰이 담겨있거나,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식견이 높으신 한 분의 말씀을 최근 들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겁 없이 달려든 게 아닌가라는 후회도 많이 했지만, 글을 쓰는 기계적인 방법 외에도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에 대해 많이 돌아볼 수 있었던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지금하고 있는 주간 연재 <장성관의 202Z>는 앞으로도 몇 차례 더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2년 중간선거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정치 (202는 워싱턴DC의 지역번호입니다) 그리고 Z세대 유권자들에 대해 다루고자 붙인 이름입니다. 올해 발행된 이 시리즈의 글을 아래 공유합니다.
2022년 중간선거 결과 분석을 통해 공화당 내 트럼프의 입지를,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 론 디샌티스의 부상과 비교했습니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예상과 다르게 공화당의 압승은 없었습니다. 즉, 민주당이 선방한 것인데 그 배경에는 Z세대 유권자들의 이례적인 투표참여가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Z세대 후보 및 현직 선출직 정치인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MZ세대"라는 단어, 그리고 실체가 없는 "청년"과 "차세대"라는 개념을 비판하고 싶었고, 20대와 30대 정치인과 시민활동가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어서 글이 굉장히 길어졌습니다. 때문에 많은 편집이 있었고, 상·하편으로 이틀에 걸쳐 발행되었습니다. (사진은 위스콘신 주 하원의원 프란체스카 홍)
위의 글과 함께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결국 젊은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은, 단지 물리적인 나이나 생김새가 젊은 사람이 아니라고 알리며, "정체성정치"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2020년 에드 마키 상원의원과 조 케네디 3세 하원의원의 맞대결은 미국의 "청년정치"와 진보진영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미국 정치와 사회는 2000년대 이후 점점 양극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양극화를 꼽은 적 있죠.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당선, 2010년 중간선거를 통한 티파티의 부상,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양극화가 심화되는 변곡점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정치와 사회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2022년 중간선거를 통해 양극화는 더 눈에 보였고, 이제는 공화·민주 양당 내에서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초, 미국의 철도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예고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이를 저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던 일인지, 그리고 이들은 왜 파업을 준비한 것인지 소개했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새로운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여러 차례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하는 일은 달라도, 일하는 지역은 달라도,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모두 같았습니다. 솔직히 올해 쓴 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합니다 :)
12월 6일 치러진 조지아주 연방상원 결선투표를 통해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 선거를 기해 길고 길었던 2022년 중간선거도 드디어 끝났습니다.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에서 어떻게 민주당 연방상원의원이 두 명이나 나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선거전략을 통해 전국 "시골"지역에서 고정관념을 깨려는 민주당 후보들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원고에 적었던 제목과 발행 당시 제목이 전혀 달라서 많이 놀랐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제목이었고요. 그래도 제 요청을 바로 수렴하여 제목을 수정해주신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SBF와 FTX, 지난 두 달 동안 언론에서 수없이 많이 본 이니셜입니다.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그리고 거대한 헷지펀드를 운영한 "천재소년"이 부도 위기에 처하고 체포되면서 드러난 많은 혐의 중에는 불법 정치자금 공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치자금법과 샘 뱅크먼-프리드의 로비 전략을 소개했습니다. (미국 정치와 돈에 대해서는 따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래 제가 원했던 제목은 "MZ세대는 없다, 대안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다시금 "MZ세대," "청년," "차세대"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단편적인 속성으로 납작하게만 바라보고 그에 기반해 행동 양식을 재단하는 추세가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Z세대는 모두가 진보적인 성향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미국 사회운동을 주도한 대학생과 그 또래들의 비전을 소개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어쩌면 미국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구분하는 잣대를 한국 사회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IMF 시절, 2002년 월드컵, 미투 운동, 2016년 촛불집회 등을 기점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민주공화 양당 전략가들도, 또 29세 이하 유권자들 스스로도 당적이나 이념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진단에 동의합니다. 대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현안과 대안이 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합니다. 양당제가 공고한 미국에서 조차 이렇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는 편을 갈라 싸우는 팀스포츠가 아닙니다. 특히 민주 사회에서 시민 한 명 한 명은 관람객이 아니라 참여자이자 심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따뜻한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제 브런치 글을 보고 이메일 보내주신 분들께 개인적으로도 말씀드렸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응원과 격려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