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마주했다
이 글은 2021년 7월 27일, 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옮겨 온 내용이며 그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나는 우리말 공부를 위해 저녁시간에 항상 <김현정의 뉴스쇼>를 틀어놓는데, 어제는 듣다가 깜짝 놀랐다. 나오미 오사카 선수를 "일본인이면서 인터뷰에서는 영어로만 말하고, 최근에는 우울증을 호소하며 인터뷰를 거부했는데, 수영복 화보 사진을 또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람으로 소개한 뒤 바로, "일본어와 한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재일교포 3세 안창림은 일본의 귀화 요청도 거부하고 한국의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비교했다. (직접 인용이 아니고 제 임의대로 요약을 했으나, 라디오와 아래 링크의 기사에 실리지 않은 내용을 덧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유튜브로 해당 방송본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본방송 뒤 유튜브로 진행되는 댓꿀쇼에서 다뤄진 내용이었고, 정식 코너가 아니라 정기 출연 패널 중 한 명의 발언인 것으로 보여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라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일본인과 일본어 구사자는 더 이상 같은 개념이 아니다. 일본인이더라도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일본어를 유창히 구사하지만 일본인이 아닌 사람도 많다.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나라 밖으로 많이 퍼지고, 소위 말하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현상이고 앞으로 이런 일은 더욱 빈번할 것이다.
이는 한국 문화권에도 마찬가지로, 한국인과 한국어 구사자는 같은 개념도 하나의 개념도 아니다. 나오미 오사카 선수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하지 못하면 그가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어야 하는가? 심지어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도 충분치 않다. 선수가 공개적인 발언은 영어로 하지만, 언론의 질문은 일본어로 받아 이해하고 답변을 하는 것이다.
기자는 또한 링크된 기사와 라디오 방송에서 오사카 선수가 French Open에서는 우울증을 호소하며 언론 인터뷰를 거부하고, 결국에는 경기 기권했다는 사실을 전한 뒤, "그런데" 라며 최근 발간된 Sports Illustrator 잡지의 수영복 에디션에 수영복 화보가 실린 사실을 짚었다.
미국에서도 최근 같은 비판이 제기됐었다. Fox News의 대표 앵커 중 한 명으로 트럼프에게 소위 '소신 발언'을 하여 큰 이목을 끌고 정치적 성향과 기조가 정반대인 NBC News로 옮겼다 최근에 하차한 Megyn Kelly가 트위터를 통해 가장 눈에 띄게 이 점을 꼬집었었다. 오사카 선수는 "해당 화보는 2020년에 촬영되었고 최근에 인쇄가 되었을 뿐"이라 바로 반박했고, 몇 시간 내로 본인의 트윗을 지웠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없이 비판을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비판의 기저에는 마치 우울증 환자는 (또는 우울감의 고통을 겪는 사람은) 항상 우울하고 고통 속에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꾀병으로 의심한다는 시선이 깔려있는 것이다.
우울감을 겪어도, 우울증 환자라도 기분이 좋은 순간을 겪을 수 있고 본인이 축하하고 뿌듯하게 느끼는 점을 공유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그 권리 그리고 우울증 환자에게는 굉장히 드문 기쁜 순간을 부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잔인한 언행이다. 심지어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일개 개인을 대상으로 언론인의 신분으로 공적 매체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불균형적인 사회적 권위의 남용이며 크나큰 폭력이다. 참고로, Megyn Kelly의 비판과 의혹 제기를 다른 언론인들은 "bullying"이라고 표현했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여져있다: "시원시원한 안창림의 답변, 대한민국 남자 맞네." 시원시원하게 답하는 게 언제부터 대한민국이고 남자의 특징인지 알 수가 없지만,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치면 반대로 여성은 시원시원하게 답을 잘 못(또는 안)한다는 뜻을 함의한다. 여성이고 일본인인 나오미 오사카 선수와의 콘트라스트를 위해 쓴 표현인 것 같지만, 단순히 문학적 장치의 사용을 목적으로 여성을 비하한 것이다.
오사카 선수가 여성이자 흑인 혼혈이고, 무엇보다 일본 국적자이기 때문에 나쁘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묘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리고 '멋있다'라는 표현을 굳이 '남자답다'는 식으로 전하는 남성 중심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도 너무 싫지만, 그런 내용은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이 기사의 더 큰 문제는 국가와 국적이라는 개념에 대해 전체주의적 또 단일민족주의적인 접근(만)이 옳고 바람직하다는 듯 작성했다는 것이다. 안창림 선수는 "조부모께서 목숨을 걸고 지켰던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한 데 있어 후회는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고 하고, 나 또한 이 선택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부분은 그 선택 자체가 아니라, 이런 결정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도 본인이 신념을 지켰다는 점이다.
오히려 안창림 선수와 오사카 선수 둘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런 공통점을 전하고 칭찬할 수는 없었을까? 예를 들면, "주변의 비판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도 본인의 정신건강이 우선이라는 또 원하는 국적을 선택하는 신념을 소신껏 지키는 젊은 운동선수들" 같은 것 말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얼굴을 드러내고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기대치를 걸고 과도한 잣대를 강요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같은 공직자들은 시민의 혈세로 돈을 받고, 민심을 대변하며, 공익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까지 그런 부담을 씌우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고 사실상 인격을 말살하는 수준으로 느껴진다.
운동선수도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심정을 가지고 있다. 관람자로서 그들에게, 특히 팬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감정이나 입장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대중에게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물론 이 기사에도 오사카 선수의 화보 사진을 잊지 않고 게재하심)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야 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은 더욱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감수성'이니 '배려'니 '고민'이니 하는 말로 마치 어렵고 먼 일처럼 포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존중하는 것은 응당히 취해야 하는 자세기 때문이다.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은 공개적인 포럼에 돈 받고 글을 쓸 것이 아니라 일기장에 써야 한다.
도쿄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 입장에 대한 한 방송사의 보도와 축구 경기에서의 부적절한 자막 사용 등 한국 매체의 이번 올림픽 보도 방식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도 관련 인터뷰를 했는데, 그 뒤에 좀 더 고민해보니 공통적인 문제는 한국사회의 '세계화'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YS가 90년대 초반 선언한 공동목표인 '세계화'는 한국사회에서 곧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발자취를 따라가자라는 식으로 전해져, 서구권 국가와 문화는 받들 대상이지만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의 문화는 비하하고 무시해도 괜찮은 대상인 것처럼 사회의 인식을 변질해 버렸다.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관, 백인/서구권/영미권의 것은 무엇이든 본받을만한 것이라는 인식, "선진국"의 평가와 인정(만)을 발전과 성과의 기준으로 삼는 행태. 답답하지만 이 모든 게 한국사회가 그 영향력과 경제력에 걸맞은 성숙함을 갖추기 위해 거치는 과도기의 현상이었으면 좋겠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포용하는 사회, 그러니까 모든 것을 일렬로 줄 세워 순위를 매기며 위아래로 가르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점점 제국주의적인 면모가 많이 보여 걱정된다.
*제목에 배경으로 들어간 사진의 출처는 Time 매거진입니다. 2021년 7월 8일, Time 매거진은 나오미 오사카 선수가 작성한 본인의 결정과 정신 건강 유지의 중요성에 대한 에세이를 공개했으며 해당 이슈 커버에 그의 사진을 싣기도 했습니다. 그 커버에는 오사카 선수의 에세이에서 한 문장이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It's O.K. not to be O.K."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