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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날 현 Jul 18. 2022

훗날의 나에게.


일 년 만에 글을 쓰러 브런치에 왔다. 실은, 내내 글을 쓰고 싶었다. 뭐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과 써야 된다는 강박이 머릿속 한 구석에 계속 남아있었다.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마치 내 기억이 모두 휘발되기라도 할 것처럼 불안했다. 그와 동시에 차라리 이 시기가 기록으로 남지 않아서 내 기억 속에서도 전부 휘발될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 꼬박 일 년이 흘렀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음울한 기분에 잠식될 틈이 없도록 순간순간을 반복되는 일상으로 허겁지겁 채웠고,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집착하듯 찾아 헤맸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으로 감정에 잠식될까봐 어떻게든 정신없이 지내려 애썼다. 내 작은 눈을 더 똑바로 크게 뜨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일 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일기장에 며칠의 기억만 연필로 간신히 남기고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글로 써야지만 생각이 정리가 되는데,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나를 들여다볼 자신여유도 없었거니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하나둘 끄적거리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에 더욱더 매몰되어 버릴까봐 겁이 났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행위가 지금 이 시기의 나에게 결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이랍시고 무언가를 쓰고 나면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며 그 글을 써내려 갈 때의 감정과 그 글에 담아낸 감정을 곱씹으면서 오랫동안 그 안에 머무르 습관.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글을 썼다가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글로 남겨두지 않는다고 해서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뭐라도 적어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360일이 지났어요.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주시겠어요?


핸드폰에 브런치 알림이었다. 브런치에는 피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이곳에 굳이 찾아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 얘기를 실컷 브런치에 올렸던 건, 미국에서 코로나가 터진 직후였다. 어디로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우울의 늪에 빠져 있던 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던 시기였다.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죽고 싶다는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던 나는 치료의 한 방법으로 이곳에 내 얘기를 적어 내려가며 아등바등 하루를 살았다.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기억들이 여기에 너무나 많은데, 그래서 브런치를 멀리하고만 싶었는데,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라는 말이 나를 결국 여기다시 이끌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내 글은 생각보다 쓰라리지 않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줄 알았는데 되려 웃음도 나왔다. 그때로부터 그래도, 그나마, 몇 걸음이라도 걸어 나왔구나 싶었다. 하루가 꼭 한 달 같기만 했던 그 시절이 이제는 지나간 한 때가 되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어떤 순간이든 지나간다는 것. 어떤 슬픔이든 어떤 아픔이든 무뎌진다는 것. 오늘 역시도 내일의 어제가 된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브런치 알림이 내게 일깨워 주었다. 그렇다면 훗날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어쩌면 오늘을 살아내며 순간을 기록해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마저도 어느 날의 나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또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지표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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