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
서점보다 도서관이 더 운치있다. 그 서점이 헌책방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도서관에서 풍기는 고즈넉함을 나는 좋아한다. 도서관의 또다른 좋은 점이라 하면 책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 근처 도서관에 있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얕은 산을 등지고 있는 듯했다. 먼 길은 아니었지만 불편한 길일 것 같았다. 돈을 아끼자는 마음이 들었고 둘째로는 어떻게 생긴 도서관인지 궁금했다. 이른 낮이 되어 나는 집을 나섰다.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였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간 계절이지만 축축한 공기 탓에 등골부터 땀이 흘렀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빌라와 다세대 주택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담장을 지날 때면 괜히 한 번 더 벽돌 문양을 살펴보게 된다. 누가 남긴 낙서를 찾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수십 년 전에 지어졌을 어느 빌라의 담벼락에도 크레파스로 적은 듯한 글귀가 보였다. 벽돌 한 칸에 한 단어씩 여러 개의 단어들이 알록달록하게 적혀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서 장난을 치며 적어놓은 낙서 같았다. 서너 명쯤 되는 아이들이 꺄르륵 웃으며 담벽락에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새겨넣는 모습이 떠올랐다.
낙서를 볼 때면 늘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고 사진을 찍게 된다. 눈길이 닿지 않는 자리에 어떤 글귀를 새기는 마음가짐이 그렇다. 왜 거기 글을 적은 것일까. 누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도 아닐 것이다. 우연히 타인의 낙서가 눈에 띄고 그걸 한 글자씩 읽어갈 때에 내게 불현듯 밀려드는 내가 모르는 삶. 가만히 낙서를 들여다볼 때면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낙서의 고즈넉함을 느낀다.
한 때는 도서관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창 도서관을 전전하던 시기였다. 전공서적을 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서울 곳곳의 도서관을 다니다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알게 됐다. 그중 하나는 도서관이 모두 전철역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도서관은 시내 한 가운데 있기 보다는 대부분 주택가 사이에 있었다. 가끔은 꼭 필요한 책이 아주 멀리 떨어진 도서관에 비치된 경우가 있고 그럴 때면 낯선 동네까지 전철을 타고 가야 했다. 역에서 내린 뒤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처음 보는 동네를 구경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여러 집들이 모인 골목을 걷는다고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건 아니었으나 그 편이 나는 더 좋았다. 세련되게 꾸민 카페나 갤러리 같은 것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장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흥미로웠다.
일부러 더 멀리 떨어진 도서관을 찾아가기도 했다. 인적이 드문 전철역까지 가는 길에는 기분 좋은 노곤함을 느꼈다. 책 한 권을 빌려오는 일에 하루가 다 지나고는 했다.
처음으로 낙서를 촬영한 건 6호선 전철이었다. 우연히 전철의 맨 마지막 칸, 그리고 한쪽 모서리에서 발견한 낙서였다. 원래 나는 끝쪽 칸에 타는 습관이 있었다.
내가 서있던 자리는 객실의 마지막 출입문이 달린 모서리 부근이었다. 회색 고무패킹이 모서리를 따라 길게 붙어있었다. 별 생각이 모서리를 쳐다보던 나는 고무패킹 위에 작게 적힌 두 글자를 발견했다. 누군가 포효라고 적어 놓은 낙서였다. 처음 보는 종류의 낙서였다.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거나 특정 날짜, 또는 음담패설을 적어 놓기 마련이었다. 포효처럼 맥락 없는 단어가 뜬금없이 적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과연 어떤 마음으로 새겨 둔 글자일까. 희한한 일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벌어졌다.
같은 호선의 반대 방향으로 전철을 탔다. 습관처럼 탑승한 마지막 칸이었다. 문득 몇 시간 전에 일이 떠오른 나는 다시 모서리를 쳐다봤다. 변함 없이 포효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조금 달랐다. 자세히 보니 다른 낙서였다. 나는 사진을 찍은 뒤 전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6호선을 탈 때면 늘 마지막 칸의 모서리 부근을 살폈다. 그때마다 포효라는 낙서가 있었다. 모두 다른 모양의 글자들이었다. 그러니 낙서를 쓴 그 사람은 6호선 전철을 탈 때마다 포효라는 낙서를 새기고 있던 셈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던 일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대체 그 사람은 어떤 이유로 낙서를 쓰고 다니는 걸까. 포효라는 단어가 입 속을 맴돌았다.
수 년이 지난 지금은 낙서가 모두 사라졌다. 종종 생각이 날 때면 모서리를 살펴보지만 포효를 다시 발견한 적은 없다.
아무래도 낙서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낯선 땅에 깃발을 꽂는 마음은 본성에 가깝다. 이를 테면 새로 이사 온 집의 전기요금 명세서가 집주인의 이름에서 내 이름으로 바뀌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거. 사실 이름이 바뀐다고 요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된다.
하지만 종종 이방인으로 남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책 한 권을 빌리는데 하루가 저무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내가 모르는 동네를 다녀오는 삶은 좋은 삶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평화를 느낀다. 떄로는 집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동안 나는 6호선 전철에서 보았던 포효라는 낙서에 빠져 있었다. 내가 모르는 동안에도 땅밑의 어둠 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포효들을 생각하면 괜히 신비로운 기분이 되고는 했다.
재밌는 사실은 그 낙서를 발견한 이가 나 말고 또 있었다는 점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내가 발견한 낙서를 이야기해주자 그는 매우 놀란 눈치였다. 자신도 그 낙서를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그가 낙서를 찾은 장소는 6호선 전철역의 화장실이라고 했다. 화장실마다 포효라는 낙서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흥분해서 낙서의 정체에 대해 길게 토론했다. 물론 우리가 밝혀낸 내용은 없다. 다만 그 낙서를 쓴 이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오래도록 상상했을 따름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의 낙서로 하여금, 또한 그가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는 사실.
그러니 나는 붉은 벽돌로 된 담벼락을 지날 때면 한 번 더 벽돌 문양을 살필 수밖에 없다. 종종 거기 내가 모르는 낙서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