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9
암벽에는 불상이 있었다. 까마득한 높이였다. 고개를 치켜들어야 겨우 불상의 턱이 보였다. 그때 나는 어렸다. 사람들은 아주 조그맣던 나보다 더 낮았다.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암벽을 향해 절을 했다. 고개 숙인 사람들의 어깨 위로 짙은 돌그림자가 드리웠다. 서늘한 바람에는 습기가 느껴지고 어디선가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늘에는 색이 없지만 꼭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창 아침마다 명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잠이 다 깨기 전에 이불을 주섬주섬 개고 등을 세워 바로 앉았다. 눈을 감고 생각을 비우다가 깜빡 잠에 들고는 했다. 그새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고 다시 명상을 하다가 잠들며 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이 되어 잠자리를 정돈한 뒤에는 기도를 했다. 나는 기도가 명상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직장 동료는 신학대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가 추천한 책은 향심기도에 관한 도서였다. 향심기도는 말하지 않고 생각을 비우는 기도라고 했다. 자신의 마음 속으로 고요히 침잠할 때 문득 마주치는 숭고함에 대한 기도였다. 꼭 명상과 같았다. 그래서 더 수긍이 됐다. 더는 소원을 이뤄주는 기도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예배를 마치면 모두 기도를 했다. 고작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누군가의 기도문을 귀담아 듣는 일에도 몸이 근질거릴 때가 있었다. 가끔 실눈을 떴다. 꼭 감았다가 뜬 눈꺼풀에 뜨거운 피가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매번 눈이 부셨다.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을 모은 채 간간이 서있었다. 아무도 눈을 뜬 이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 사이사이로 흘러다니는 햇빛이 보였다. 꼭 눈감은 이들의 기도소리를 엿듣는 천사 같았다. 맨발로 마루를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목사님은 기도에 관한 말씀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던 이가 자기 앞을 지나가는 예수에게 소리친 일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예수는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라고 말하며 그의 눈을 고친다. 문득 궁금했다. 예수는 눈이 보이지 않던 이에게서 어떤 믿음을 본 것일까. 그는 단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말했을 따름인데.
불상 앞에 엎드린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는 그들의 등뒤에 서있었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것이 좋았다. 모두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것일까. 자신의 간절함을 들키는 일은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러니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애당초 자신이 간절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허공에 말을 거는 일은 그래서 쓸모 있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은 때때로 자신의 바닥을 보는 일이겠으나,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된다.
그러니 가끔은 눈을 감는다. 바닥에 엎드린 채 땅 가까이 흐르는 기척을 느낀다. 생각이 사라진 자리의 빈 어둠을 바라본다. 실은 여전히 기도를 믿지 않는다. 기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기도는 숭고하다. 결국 기도는 실패를 사랑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