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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령 Feb 15. 2021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백년간의 고독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Gabriel García Márquez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을 읽었다.영어로 읽어서 책을 한국어로 읽는 것 만큼 정확하게 읽지는 못했다. 400페이지 넘는 책이라 끝까지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르케스는 솜씨 있는 작가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아주 디테일하다. 마르케스가 기자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삶들을 보아와서 <백년간의 고독>은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사랑, 명예, 탐욕, 정의, 그리고 고독.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 그들의 드라마가 얽히고 설킨다. 그는 그 복잡한 실타래가 바로 인간사라는 것을 말한다. (소설가로서 그의 기량에) 내가 감동한 것은 이 작가가 모든 드라마를 놀랍도록 자세히,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주인공인 오렐리아노와 몬카다 장군의 우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렐리아노라는 선한 인물의 파멸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이기도 한 오렐리아노는 우연히 권력을 얻게 되면서 친구의 사형명령을 내리는 것을 서슴치 않고 심지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너무도 고독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적 격동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잃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조차 목숨을걸고 반대한다.


마지막으로 사형직전에 친구를 감옥에서 만났을 때 그는 말한다.
"넌 내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는 그냥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것뿐이야. 나는 책임이 없다고."
그때 죽음 앞에 서 있는 몬카다는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정치인)에게 사형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죽음이야. 내가 걱정되는 건 너가 무장을 싫어하면서 그것을 맞서 싸우고, 그것에 대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그들과 똑같아졌다는 것이야. 삶의 어떤 이상도 그 야비함에 미치지 못하지."


"Remember, old friend," he told him. "I'm not shooting you. It's the revolution that's shooting you."

General Moncada did not even get up from the cot when he saw him come in.

"Go to hell, friend, " he answered.

                                                                                             ...

"You know better than I," he said, "that all courts-martial are farces and that you're really paying for the crimes of other people, because this time we're going to win the war at any price. Wouldn't you have done the same in my place?"

General Moncada got up to clean his thick horn-rimmed glasses on his shirttail.

"Probably," he said. "But what worries me is not your shooting me, because after all, for people like us it's a natural death." He laid his glasses on the bed and took off his watch and chain. "What worries me, " he went on, "is that out of so much hatred for the military, out of fighting them so much and thinking about them so much, you've ended up as bad as they are. And no ideal in life is worth that much baseness."  

 

극단적으로 선했던 사람이 극단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고독 앞에서 사람이 어떤 끔찍한 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고독을 견디기 위해서, 혹은 깨뜨리기 위해서. 고독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기가 벌이는 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고독은 몽상가들의 허세가 아니라 그냥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이라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서, 사실 몬카도 장군이 우렐리아노를 감옥에 부른 이유는, 자신의 시계, 안경, 반지등의 유품을 자기 아내한테 전해주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어처구니 없는 순박함이라니. 형편없으면서도 짠하게 아름다운게 인간이라는 것을 마르케스는 가히 천재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조세 알카디오 부엔디아가 자기가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 작품이 고전이라서 단순한 전개방식을 예상했다.

그러나 굉장히 현대적인 추리 소설 식의 기법을 사용했다. 소설 처음에 나오는 집시의 문서를 소설 마지막에 해독하면서 그 문서가 이 집안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품이 끝난다. 처음부터 복선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데 띄엄띄엄 언급되는 이 집시의 문서가 결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작가의 치밀함에 놀랐다.


이 소설은 또 인간의 삶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판타지적 요소를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마콘도라는 마을이 만들어지고 그 마을이 번화하게 변하고 정치적 격동을 겪고  현대문명이 들어오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나는 것까지 보여준다. 콜롬비아의 전근대사를 소설속에서 풀어나갔다.


중간 중간 뜬금없게 판타지가 등장한다.

남자들이 한번만 쳐다보면 사랑에 빠지는 절세 미인이 태어나서 어느날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버렸다던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진 병사가 담벼락에 떨어져 죽었는데 그 남자의 머리에서 피 대신에 오일 같은 것이 흘러나고, 그게 여인의 향기였다는 것이다.


결말도 판타지에 가깝다.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남자가 집시 문서의 끝까지 해독하는 순간 그는 그 문서가 자신이 이 책을 다 읽은 순간 이 신기루같은 마을은 사라질 것이라는 줄을 읽었다. 그러자 바람이 일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결말을 요약하자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다. 부엔디아 가문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모두 죽음으로서 소설이 끝난다.


Before reaching the final line, however, he had already understood that he would never leave that room, for it was foreseen that the city of mirrors (or mirages) would be wiped out by the wind and exiled from the memory of men at the precise moment when Aureliano Babilonia would finish deciphering the parchments, and that everything written on them was unrepeatable since time immemorial and for ever more, because races condemned to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did not have a second opportunity on earth.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결말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하니까 단순한 허무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산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만든 모든 사연들은 결국 세상에서 사라진다. <백년간의 고독>은 우리가 인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의지와 동시에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유한함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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