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뿐인 삶
요즘 길을 걸을 때마다 낙엽 밟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또한 그 붉음이 어느 때보다 붉어 내 가슴도 붉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 그리움은 어느 때보다 붉다.
바쁘다는 핑계로 근 한 달 정도 글을 쓰지 못했다. 쓰고 있는 것이 있긴 했지만 진척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어나가질 못해 컴퓨터 안 폴더 안에서 잠들어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11월의 중순이 지나고 있었다.
잠시 글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렸다. 무척 기뻤다. 내 죽기 전 이런 날이 올 줄이야라고 생각했다. (이제 월드컵 우승과 남북통일만 보고 죽으면 된다.)
어느 뉴스를 봐도 여기저기 모두 한강 작가의 소식이었다. 허나 기쁨의 소식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지나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폄하하는 이상한 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그들에겐 어지간히 배가 아픈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와 다큐멘터리에서 봐 온 5.18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한강 작가의 시선으로 접했을 때 그 억누른 억울함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그전에는 그냥 책을 잘 쓰는 작가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번 달 [월말 김어준]에 나온 {박구용} 교수의 철학적 해석으로 들은 한강 작가의 소설은 [통치술에 대한 감각적 불복종]이라는 걸 듣고서 머리를 한대 맞고 말았다. 나는 그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는 반면 한강 작가는 시대를 아우르는 동시에 시대를 거스르는 차원이 다른 소설을 쓰고 있었다. 역시 노벨문학상은 아무나 수여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더 좋았다.
원래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한강 작가의 소식에 대한 글을 쓸 것이 분명하기에 한강 작가에 대한 소식은 안 쓰려고 했으나, 솔직히 말하면 이번이 아니고서야 내가 언제 한강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겠는가.
한강 작가의 소설은 두 번 읽기 힘들다. 읽고 나면 계속 생각나서 힘들다. 작가 본인도 힘들다고 했다. 독자인 나도 이런데 글을 쓴 당사자는 오죽하겠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읽기가 두렵다. 다시 한번 읽어야지 하는 후회할 결심을 한다.
가을이라 독서를 평소보다 많이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책과 리더십에 관한 책을 읽었다. 11월은 재계약이 걸려 있는 달이라 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바삐 살았다. 필요한 책을 읽고서 역시 나는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안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회가 될 결심들뿐이었다.
특히, 잘되지 않는 건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 꼭 필요한 영어 공부가 그러했다. 지금 가진 형편없는 실력으로 어찌저찌 살아가고 있으니 막상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귀찮아져 쉬기 바빴다. 항상 다음에 하면 되지라는 후회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예전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는 성격이었다. 미리 준비해서 했던 것들은 살면서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려면 영어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시작하기 어려웠다.
책에서 말하는 공통된 것이 있었다. 계획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일 년, 한 달 그리고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주어지는 대로 하루를 살았다. 예전에 세운 계획들은 그저 바램들뿐이어서 후회될 결심들이었고, 결국 후회가 된 결심들이 되었다. 앞으로 나의 과제는 후회가 될 결심을 하지 않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 후회 없는 결심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