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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 Aug 08. 2022

한계? 별거 없네

그 앞에 내가 별거 없었다.

처음 글을 주에 3편씩 쓰자고 마음먹었을 때, 막상 위기감이 덮치면 어떤 글이든 써서 낼 줄 알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 써 내려간 것은 맞았다. 다만 글들의 퀄리티가 심하게 낮아졌을 뿐이다. 초기에는 그래도 착실히 모아뒀던 세이브 본으로 시간을 벌었으나 새로운 글이 추가되는 시간에 비해 세이브 본이 없어지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이 때라도 잘 못 되었음을 느꼈어야 했건만... 불행히 나에게 원할 때마다 미래를 보는 예지 능력은 없었고 내 소중한 세이브 본이 먼지가 되어 흩날려 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 3회 올리기 전부터 현재 내 실력으로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다만 내 한계를 넘기를 원했고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특별한 일들만 올리던 내가 일상생활을 특별하게 바꿔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첫 번째 한계를 뛰어넘은 것에 대한 대가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바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계 그 너머는 생각보다 온도가 높았던지 일정 기간 동안은 맘에 드는 글을 자주 써 내려갈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 불타버린 잿더미처럼 한계가 가득한 글만 써 내려갔다.


내 글이 잿더미라니!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가보도록 했다. 더 많이 쓸 수 없다면 더 적게 쓰는 걸로 방법을 바꿔보았다. 그동안 글을 많이 쓰기 위해 질을 포기했다면 이번에는 질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해 양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일주일에 3번 쓰던 글의 업로드 주기를 주에 1번으로 낮췄다. 대가로써 '좋아요'나 '조회 수'는 다소 내려갔지만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 조금 천천히 걷기 시작하니 세상도 나름 예쁜 곳이 많다는 것이 보이더라.


이번 상황은 한계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역설적이겠지만 한계라는 단어를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한계라는 단어를 버릴 수 있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계를 받아들였기에 한계라는 단어는 내게 있어 페이스(pace)라는 단어로 바뀔 수 있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처럼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속도를 찾은 것이다. 2년 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나의 습관처럼 살짝 빨리 걷는 수준으로 글의 속도를 변경하였다. 역시 나는 적당히 게으를 때 최고의 효율을 내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나는 과거보다 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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