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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 Dec 07. 2022

내 나이 30인데 마니또를 한다고요?

가끔은 유치하기에 재미있다.

회사 내에서 인원의 변동이 있음에 따라 팀원들이 조금 개편 됐다. 그에 따라 팀장님께서는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갑자기 팀원들에게 각 10,000원을 주시면서 마니또를 하겠다는 통보를 하셨다. 순간적으로 '내 나이 30에 이걸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절대적 권력 앞에서 그런 생각은 무의미할 뿐이었기에 팀장님이 설명해 주시는 규칙을 들어 나갔다.


마니또의 규칙은 간단했다.

1. 사람의 이름이 적힌 쪽지미션이 적힌 쪽지를 각각 1장씩 뽑는다.

2. 그 사람에게 10,000원 부근의 선물을 주고 미션을 수행한다.

3. 일주일 후에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 맞추는 시간을 갖는다.

4. 단, 팀장은 미션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팀장을 뽑은 사람은 작은 궤도 안에서 해당 내용을 바꿔도 된다.


나는 순순히 앞에 있는 쪽지 2개를 뽑아서 그 안의 내용을 확인했고, 내가 고른 쪽지에는

'팀장', '이상형 묻기, 손 편지 써주기' 쓰여 있었다.

뽑자마자 손 편지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상형 묻기'는 티가 안 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남자 팀원이, 아이가 2명이나 있으신 여 팀장님께 이상형을 묻는 것은 누가 봐도 미션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난이도가 어렵더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티가 안 나면서도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계획을 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단, 손 편지는 당당하게 적어서 냈다. 마침 11월 11일 빼빼로 데이가 있었기에 친한 여동기 한 명을 꼬드겨서 빼빼로 위에 작은 손 편지를 적어 팀장님께 드렸다. 마침, 이승기를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알고 있었기에'이승기 - 되돌리다' 가사를 살짝 바꿔 편지로 작성했는데,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봄을 닮아 햇살 같은 팀장님

언제나 저희 팀을 환하게 비춰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런 느낌으로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이때 굳이, '여 동기가 손 편지 작성하자는 말을 했다.'라는 말을 은연중에 흘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별 효과는 없었다.

이상형 묻기는 편지와 빼빼로를 가장 먼저 드리면서 '역시 팀원 중에서 제가 최고죠?'라는 말로 미션을 살짝 바꿔서 수행했다. 마니또 대상이 팀장님이었기에 미션을 살짝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선물을 드릴 때는 전시회에서 구매했던 엽서 1장과, 폭신폭신한 해양생물 베개를 선물로 드렸다. 내가 누군지 들키면 안 됐기에 9시까지 출근하는 회사를 8시 10분에 출근해서 팀장님 자리에 베개를 두고, 10분 거리의 맥모닝을 먹으러 갔다 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알겠지만 50분 일찍 출근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먹는 맥모닝,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내 마니또에게 큰 선물을 했지만 나의 경우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브라우니 쿠키, 홍삼 젤리, 코코아 등 여러 간식들이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마니또가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매일 아침 기대하며 출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정확하게 금액을 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원래 받았던 10,000원 보다는 확실히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나름 팀원들 모두 재미있게 기억되는 시간으로 남았다. 팀장님도 이때가 무척 재미있으셨는지 이번에는 직접 팀장님의 개인 사비를 들여 팀원들에게 10,000원을 나눠준 후, 각자 선물을 사서 나눠가지자는 말을 하셨다.


이번 선물에는 단 하나밖에 규칙이 없었는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일주일 동안 해당 내용을 무조건 착용하고 있을 것'이었다. 즉, 너무나 사랑하는 팀 사람들에게 합법적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제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각 팀원들은 서로에게 엿을 먹일 생각에 마니또보다 훨씬 신나 하며 하루 종일 선물을 골라 나갔고, 그것은 결국 끔찍한 결과를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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