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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 Dec 12. 2022

남자인데 미스코리아 띠를 선물 받았다.

12월의 어느 날, 팀장님은 팀원들 간의 화합을 위해 선물 교환식을 준비하셨다. 

각 팀원들에게 사비로 10,000원씩 주셨고 우리는 그 돈을 사용하여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였다.


마니또와 비슷해 보이지만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받은 선물은 무조건 7일간 착용해야 된다는 점이었다. 즉, 엄청 이상한 것을 선물로 준다고 하더라도 해당 사람은 7일 동안 무조건 그 선물을 착용한 상태로 업무를 해야만 했었다.


만약, 팀원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만 원 이내에서 간단한 선물을 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쓸 전두엽과 측두엽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평소에도 서로에게 '오늘 피부가 상당히 푸석해 보이시네요!'라던가, '어제 잠 못 주무셨어요? oo님 대신 판다가 온 줄 알았어요.' 등의 말을 건넬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에 서로가 무척 고통스러워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의 처음 의도가 이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준비한 선물은 '지압 슬리퍼'였다. 그래도 소중한 팀원들이었기에 '그들을 놀리고 싶다.'는 내 자신의 욕심보다는 '그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정성스레 선물을 주문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혈색이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차라리 빨리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선물 교환식의 당일.

그냥 선물을 교환하면 재미가 없기에 우리는 각자 회사 내에 선물을 숨기고 그 선물을 찾은 사람이 해당 선물을 가지기로 했다. 회사를 돌아보던 내게 우연히 우리 팀의 선물이 하나 보였고 내가 거기서 받은 것은...

미스코리아나 선거하는 사람이 착용할만한 띠가 있었다.

미스코리아나 선거 나가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던 날


솔직히 처음 저 선물을 받았을 때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다만, 이렇게 부끄러워만 한다면 이 선물을 준비한 동기에게 큰 실례일 것만 같았기에 화장실을 가는 그 순간까지 항상 착용하고 다녔다.


동기 역시, 나처럼 '같은 팀원이 무척 곤란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성껏 준비했을 텐데 그 동기의 얼굴을 봐서라도 오히려 더 당당하게 착용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선물 찾는 것이 다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게 팀장님 눈에는 상당히 만족스러우셨는지 개구리 머리띠를 팀원들 전체에게 돌리셨다. 입구에서 모든 팀원들이 개구리 머리띠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차라리 군대로 되돌아 가도 이것보다는 덜 끔찍하겠다.'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최대한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업무를 진행해 나갔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이벤트들이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주제에 항상 목마른 나였기에 이런 이벤트 한 번은 어느 순간부터 글이 끊긴 내 브런치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직장을 다니는 것이 나름 재미있고, 훗날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 아무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런 이벤트들이 있어서인지 그래도 입사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은 굳이 들지 않을 정도다.


누구에게나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일이다. 그럴 때, 회사에 출근하며 사소하게라도 웃을만한 일이 있으면 조금은 더 편하게 출근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회사에 있는 팀장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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