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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씨 Sep 18. 2022

여름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


 꽃들이 섬뜩하리만큼 이르게 피던 봄과 작물이 죄다 말라죽은 여름이 쏜살같이 흘렀다. 나무는 어느새 단단히 무르익어 과실을 뚝 뚝 땅으로 던져버린다. 무심하면서도 다정한 가을이 왔다. 여름 동안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왔더니 가을이 되어버렸다. 온종일 뒹굴거리느라 바쁜 나도 가을만큼은 알뜰히 즐겨야지 다짐하게 된다. 계절을 알뜰히 즐긴다는 것은, 제철 작물을 먹고 마시며 최선을 다해 배우고 때로는 산책로를 걷는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 오자마자 방정맞게 자전거를 타고 나서려던 내 계획은 전부 망했다. 서울의 가을도 대구와 다름없이 9월 중순까지 열기가 가시질 않기 때문이다. 밤조림을 해먹고 청차를 홀짝이다 찻집을 나서서 은행 사이를 거닐려면 한참 남았나보다. 은행을 밟으랴 더듬더듬 길을 걷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데.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도심 한중간에서 약간 비껴나 있을 뿐이라 그다지 계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구에 살 때는 강변으로 나서기만 하면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었는데. 빽빽이 들어선 어중간한 높이의 빌딩 사이로 단풍나무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계절을 느끼지 못하면 시간 감각이 흐려지고, 현재가 미래로 나아가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여름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도 서늘함은 찾아들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조급하다.


하지만 내 기분이 엉망인 이유는 이상기후 때문만은 아니다. 풍요와 미래에 대해 골몰하려는 나를 무언가 시시각각 막기 때문이다. 그것은 몹시 교활하고 끈질겨서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아주 오랫동안. 나와 내 친구, 엄마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언니와 그와 같은 마을에 사는 다른 이들도 괴롭혔을테지. 점잖게 말하면 여성이란 종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 자식 때문에 직장에서도 이따금 괴로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거의 항상 고통스러워 한다. 그 자식은 욕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와는 조금도 재산을 나누지 않는다. 황금사과와 올리브 나무를 물려받지 못한 형제를 보며 즐거워 하는 어리석은 방탕아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들에 대해 말하기를, "홀로 가면 우리의 관계가 단지 남성과 여성의 세계만이 아니라 실재의 세계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때 기회는 올 것이며(…)".  그렇다. 꾸물거리는 가을에게 투덜거리느라 내 기분이 나쁜 것도 사실이다. 온갖 쓰레기를 뿌리고 매일 다른 종의 살덩이를 먹는 나지만 시원한 바람과 달콤한 단풍 냄새가 그리운 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내가 정말로 화가 나는 이유는, 나와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게으름 때문이냐고? 아니, 전부 그 자식 때문이다. 그 자식만 아니었으면 나는 어떻게든 비척비척 책상으로 걸어가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썼을 거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고 기분 좋은 흥분에 휩싸여 잠들었을테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역사에 한 줄을 그을만큼 획기적인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여자, 사회가 세워둔 구조를 진리라고 착각하며 발전만을 쫓아 흥청망청 자원을 써제끼는 여자, 미래 세대를 위해 흙탕물을 헤치고 씨앗을 심거나 단상 앞에 서서 말끔하게 소리치는 여자……내 안에는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정의롭든 악랄하든 상관없이 영혼을 낱낱이 파헤쳐 책 속으로 밀어놓고 싶은 여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뉴스만 보면 책상에 앉아 점잖게 글을 쓸 것이 아니라 탄원서를 쓰거나 광화문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집에서는 무력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 기껏 바깥으로 나서봤자 실재의 세계를 놓치고 만다.


나무 사이로 쪼개지는 오후 무렵의 햇빛이나 고소하고 따뜻한 국수 냄새, 해가 지기 무섭게 전등을 켜는 술집들과 왁자지껄한 무리가 나를 지나쳐 간다. 읽는 것만으로 심장이 차가워지는 헤드라인과 모르는 여자의 안타까운 최후에 붙들려있느라 내 사유와 실재는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여름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는 한층 너그러운 마음만이 남아야할텐데. 청무화과와 대봉시와 향긋한 무이암차를, 여름의 더위를 들이마시느라 빨개진 단풍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늘 경직된 글을 쓴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쓰기로 했다. 내일 죽을 사람처럼. 희미해진 가을 냄새를 킁킁 맡고 어떻게든 쥐어짜내서 시간의 감각을 살려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마음껏 배우고 사유하고 고뇌해서, 비로소 가을이 내게 안겨준 모든 심상들을 글로 표출하고 싶다. 오랜 시간을 응축한 나무가 무르익은 과실을 바깥으로 던지듯이. 몇 개는 흉측한 몰골로 터져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겠지. 하지만 운이 좋으면 하나쯤은 누군가의 즐거운 기억을 안겨줄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힘이 닿는 한 계속 써내려 가고 싶다. 가을마저 불타고 일그러진 얼굴만이 남더라도,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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