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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씨 Apr 02. 2023

서울은 시속 100킬로미터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했더라? 서울에 와서는 내게 묻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노트북을 열다가도 휴대폰 알람에 흠칫하고, 공원을 걷다 갑자기 당황스러워진다. 대구에서의 하루가 시속 50km라면 서울은 시속 100km쯤 되는 것 같다. 얼굴을 찡그리고 엑셀을 힘껏 밟다 보면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 있다.


불평만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느린 운전과 빠른 운전 둘 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보낸 날들은 단조롭고 느긋해 숨을 고르기 좋았다. 하지만 지루한 날들과 가족과의 마찰, 권태로움과 미래에 대한 체념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반면 서울은 쉴 틈 없이 변하는 풍경, 지루할 틈 없는 일상,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내게 생기를 준다. 딱 하나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치열함'이다. 


예로부터 치열함은 우리 인류의 발전을 도왔다. 치열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과 자본주의로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후재앙, 양극화와 같은 문제를 낳기도 한다...와 같은, 고등학교 사회문화 수업에서 언뜻 들었던 치열함의 흑과 백을 나는 서울에서 만났다. 서울은 매 순간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고 또 버려진다.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이나 한강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줄지어 선 자동차. 그리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이 향하는 회사, 미술관, 축제.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들 사이에서 해방감과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다들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걸까? 지치지도 않는걸까?


시속 100km로 달라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에 절박하게 달리지만,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제보다 성장한 내가 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더 빠르게 달려야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아니 지구의 생태계 자체가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성공하지 못하면 게으름뱅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자기계발서도 맞는 구석이 있고, 남들 다 치열하게 달리는데 혼자 걸으면 진짜로 도태될 것이다. (끔찍한 얘기지만)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서울의 치열함이 나의 치열함은 아니다. 나는 커리어를 쌓고 싶은 욕망도 없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충고에 마음이 불안해져 매일밤 길을 헤매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깨닫는다. 저 눈부신 삶들은 내 것이 아니라고. 나의 길은 따로 있다고. 내가 시속 100km로 달리는 이유는 언제나 글을 쓰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서울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멀미가 나고 무섭더라도 일단 달려야지. 딱 1년만......


(그리고 전세로 마련한 집에서 탈성장을 주제로 온종일 글을 쓸 것이다. 이 미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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