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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Sep 11. 2023

차순이 18

김범룡 씨의 이직

이틀을 일하고 비번이었다. 이사장이 오라고한 용건이 나쁜 일은 아닐 것 같아 아침부터 마음이 들떴다. 그래도 너무 일찍 가면 실례일 것 같아 점심시간이 지난 다음에 가려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비키니 옷장을 뒤져도 마땅한 옷이 없다. 누구 만날 일도 없고 철마다 회사에서 근무복을 지급해 주니 옷을 살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예상에도 없던 일이 갑자기 생기고 진전이 되니 당장 옷부터 신경이 쓰였다.


예금통장을 꺼내어 숫자를 확인했다. 달마다 은행원이 빨간 볼펜으로 기록한 입금액이 가지런히 적혀있는 통장의 마지막 잔액란에 6.600.000원이 기록되어 있었다. 외삼촌이 결혼이야기를 하실 때부터 월급 타면 맨 처음 은행으로 달려가 매달 30 만원씩 넣었다. 2개월 후면 만기이다. 이금액이면 주인댁과 출입문이 분리된 단칸전세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입출금 통장을 보았다.

100 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10만 원만 찾아서 옷과 신발을 사기로 했다. 통장과 도장을 챙겨 방을 나섰다. 김범룡 씨의 집은 개봉동이다. 이사장의 공장은 영등포구청 주변이다. 영등포시장에 가서 옷을 사서 갈아입고 공장으로 가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옷가게 들어가기가 멋쩍어 전파사의 동창에게로 갔다. 동창은 흔쾌히 옷가게까지 동행해 주면서 생각 잘했다며 장가 잘 가서 부럽다고 싱글벙글했다. 친구는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추석빔으로 양복을 사라고 권했지만 입어보니 너무 어색해 바지와 티셔츠와 가벼운 점퍼를 샀다. 새 옷을 입으니 운동화가 또 칙칙해 보여 내친김에 단화를 한 켤레 샀다. 군살 없는 몸매가 새 옷에 귀공자처럼 변했다. 친구와 간단하게 국밥 한 그릇씩 먹고 헤어져 이사장의 공장으로 왔다.

 

이사장도 점심을 먹고 김범룡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사무실에 마주 앉아 경리직원이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사장의 말을 기다렸다.

"처제랑 이야기가 잘됐다며?, 축하하네"

범룡 씨는 멋쩍며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이제 내 동서가 될 것이니 마음 편안히 하게, 그리고..."

이사장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머뭇거렸다. 범룡 씨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자네 여기로 와서 내 일 좀 도와주며 일도 배우면 어떻겠나? 이제기성복 시대가 되어서 이 일이 전망이 괜찮네 자네가 일을 배우면 장모님이 공장을 차려주신다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리고 운전하는 거 위험하다고 장모님이 불편해하시네 집안도 학벌도 다 따지지 않을 테니 운전만 그만두게 해달라고 내게 부탁을 해오셨네. 여기 직함은 공장장으로 하겠네, 월급도 운전하는 것보다 더 책정이 될 것이니 살림에도 도움이 될 걸세, 우선 직원들 관리하고 나하고 가끔 영업이나 나가면 되네"


범룡 씨는 생각도 안 했던 제안이었다. 지금 버스 회사에 있으면서 매월 대타를 5번 정도 타면 둘이 적금 넣으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모님이 운전하는 게 불편하다 하시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처갓집 신세를 지면서 시작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이사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외곽에 공장을 짓고 있네, 지금보다 좀 더 확장할 생각인데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네 마침 자네랑 인연이 되었으니 자네가 날 도와주면 내가 편할 것 같아 부탁하는 거네, 자네가 신세를 지는 게 아니고 나와 장모님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니 우리를 돕는 것이네, 도와준다 생각하고 내제 안을 받아주게나"


범룡 씨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사장의 말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누군가의 고용인이 된다면 가족의 일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공장이사는 한 달 후 추석연휴가 끝나고 바로 시작한다고 하였다. 새 기계를 10대나 더 들이는 확장이사였다. 범룡 씨는  회사에 사표를 다. 현미는 아무래도 좋다면서 수시로 범룡 씨의 집에 드나들었다.


시간은 흘러 공장이사는 마무리되었고 현미의 졸업과 함께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현미의 뱃속엔 범룡 씨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외삼촌 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언제 죽어도 누님 부부를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거라며 축하해 주었다. 첫아들과 연년생으로 둘째 딸이 태어났다. 단칸방에 아이들의 물건이 늘어나니 기어 다닐 때마다 벽에 머리를 찧거나 장난감에 걸려  맘대로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고 공장 여공 두세 명 하숙이라도 해서 생활비라도 보태겠다는 현미의 의견에 동의하여  공장 주변에 마당이 있는 방세개짜리 집을 월세로 얻었다.


첫 하숙생으로 범룡 씨의 조카인 이강자와 강자의 동갑내기친구 정양희가 들어가게 되었다. 현미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며 친절했고 강자와 양희의 밥상도 범룡 씨와 항상같이 차려 주었다. 범룡 씨는 그 행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공장장으로서의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 듯 보였다.


-다음은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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