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가 안내양이 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잘 적응하고 사감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7개월 전 금희언니는 금지된 운전기사와 연애사건이 확대되어 결국 만 7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했다. 안내양 관리가 소홀했다는 이유로 김사감도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아이러니 하게도 금희언니를 앞장서서 커버해주던 윤사감은 아무일 없이 계속 근무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윤사감은 회사 주주의 딸이었다. 양희는 자기가 줄을 서야 할곳이 어딘지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오병운 씨는 잘리지는 않았지만 조합장 선거에서는 당선되지 못하였다.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없게 된 오병운 씨는 스스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운전기사들도 수시로 바뀌었고 안내양들도 누군가는 떠나고 새로 보는 얼굴들이 자주 생겼다.
양희의 차에 신입 안내양이 수습을 위해 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안내양을 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노선만 외우면 되었다. 양희가 위치한 바로 뒷자리에 앉아 회사의 분위기를 묻고 전에 있던 회사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이 거의 삥땅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여기는 기사한테 얼마나 줘요?"
수습 안내양을 처음 태운 양희는 그 질문에 황당했다.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게 삥땅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김포 쪽에서 강화를 돌아오는 노선에 근무했다는 그녀는 아예 노골적이었다. 거리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요금제로 인해 하루에 몇천 원 정도 빼먹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는 것이다.
"여기는 그런 거 없어요"
양희는 시침을 떼고 말했다.
"에이, 이 회사 기사들이 노선이 겹치는 다른 회사 버스 따돌리는 기술자들이라고 소문났던데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노선이나 외우세요"
양희는 누구에게도 삥땅을 얼마를 어떻게 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본인도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직접 센타를 당하며 어떻게 숨기는지 알았고 앞차와 뒤차의 입금액을 보며 얼마를 갖고 기사에게도 얼마를 줄 건지 판단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서로 쉬쉬하는 그 일이 외부에 어떻게 소문이 났을까? 사실 양희도 기사들에게 주기 시작한 이후로 노선이 겹친 다른 회사의 버스를 간발의 차이로 앞서가며 승객을 태우는 것이 기술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원칙대로 시간만 맞춰 운행을 한다면 승객은 다른 회사버스와 거의 비슷하게 태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다른 회사버스와 겹쳐지는 지점에서 승객이 타는 분위기를 보고 양희회사의 버스기사들은 시간을 늦추거나, 서지 않고 앞서가서 다음 정류장부터의 승객들을 모두 태웠다. 양희회사의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고 다른 회사의 버스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런 일들은 삥땅과 연관이 없다면 하지 않을 일이다. 경쟁버스를 따돌리기 위해선 약간의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부에선 조용히 행해지는그일이 외부로는 좀 더 많은 삥땅을 하기 위한 기술로 소문이 난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다른 회사에 근무하던 안내양들이 이직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양희는 수습받는 신입에게 자기가 수습받을 때처럼 한마디도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과, 말해서 알려지는 것과는 책임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기가 하는 오른손의 나쁜 짓이 왼손조차 알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울면서 결심한 후 양희는 한 번도 욕을 먹거나 센타를 당한 적이 없다. 사감실에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사다 준 제과점 빵들은 사감이 대타 안내양을 찾을 때 우선순위가 되도록 만들어주어 양희의 월급은 안내양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기사들은 양희만 타면 승객을 미어터지게 태웠다. 이 모든 변화는 누구라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모두들 월급만 갖고 동생학비주고 부모님 용돈드리며 산다고 말하지만 삥땅을 많이 하는지 적게 하는지는 씀씀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절대로 회사는 안내양들이 세끼식사 외에 동생들 학비대고, 매점에서 뱃살이 두둑해지도록 군것질을 하거나 메이커 옷을 사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사 신을 만큼 월급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양희는 삥땅에 대해서 소영이에게도 말하지 않을만큼 철저했고 열심히 했다. 아무리 많은 승객이 밀려와도 태울 수 있는데까지 태웠다. 문을 닫지 못할 정도로 탔을 때는 거의 반정거장을 문 손잡이를 잡고 몸으로 승객을 막고 실랑이를 하며 매달려 가기도 했다. 기사가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밟으며 버스를 흔들어줄 때 어지간한 인원일 때는 승객들이 안으로 밀려 들어가 문을 닫을 수 있었는데 그 기술이 무용지물 일 때가 종종 있을 정도로 양희가 탄 버스의 기사들은 승객을 태우고 다녔다. 결국 자기가 몰래 가져갈 만큼의 돈을 스스로 번 셈이다.
입금액이 적을까 신경쓰지 않고, 기사들한테 욕먹지 않고, 돈도 모여지는 것을 보면서 양희는 정직을 비웃었다. 그런 양희에게 회사는 공로상도 주었다. 그렇게 번 돈을 양희는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남들 외상으로 대놓고 매점의 매출을 올려줄 때 양희는 비번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사 먹었다. 어쨌든 힘든 일을 하려면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발이 편해야 한다며 나이키 운동화 하나씩 다 살 때도 양희는 월드컵 운동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이키 신발이 안내양 월급의 절반을 호가하는데 그런 신발을 신으면 부정행위를 의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옷은 항상 시장표 청바지와 시장표 점퍼, 한겨울에도 시장표 목도리 정도로 살았다. 은행통장에 점점 불어나는 숫자에 다른것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양희를 동료 안내양들은 공순이 갔다고 말했다. 촌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밤마다 주머니에 입금하지 않고 남겨둔 지폐가 누구 눈에 뛸까봐 조마조마하며 가져온 돈을 희지부지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하는 일에 할 수 있을 때 돈이라도 모으자는 각오로 모든 생활을 절제하며 살았다.
만 1년이 되던 봄날에 김범룡 씨, 그러니까 양희가 공장에 있을 때 공장장님이었던 분이 찾아왔다. 너무 반가워 양희는 눈물이 났다.
"공장장님!"
인상 좋은 공장장님은 양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법 안내양 같은데, 할만해?"
"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어딜 가세요?"
양희는 뜨거워진 눈시울을 훔치며 공장장님을 쳐다보다 안내양 오기 전에 공장장님이 당부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가슴이 뜨끔 해짐을 느꼈다.
-다음은 월요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