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숙 Oct 05. 2023

차순이 25(마지막 회)

꿈을향해 내딛는 발걸음

"정양희, 오명란, 배갑숙, 이현순, 채수연, 다섯 명은 오늘 자율버스 홍보 나가!"

윤사감이 다섯 명의 안내양을 모아놓고 지시를 했다. 막 시행되고 있는 시민자율버스 이용홍보 업무를 하라는 것이다. 시민자율버스는 버스의 출입문을 앞과 가운데에 두 개를 만들고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앞문으로 승차하며 요금함에 스스로 요금을 넣고 하차시엔 벨을 눌러 하차의사를 밝히고 중문으로 내리는 시스템이었다. 각 시내버스 회사에서는 소위 모범 안내양 몇 명씩을 선발하여 승객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지점에 배치하여 이용방법을 홍보하고 안내하는 업무를 맡겼다.


안내양의 유니폼은 칙칙하고 푸르뎅뎅한 색깔의 폴리에스텔 원단에 헐렁한 큰 주머니가 달린 윗옷과 주머니가 없는 바지였다. 가운주머니가 큰 것은 버스 요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기 위한 것이었고 바지에 주머니가 없는 것은 삥땅을 예방하는 사소한 방책이었다.


라인도 없고 디자인이랄 것도 없는 포대자루 같은 그런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던 안내양 몇 명을 선발하여 허리라인에 벨트를 매고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에 호빵을 닮은 모자를 씌워 거리에 세웠다. 유니폼의 색깔도 밝은 자주색이었다. 처음 그 옷을 입고 작은 가방을 메고 거리에 설 때는 마치 안내양이라는 직업이 버스에서 시달리는 것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이쁘게 정복을 차려입고 안내만 하면 되는 업무로 바뀌어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선발된 것에 대한 우쭐함이 있었고, 부럽기만 했던 어느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이 버렸음직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점차 안내양을 없애기 위한 새로운 제도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는 자율버스 도입에 박차를 가했고 더 이상 버스 뒷면에 안내양 모집공고는 붙이지 않았다. 한번 나간 안내양은 서울시내버스 어느 곳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


양희는 아직 목표금액의 10프로 밖에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서서히 안내양을 줄이고 있다는 느낌은 안내양이라면 모두 느끼고 있었다. 회사는 사소한 꼬투리라도 보이면  사표를 쓰게 했다. 이미 일부는 좌석버스로  또 일부는 자율버스로 절반이상 바뀐 시점이었다.


 양희의 나이는 21살, 만 4년을 시내버스 안내양으로 살았다. 공부를 하겠다는 꿈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고, 목돈을 모으겠다는 꿈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적금을 넣었다.


자율버스로 모두 전환되기까지 길면 5 년 짧으면 3년이 걸릴거라는 괴담이 안내양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그사이에 운이 좋으면 양희의 목표 금액은 이룰 수 있을것 같았다. 양희는 더욱 허리띠를 졸랐다.


1년짜리 적금이 만기 1개월을 앞둔 날 시골에서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양희는 부모가 오셨다는 말이 반갑기는커녕 가슴이 철렁했다. 여유 있게 딸이 보고 싶어서 오실 분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 때문일 것이다. 매달 15만 원씩 보내드려서 돈이 없다고 해도 믿지를 않으신다. 돈이 한번 수중에 들어오면 절대로 쓰지 않는 양희의 성격을 아시고 얼마라도 따로 모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 하시는 거다. 아마도 그 돈을 달라고 오셨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번에는 절대로 한 푼도 내놓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영등포 역으로 나갔다.


낡은 양복을 입은 아버지와 네 폭짜리 초라한 한복을 입은 엄마가 계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계셨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신 아버지가 양희를 보고 용건을 말했다.

"거기 은편에 살던 희종이네가 인천으로 이사를 갔어, 거기가 집은 허름 혀도 땅이 넓어, 그 집을 다는디, 급히 팔라고 아주 싸게 내놨댜, 그 집 사서 농사도 짓 짐승키우먼 네 동생들 공부시키는 건 나오지 않겄냐? 그 집 사게  좀 주야겄다."

양희는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푼돈이 아니라 아예 양희의 껍데기를 벗겨 가겠다는 말로 들렸다. 양희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도 금방 안내양 그만두얄 같은디, 한테 돈이 워딨다구 집을 사래유? 돈 읎어유, 지발 돈 야기는 하지 말어유, 지도 좀 살자 구유~"


영등포 역전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양희를 일으키며 엄마는 말했다.

"그 땅 사먼 엄마가 콩이라두 심구 염생이라도 키워서 먹고 살 거여, 그러면 너한테 돈 달라고 안헐틴게 한 번만 더 줘, 넘의 집 문칸방 이사댕기는 것도 인자는 힘들어, 사람 많은디서 다 큰 처녀가 울지 말고 얼른 일어나"


한 번만 한 번만 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계산도 안된다. 제발 그냥 좀 가시라고 하고선 기숙사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보내고 양희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평생 자기 집 한번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집이 생기는 일었다. 엄마의 -이사댕기는것두 인자 힘들어- 라는 말이 가슴을 후볐다. 그러나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더 나이 먹기 전에 공부도 하고싶다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그러나 며칠 후 아버지는 동네 이장님과 다시 찾아오셨다. 이장님은 그 땅이 절반가격도 안되게 진짜 싸게 나온 거라며 아버지가 사고 싶어 해서 자기가 양보하는 거지 아버지만 아니면 자기가 살 거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무조건 사드리라고 양희를 설득했다.

결국! 또 한번 비휴가 배탈이 나버려 속에 있는것을 모두 쏟아내어 아버지께 드렸다.

 



양희는 14살 때 서울에 와서 공순이로, 차순이로 살았던 삶을 생각했다. 남들처럼 멋도 부리지 않았고 어디 놀러 다니지도 않았다. 일요일도 없이 야근과 철야를 하며 남들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일을 했다. 그런데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쓴 적이 없는 돈들이 자기 수중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 이런 결과가 어쩌면 자신이 허락되지 않은 남의돈에 손댔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영이도 금희언니도, 이미 떠나간 안내양들도 소식은 들을  없었지만 잘살고 있는지 가끔 궁금하다. 어쩌면 자신처럼 삥땅을 정당화하며 살았던 시간들이 삶을 기름지게 하기보다는  욕심과 허세만 키웠다는 반성을 하며 가난한 삶을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번돈은 쉽게 사라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뼈에 사무쳤다. 이제라도 모아놓기만 하면 사라지는 돈을 벌기 위해 부정한 짓을 더 이상  싶지 않다. 자신이 벌지 않으면 다람쥐가 모아둔 겨울동안 먹을 양식을 모두 빼앗긴듯한 처참한 심정은 맛보지 않으리라.  머지않아 안내양이 사라질수도 있다지만 그전에 자신의 의지로  일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희는 앞뒤 생각 없이 사표를 냈다. 수중에 남은 돈은 그달 받을 월급과 4년 치의 퇴직금이 전부였다. 꿈을 양보하며 살아온 보상 고는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검정고시! 그 계단에 발을 올릴 것이다. 죽도록 공부해서 전국수석을 할 것이다. 수석장학금으로 고등과정 검정고시를 볼 것이고 거기서 또 수석을 하여 대학 4년의 장학금을 받을 것이다. 대학에 가기만 하면 생활비는 과외아르바이트를 하며 충당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여 번듯한곳에 취직을 하고 안내양같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주머니에 달랑거리는 동전 몇닢 뿐 이었지만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몇년동안 먹고살것을 마련할때까지 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퇴직금으로 1년 치 학원비와 교통비는 될 듯싶었다. 일단은 꿈을 향해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기로 했다.


학력만 있으면 신분이 높아지는 줄로 알고 있었던 양희에게 검정고시의 도전은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는 일이었다. 오빠의 자취방으로 책과 옷 몇 가지를 옮기고 곧바로 신설동으로 갔다. 그곳에는 TV에서 인터뷰하던 안내양이 다닌 검정고시 학원이 있다. 그곳에만 가면 꿈을 이룰 것 같았다.


중학교 과정의 등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터질듯 부풀어오른 가슴의 공기를 토하려고 빌딩숲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보았다. 코발트빛 하늘에 흰구름이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흐르고 있었다. 무시로 변화하는 삶에서 안내양을 놓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던 생각을 구름 따라 흘러 보냈다. 부모를 도와 동생들이 배고프지 않고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 주머니에 숨긴 지폐가 누구에게 들킬까 노심초사했던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빈마음 빈주머니의 평온함이 양희를 감싸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거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 부정한 짓인 줄 알면서도 분위기에 편승해 살았던 4년의 꿈에서 깨어난듯 하다. 시간들 교훈 삼아 이제부터라도 양심을 속이지 않고 살 것이다. 자신의 몫이 면 가난도 받아들일 것이다. 저 아름다운 하늘을 마음껏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떳떳한 마음일 테니까.   

끝.



-그때 그 안내양- 은 여기까지입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이미 출간된 에세이 -그때 그 안내양 어떻게 살고 있을까?- 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구매문의 : 010 7512 5705번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순이 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