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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Nov 25. 2021

언어의 흑마법사

판타지

죽은 정자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시기까지 했으며. 나를 사랑하신다. 아무런 대답, 대꾸도 없는 나를 그저 그냥 두셨다. 내비두셨다.


심장이 뛴다거나, 숨을 쉬는 일, 잠에서 일어나 눈꺼풀을 여는 일은 귀찮지 않은 일이다. 다만 무언가 궁리한다거나,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 그에 대응하는 일은 상당히 귀찮은 일.


처음으로, 스스로 집 밖에 나섰을 때였다. 기억하는 일 또한 귀찮지 않다.


너저분하고, 투박한 인상의.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지만 덩치는 그보다 큰 놈 두 명. 그들이 내게 뭐라 시비를 건 적이 있다.


논리도, 이유도 없는 그 일방적인 대화. 내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일말의 실패에 대한 자기 혐오가 발동했을지 모른다.


그 결과는 일방적인 폭력이요, 폭력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드잡이질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 여겼기에. 나는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었다.


"죽어."


엄마를 제외하고, 내가 처음으로 상대에게 내뱉은 말이다.


또한 2 - 3년? 을 묵혀온 목청의 떨림이었다.


그 속에 응축된 필요와, 갈망과, 무게. 그것들이 가진 힘은 내 앞에서 주먹과 발길질을 하던 하찮은 존재들의 죽음을 실현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보일지, 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입술 사이 검은 공간에서 튀어나온 죽음의 떨림은, 검은 모래알이 되어 놈들의 귀와 가슴팍으로 사슬처럼 파고 들었다.


결국 그 둘은, 귀와 심장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며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 했다. 내 말대로.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은, 마을 어귀서 거적대기에 쌓인 그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이다.


난 이 사실에 쾌감을 느꼈다!


두 눈은 번쩍 뜨이고, 입꼬리가 솟아 송곳니며, 어금니까지 모조리 드러낼 정도로.


짧게나마 살인의 쾌락일지, 생각 들었으나 무엇이 어떠하랴.


첫 성취, 최초의 위업.


슬로스라는 이름으로, 죽은 정자였는지 뭐였을지한 미생으로부터, 세상과의 첫 상호작용을 일구어낸 나의 업.


"... 해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비상한 일이라고,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으레 '마법'이라 불리우는 기이한 일이구나, 검게 발현되니 사람들이 입밖에 올리는 것조차 꺼려하는 '흑마법'이겠구나.


'나는 특별하디 특별한 존재구나.'라는 감상은, 나를 자만의 길로 인도하는 대신 눈동자에 생기를 불어 넣었으며. 자립을 꾀하게 만들었다.


성취감, 호기심, 내일의, 내 업에 대한 욕망으로 귀찮음이, 약간은 가셨다.


책을 보는 것은 귀찮지 않다.


그 첫 장을 펼쳐 들고, 내용을 이해하려 들 때가 조금 버거울 뿐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거나, 어떠한 욕망을 잠깐이라도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 첫 장이 한 단락이 되고, 주제와 정보를 넘어, 한 권의 경험을 흡수하게 한다.


그러한 방향으로, 인간의 특성으로, 내 눈 앞의 책들은 모조리 읽어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누군가의 인생을 가져오라면 가져오고, 보이라면 보였다.


하지만 여태껏, 사랑해마지 않는 엄마에게는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용케.


습관이었다. '언령'이라고 불리울 내 능력에 대해 알게되고, 그 힘을 자주 사용하게 될 때까지도. 그 이후로는 두려움이었다.


나의 엄마에 대한 사랑보단, 엄마가 스스로 주시는 사랑. 방향은 아마도 하늘이 내려주는 것 같다. 그것은,


옅은 분홍빛이다가도, 노란색이나 초록으로. 물안개 처럼 엄마와 내 주위로 발산하곤 했다. 언젠가 그것들을 손으로 휘적였을 때, 나는 피부가 아닌 가슴으로 그것들의 온도를 느꼈다.


아쉽지만, 엄마는 이 아름다운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눈으론 그저 허공에 바둥댈 뿐인 내게. 뭐하고 있느냐 물어볼 뿐이었다.


그 사랑의 안개가 두 눈 속에 가득했는지. '멋진 춤이네 아들'이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 * *


감정이 상한다, 라는 경험을 겪어보지 못했었다.


엄마가 얼굴을 크게 다쳐, 아름다운 그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내 굳은 표정을 애써 움직이려는, 입술이나 광대의 씰룩거림이 느껴지고. 가슴속이 쿵쾅거리어 손 끝마저 그 여파에 떨리기 시작했을 때도.


그 굳은 감상들이 무너진건,


"아들, 엄마 예뻐?"


라는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무너졌다. 씰룩거림이나 떨림들이 멎었으나, 눈물 주머니에서 주륵-하고 흐른 눈물 고작 한방울은 막지 못했다.


"아들 우는건 태어났을 때 이후 처음이네-"


오히려 엄마가 더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것과 동등한 크기였을거라 생각한다.


생각이라는건 늘 귀찮던 일이기에. 조용히 집 밖으로 걸어나왔다.


엄마는 어디가 아들, 왜그래 아들 했지만 실랑이의 결과를 미리 예정지어본 나는 그만,


"안내해, 누가 그랬어."


라고. 엄마에게만큼은 처음으로 언령을 사용했다.


엄마는 다른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표정인, 푸근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그녀는 가는길 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걸었다. 무엇을 수긍하는지, 무엇을 받아들인건지 모르겠다.


이제서야 되돌아 보자니, 아들의 성장? 복수의 후련함?


아니면, 나 몰래 예견한 비극 서사에 대한 체념?


포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딱 어제까지만.


엄마랑 나, 둘을 먹여살릴만큼의 돈을 줘왔고, 일단은 내가 그의 앞에 설 때까지 간접적으로 날 키워준 존재 중 하나라고, 어쩌면 내 아빠일 수 있다고 생각한적 있으니.


"뭐야, 또 처맞고 싶어서 왔어? 아니면 발정이라도 난거야?"


언령을 완수한 엄마의 표정은 두려움에 물들었다. 일그러진 얼굴이 더 깊은 공포를 그렸다.


"이새낀 또 뭐야? 애인이냐?"


"일그러져라."


심성과, 외모대로. 그저 그 놈이 일그러진 상태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 선택한 단어다. 튀어나오듯, 짧게 뱉은 그 말의 효과는 정확했다.


검은 모래와 같은 내 언령, 그 마력은 벌통을 헤집는 곰의 머리를 뒤엎듯, 포주의 머리를 휘감았다. 마치 눈 코 입이 없는 흑기사의 투구처럼.


그 사이로 새어 나오던 포주의 목소리도, 성큼성큼 걸어오던 발걸음도 한 순간에 멎는다.


빠각-


두터운 머리뼈가 깍여나가는 소리와


끕-


하는 단말마, 뿌지직 하며 내장을 쥐어짜는 소리. 피가 새어나오는 소리.


나는 엄마의 눈을 가려주었다. 책에서 보니, 대개의 등장인물들은 타인의 죽음과, 피 같은 것을 보는걸 심하게 싫어한다.


기하학적인 죽음에 무릎 꿇지도 못한채, 대충 만들다 만 허수아비처럼, 피웅덩이에 자빠진 놈을 뒤로하고. 엄마와 거리를 나왔다.


"엄마"


엄마는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오늘은 얼마나 좋은 날인가, 내가 엄마와의 대화를 갱신한 날인데.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눈물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선 행복의 눈물만을 보고 싶어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멎어라, 행복해져라."


맞아 멍든 상처에서의 고름이, 피딱지가, 그리고 슬픔의 눈물이 멎길.


아무래도,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도 아닌듯하다. 또는 그 방향이 우리가 꼭 원하는 일만은 아닌듯하다.


엄마는,


"헤... 히히...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히이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엄마의 삶에서 가장 많이.


* * *


포주를 죽인다. 이 위업의 댓가는 컸다.


목격자. 상정하지 못했던, 포주놈의 몇 번째인지 모를 애인. 남성.


미숙하디 미숙한 사회에서의 걸음마는, 깨어진 유리조각의 밭이었다.


앞으로 내가 숨쉬고, 뱉을 말들이 가시밭길의 장막에 막히는 듯했다.


감옥에서, 쥐의 죽으로 만든건지. 역한 냄새가 진탕하는 입마개를 쓰고.


거대한 망치로 내 턱주가리를 짓이기는, 묵직한 형벌을 기다리게 되었다.


기다림은 귀찮았고, 나는 이것이 생존욕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새는 발음으로, 간수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수백번 반복하여, 나에게 말한다.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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