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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Jan 28. 2022

연금술

마법사와 연금술사의 대화

 마법사는 탁한 초록빛 광택을 내는 석판 하나를 소환했다.


“사본이야, 내용은 정확할걸세.”

 그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자신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간의의자를 끌어당겨 그 위에 슬금슬금 앉으니, 아예 눌러 앉을 모양이다.


 석판에는 무려 양각으로, 양인들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글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요.”

 “괜찮네, 지금처럼 내 상념이 자네에게 전달 될 것이니까.”

 마법사의 말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흘러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틀림없는 진실로써, 확실하고 가장 진실하다.

 둘째, 유일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아래와 위는 같으며 위와 아래는 같다.

 셋째,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의 명상에서 나왔으니,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넷째, 태양은 그것의 아버지, 달은 그것의 어머니, 바람이 그것의 자궁으로 지구는 그것의 보모로다.

 다섯째, 만물의 완벽성의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여섯째, 만물의 힘은 흙으로 통합된다.

 일곱째, 조심스럽고 위대한 재주로 전체에서 감지하기 힘든 불에서 흙을 뺀다.

 여덟째, 이것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모든 것의 아래와 위에 있는 힘을 받는다. 

 아홉째, 당신은 모든 것의 영광을 얻는다.

 열 번째, 모호함이 사라질 것이다.

 열한 번째, 이것은 가장 강한 힘으로, 모든 액체를 투과하고, 모든 고체를 통과한다.

 열두 번째, 그래서 세상이 창조되었다.

 열세 번째, 나는 지혜와 철학의 세 조각을 가지고 있기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 불린다.

 열네 번째, 이 판은 태양의 운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심오하군.”

 내 짧은 감상이었다. 


 “사랑의 묘약? 흠, 이딴 것이나 만드는 자네에겐 설명이 좀 필요하겠군.”

 마법사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향수병 하나를 손짓으로 끌어당겨, 공중에 뜬 그것을 유심히 보더니 내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사랑이 어때서 말이오?”


 “시도는 좋았네, 이건 그저 향수일 뿐이 아닌가?”


 “.......”


 “흠흠, 괜찮네. 나도 돈은 좋아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부탁을 하려는게 아닌가. 마법 매질을 만들기 위해........”


 “알았으니 어디 한 번 설명해 보시오.”

 호기심이 동했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데 이것 또한 운명이라, 이 자로부터 재물운이 깃들지 모른다. 사람들은 마법사를 기피하긴 한다만.     


 “첫째로, 틀림없는 진실, 확실하고 가장 진실한 것이 무엇인 것 같은가?”


 “모르오.”


 “생각이라두 좀 하는 척이라도 하지, 아쉽군. 그것은 사상이나 믿음이라네.”


 “흠.”


 “둘째로,”

 마법사는 주름지고 뼈마디가 굵지만, 여리여리하고 가느다란 것이 어찌보면 고운,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다.


 “아래와 위는 같으며 위와 아래는 같다. 이건 말 그대로 순환이지, 원 같은거야. 유일한 기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존재나 탄생을 일컫지.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그는 유독 강조하여 말했다.


 “유일한 기적을 이루기 위해- 순환한다라, 어떠한 존재를 위한 순환이라.......”

 나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이 자를 사기꾼으로 여기기로 하는, 편한 수단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셋으로, 모든 인과는 나로부터 혹은 누군가의 자아로부터 시작되니 모든 길은 나와 나의 생각으로 통한다. 나의 인식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통로이다.”


 “선문답이군, 말장난이야. 그렇게 넘길 수도 있겠어.”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그의 다음 설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간만에의 이런 대화가 내심 즐거웠다.


 “태양과 달, 낮과 밤, 즉 하루, 일생이 우리를 감싸 안으니 우리는 이 공기 중에 존재하며, 내 말은 공간이라는 것이지, 자네도 숨을 쉬고 있고 에- 또 우리의 몸이란게 땅을 딛고 있지만 어쨌거나 대기 중에 있지 않나?, 지구라는 배경과 무대 위에서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지. 세월 말이야. 흠흠, 태양과 달 또한 순환하는군.”


 “흠.”


 “이때 지구라 표현함은 우리의 육신, 물질이 단지 세상으로부터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라. 세월과 순환 속에서 결국 대지, 토양으로, 다시 새 생명으로. 지구는 가장 확실한 보모이지. 나를 버릴수도, 내가 버릴수도 없지 않나.”


 “별을 따러 간다면야.”


 그의 취향에 적중했는지 실없는 농담에 마법사가 껄! 껄!하며 크게 웃는다. 급기야 그 백골같은 손가락으로 눈끝을 살짝 훔쳐내고 말을 이었다.


 “흐흐... 다섯으로, 만물의 완벽성의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만물의 완벽성, 그 아버지는 무엇일 것 같은가?”


 “......신이나 창조주,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자네는 신이 무엇인지 아는가?”


 “종교에는 관심이 없어서.”


 “관심이 없으니 종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군, 나 또한 명색이 마법사인지라 종교쟁이들과는 글세, 가끔씩 마찰을 빚긴 하지만.......”

 마법사는 내 눈치를 보았다. 아마도 지루한 내 눈빛과 심드렁한 인중을 풀이했으리라.


 “음. 어찌되었건. 즉 신, 또는 이상. 진리의 극한 같은 것이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것. 궁극적인 믿음인지라, 이걸 많은 사람들이 금이라 생각했지, 금의 물질적인 속성만 말이야. 하지만 금의 영혼적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되지, 불변성과 가치라는 것을 말이야.”


 “잠시.”

 슬슬 골치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곱씹어보던 나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종이 하나를 붙잡고 그의 말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계속해도 되겠나?”

 마법사는 내 글씨가 한 차례 끝을 맺을 때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크게 끔뻑이곤, 깍지를 꼈다. 


 “여섯으로, 나에겐 이게 난제야. 만물의 힘은 흙으로 통합된다라....... 만유인력을 뜻하는 것인지, 땅을 딛고 삶을 걸어가는 우리 자신을 표현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결국 토양으로 돌아감을 뜻하는 것인지....... 이건 넘어가자구.”

 아마도 가장 마지막의 것이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눈을 잠시간 천장에 두었다.


 “일곱으로 넘어가서, 조심스럽고 위대한 재주. 우리네 생각이란 건 때때로 위험한 방향으로 튀거나 가지를 치지,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네. 다툼과 분쟁은 늘 누군가의 생각에서 시작되곤 하니까. 반면 위대한 것이란 우리네 신념과 사상이될 수도 있지. 전체에서 감지하기 힘든 불? 전체라.......”

 이번엔 마법사의 두 눈이 천장에 닿았다. 내가 보던 곳과 일치한 것 같은데.


 “불이라... 열정과 노력이 아닐지? 매사에 열정을 쏟거나 노력과 인내를 발휘해야할진댄, 결과적으로 그것을 체감하거나 또 그것을 잘 표현해낼 길이 없다 이말이야. 예컨대 자네가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을, 내가 이 불꽃을 일으키기 까지 겪은 수없는 노력들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지.”

 마법사는 손가락 끝으로 작은 불씨 하나를 피워냈다가 금방, 팟- 하고 꺼뜨리고는 계속 말했다.


 “노력이란 것은 시간의 경과인겐지, 정밀함인지, 의지력인지 조차 모호하다는게지. 물론 모두를 포함하고 모든 것의 합일을 이루어야함에 이 석판의 전체적인 내용과도 일치하는군. 흠흠.”


 “음.”

 나는 다시 펜을 들어 종이 위에 검은 글씨들을 새겨 넣었다. 노트를 가져올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흙은 물질로 대변되고 있군. 일곱의 내용은 결과물, 결과값, 물질과 재화 이런 것들을 배제한 순수한 생각....... 이를테면 가치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생각함에 있군. 여덟으로는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 위치에너지일까? 아니야, 일곱의 내용에 이어서 보아하니, ‘물’에 빗대어 생각을 말하고 있어. 고저의 차이로 표현한 것은 생각의 괴리를 나타내는 것과도 같군. 아마도 주어가 바뀐 모양이야, 아니면 생각의 편향? 문화? 물결? 트렌드?.......”

 그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고양이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어들을 짤막하게 내뱉었다.


 “흠, 어서 다음 구절로 넘어가 주시오.”


 “...아홉으로, 모든 영광이라, 이 구절이 하필 왜 여기에 쓰여있을진 모르겠으나 해탈이나 깨달음의 경지 아닐까? 아니면 소망이나 바램, 숙원을 이루게 되는 시점일지도.”

 그는 혀로 윗입술을 눌러 핥았다. 인중이 늘어난 그 모습이 마치 어딘가에 몰두한 원숭이와도 같았다.


 “반면, 모든 것의 영광이라... ‘죽음’을 나타낼 수도 있겠어.”

 마법사의 미간이 좁혀졌다가, 아랑곳하지 않는 내 무표정을 마주하고는 눈동자를 옆으로 슬며시 흘렸다가, 다시 천장에 가 닿는다.


 “열로, 모호함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 확신이군. 세상에 완벽한 것은 실재할 수가 없어, 완벽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개념에 불과하지. 결과가 난다는 얘기야. 모호함이 사라질 것이다....... 경계나 구분의 철폐, 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겠어. 아무래도 자네 같은 연금술 작자들은 이 구절로 인해 여러 것들을 섞는데 혈안이 되기도 하지.”

 마법사가 눈알을 까뒤집으면서 나를 놀렸다. 제법 재밌는 광경이었으나 나는 웃지 않았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이지만, 혀라도 내밀었다면 그의 얼굴에 유리병을 던졌을 것이다.


 “열하나로, 휘유! 방사선인가? 가장 강한 힘이라니, 물질을 구성하는 끌어당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군. 자네 엑스레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엑스... 뭐요?”

 질문이 무색하게, 마법사가 떠올리는 광경이 머리에 깃든다.


 “아. 세상 신기하군.”


 “사람들은 이 엑스레이라는 것을 통해 사물을 관찰하거나 무엇인가 꿰뚫어 볼 때 쓰기도 하지 않나? 관찰력, 직관, 통찰력으로 대변되는 것들은 으레 어떤 것이든 꿰뚫오 보곤 하지. 흠, 호기심이 그 원천이야.”


 “그래서, 호기심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단 말이오?”


 “기다려 보게. 아- 이것은 어쩌면!”

 마법사는 말을 삼켰다. 나는 달리 재촉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들은 바, 머릿속으로도 그의 고심이 전해졌고 실타래는 충분히 풀려가는 것 같다. 그의 결론이 제발 뜬구름 잡는 소리만 아니길 바라며.


 “인간은 제 주변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말이야. 제 아무리 드래곤이 산을 증발시키고, 강줄기를 바꿀만한 힘이 있다한들-”


 “방금 드래곤이라 하였소? 당신은 그걸 본 적이 있소?”


 “인간처럼 탑과 건물을 쌓을 능력이 없듯 말이야. 또 다른 관점으로는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라거나 인류가 이 세상을 기록으로써 재탄생 시키고 있다거나....... 정말로 누군가, 이 세상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네. 마법을 배우다보면 가끔 그것을 의심할 때가 있어. 모든 것들이 공식이나 수의 개념으로 딱딱 맞아 들어갈 때 말이야. 마법사들과 학자라는 족속들은 대개 이럴 때 희열을 느낀단 말이지!”

 그는 흥분하여 치렁치렁한 소매가 달린 두 팔을 번쩍 펼쳐 들었다. 드래곤을 본 적이 있냐는 내 말은 철저히 무시해 놓고선. 나는 좀 못마땅한 표정이 되었다. 마법사는 양 팔을 슬금슬금 접으며, 다시 왜소하게 수그러들었다.


 “열셋으로, 이건 저자 소개인가? 흠.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인지,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면.......”

 마법사의 의식과 연동된 것처럼, 석판 위의 지혜와 철학이라는 뜻의 글자들이 반짝, 반짝하고 빛을 내었다.


 “지혜와 철학, 생각을 말하고 있고. 지혜를 담을 그릇과 생각을 진행할 시간이려나, 헌데 이건 누구나가 가지고 있지.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저 말장난이나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네. 아니면 누구나가 지혜와 철학을 지니고 있음에도 대부분 그 자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꼬집어 낸 것일 수도 있고. 흠흠. 그러니까 누구나 이 석판의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거지. ‘나처럼 할 수 있어!’ 이런 느낌으로 말이야.”


 “하하, 그것 참 말이 되오.”


 “마지막 구절인 열넷으로, 이 판은 태양의 운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천문학? 아니야, 태양의 운행, 우주의 신비, 이 세상의 순리. 운행이라 함은 시간의 경과를 담고 있군. 좀 더 나아가면 세상이 흘러가는 원칙이나 진리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어.......”

 마법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중요한 내용을 말할 것이라, 무게를 잡는다.


 “그러나 이 판의 내용이 맞다라거나 완벽한 진리라고는 할 수 없네, 다만 진리에 가장 가깝겠거니 하고 짐작하는 이유는 사실 진리라는 것이.......”


 “불완전함의 완전함 추구!”

 나는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을 침과 함께 내뱉었다.


 “뭐, 비슷하네. 그 불완전과 완전함의 괴리감 속에서 세상은 채워지고, 사방으로 흘러가는게니까. 사실 마법이란 것도 자연계의 괴리와도 연관이 많으니 말이야.”

 그는 살짝 삐져나온 턱수염을 하염없이 꼬집으며 말했다. 나는 제 대답에 만족해하고, 그 깨달음의 기쁨을 살폿이 만끽하며 정리했다.


 “정리하자면,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니 각 호에 필요한 재료를 대입해 살아가고, 창조하고, 몰입하는 것이군요.”


 “그렇지, 그렇게 내 의뢰를 달성할 수 있을걸세. 그리고 이 판에 담긴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인가봬.”

 마법사는 손가락을 튕겨 석판을 빙그르르 돌렸다. 등불에 반사된 초록빛들이 어지러이 공방 내부를 비춘다. 마법사는 간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어떤 것이라도, 만물을 창조하는 방법, 만물과 세계를 이루는 단 한가지 법칙!”

 그는 품 안에서 ‘마법 매질‘에 대한 그의 요구사항이 세밀하게 적힌 두루마리를 꺼내 내게 건넸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현자의 돌‘이 될 수 있겠다.


 “세상을 신이 뿅! 하고 창조했는 줄 아느냐, 아니오. 모든 것은 자연이 순환하며 빚어진 것이다. 그래, 순환과 거듭, 발전. 마법처럼 뿅하고 나타날 일은, 세상에 없어.”


 세상에 마법 같은 것은 없다고, 연금술사에게 마법사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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