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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Jun 06. 2022

버팀

황구일 시집

빛은 대각이다.

빗방울 내려봐라

부는 바람 아닌 이상

햇볕에 마른자리 나올테니.



새벽에 내린 비에 습습한 공기를 만끽하며 담배를 한 대 태우던 때였다. 누구나가 공감하겠지만 삶이야 늘 고단하고 이런저런 힘든일이 닥쳐오기 마련이니, 내가 어떠한 심상으로 담뱃불을 댕겼는가 상상해본다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혈액순환이 덜 되었음이라, 절대 운동을 게을리해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묵직하고 제법 펑퍼짐해진 내 둔부를 걸치고자 흡연장에 놓인 벤치로 걸어갔다. 하지만 새벽에 내린 비, 미처 중천에 도달하지 못한 해로 인해 나무 표면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고작 담배 하나 피는 데 바지를 적실 수는 없는 노릇으로 나는 마른자리가 있나 벤치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는 것에서 오히려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고, 영감이 떠오른다.


나뭇잎이 드리운 바로 아랫자리를 쓰다듬으니 촉촉한 감촉이 남아 있긴 하다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곳은 이미 말라 있었다.

나무라는 커다란 뒷배 덕일까? 아니다. 그자리는 유독 강한 햇빛으로 살구색에 가까운 밝은 표면으로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히려 낮게 뜬 햇빛이 건물 사이로,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비추고 있었다.


빗방울은 오로지 수직으로만 떨어진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정확히 머리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만 떨어진다. 모진 풍파와 빗방울이 만나 우리의 몸 전체를 적시는 일이 있더라도, 꾸준히 나아가는 자의 등줄기에는 제법 마른감이, 보송함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고작 몇 날에 한 번, 몇 시간 정도 내리는 비 따위.

매일 같이 사방으로 우릴 감싸오는 햇빛이, 내가 자리할 곳 포근하게 마련해 준다.

오죽했으면,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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