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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Dec 27. 2023

합격자 발표까지 24시간 남았다.

3. 교사 임용 시험 이대로 좋은가.

 대학을 졸업하면 할 수 있는 것이 교사밖에 없다는 생각에 슬펐다. 교사가 진정으로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 길이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사범대에 입학한 이상 나는 교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믿는 편이 나에게도 그리고 나를 믿는 가족에게도 이득이었다. 사범대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내 꿈은 교사로 굳어갔다.


혼자 있기 좋아하고 소심한 성격인 내가 교사로 몇십년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교생실습을 계기로 깨달았다. 교생실습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빛났고 이들과 함께 지내며 내게 숨겨진 적극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교생실습한 학교는 남자 중학교였다. 남학생들의 순진함과 엉뚱함에 매순간 무너졌고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삶이 행복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다. 교생실습 이후, 막연하던 교사의 꿈은 간절함으로 바뀌었고 본격적으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임용고시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노량진 학원가를 기웃거렸을 것이다. 나 역시 임용고시 합격을 목표로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했다. 컵밥과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며 노량진 학원가에 입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량진까지 갔던 것이 과연 임용합격에 도움이 되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불안한 고시생의 마음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종일반 수업은 9시부터 5시까지 이어졌고 수업이 끝나면 서울 지하철이 주는 낯설고 묘햔 우울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보통 수업은 두달코스로 짜여져 있었고 나는 한 번의 수업을 들었다. 노량진 특유의 분위기와 기운을 느끼며 임용공부는 본격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11월이 되었고, 임용고시를 치뤘다.

2003년 윤리 과목의 선발인원은 많지 않았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과감하게 광역시를 응시했다. 그래서 선생이 되었다. 여러차례 공부하신 분들도 많은데 대학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라는 영광을 얻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좋은 운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 또한 많이 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날 때까지 책상에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철학자, 교육학자, 도덕심리학자들의 저서와 논문도 찾아서 읽었다.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했던 시기 였다. 노력과 운이 합쳐져 합격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나는 교사로 살고 있다.


임용고시를 본지 스무해가 지난 2022년 11월. 임용고시 감독교사로 임용고시 현장을 방문했다.

적당한 긴장은 기분을 쫄깃하게 해주는데,  임용고시를 보는 수험생들과 함께 있는 공간의 긴장감은 몹시 불편했다. 초조하고 불편한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다. 모두가 교사의 꿈을 간절히 원하는 눈치였고 그들이 원하는 교사의 자리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최근에는 제자가 임용고시를 본다고 연락이 왔다. 제자는 내게 그 당시에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물었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어렵게 대화를 이어가다 20년 전 이나 지금이나 임용공부 패턴이 놀랍도록 유사하여 신기했다. 세월이 오래 흘렀건만 어쩜 이리도 비슷한지, 변화된 세월만큼 이제 조금씩 교사 임용 제도도 바뀌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A는 열번 넘게 임용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물론 하루 종일 공부에만 전념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가장이 된 그는 기간제교사를 하며 꾸준히 임용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아깝게 탈락했다. 관운이라는 것이 없는 건가 생각하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년 도전하고 있다. 이런 A에게 퇴근 길에 전화가 왔다. 그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서울시 교육청에서 과원교사들에게 6개월 동안 미술, 도덕(윤리), 정보, 컴퓨터 연수를 이수하면 복수전공 자격증을 준다며 단기 연수 과정을 통해 미술, 도덕(윤리), 정보, 컴퓨터 교사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진짜? 헐. 너무하네. 미친거 아니야" 등의 말을 뱉어냈다. 도덕교사가 되고자 다양한 전공 서적을 읽으며 엉덩이에 종기가 날 때까지 공부 했는데, 고작 6개월 단기 자격 연수를 들으면 자격증을 준다니.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궁금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사 선발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교사들이 알아서 돌려 막으며 이 현실을 조금만 더 비텨내라고도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내일은 2024학년도 중등임용고시 1차 합격자 발표날이다. 합격자 발표를 보고 어떤 이는 웃음을 지을 것이고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교사라는 목표를 향해 꿋꿋하게 걸어 온 그들에게 정당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눈 앞의 일을 빠르게 해결하려는 졸속행정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교육과 관련된 문제라 생각한다.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후배와 제자들이 내일 합격자 발표를 담담하게 열어보고 혹시라도 눈물 짓더라도 정당한 기회가 주어짐에 안도했으면 좋겠다. 부디 단기연수로 교사 자격증을 남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제가 작성한 글 내용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링크합니다.>

"미술 전공 안 해도 미술교사 가능?…교육청 공문에 뿔난 교사들

https://www.mbn.co.kr/news/society/4988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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