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지난 연말쯤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뾰족해졌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나타나는 증상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려 해도 뾰족한 마음은 도통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뾰족해진 마음은 마음속 계좌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마음속 계좌가 부족해지면 비슷한 패턴의 괴로움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우선 불행배틀이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과 그리고 SNS 속 타인들과 내 삶을 비교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역시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케케묵었던 이젠 잊어도 될 법한 불행했던 과거사까지 어렵게 끄집어내어 행복이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체념한다.
불행배틀을 통해 강자가 된 이후엔 타인이 건네는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내 방식대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혼자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 스스로 고립된 채 외로워하고, 타인들에게 상처받았다며 괴로워한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오늘 저녁 뭐야?"
"카레 먹자."
아들이 답했다. "카레 싫은데.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마음속 계좌가 채워져 있었다면 아들의 답에 여유 있게 대처했을 텐데, 마음속 재정이 바닥난 나는 아들의 말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어디서 반찬투정이야? 주는 대로 안 먹을 거면 네가 차려 먹어."라고 말했다. 단지 궁금해서 그리고 다른 것이 먹고 싶어서 물어봤을 뿐인데, 아들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이처럼 마음속 계좌 잔고가 부족할 때에는 스스로 불행해질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건네게 된다. 마음속 계좌를 하루빨리 채워야 무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속 계좌를 채우고 싶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펼쳤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오이 맛이 쓴가?
그렇다면 던져 버려라.
가는 길에 가시덤불이 놓여 있는가?
그럼 피해 가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 이런 일들이 세상에 일어나는지에 대해 복잡하게 따지지 마라.
만일 당신이 목수나 재화공의 작업장에 가서 물건을 만들다 생긴 대팻밥이나 널려진 가죽 조각에 시비를 건다면,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현우. 이현준 편역, 메이트북스, 2020, p.23 참고
가끔 세상사 모든 일에 시비를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감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감정조절이 어려울 때가 있다. 며칠 전 옆 차선의 차가 끼어들기를 하려고 했다. 깜빡이 신호를 켜고 들어오려고 해서 양보해 줬는데 조금 가다 보니 또 깜빡이 신호를 켜고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한번 양보해 줬으면 된 거지 또 양보를 해달라니, 나를 호구로 보나 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다. 클락션을 세게 울렸다. 마음속 계좌가 비어 있던 나는 화를 내며 씩씩거렸고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양보하거나 피해 갔으면 기분 상할 일도 없었을 텐데, 복잡하게 생각하고 일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나만 피해를 본 셈이다.
살다 보면 쓴맛 나는 오이를 던져 버리듯 단념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리고 내 앞에 가시덤불이 놓여 있다면 피해 가는 것도 인생을 잘 견뎌내는 요령이 될 수 있다. 마음속 계좌가 채워져야 쓸데없이 감정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대패밥이나 널부러진 가죽 조각에 시비를 거는 우스운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마르쿠스의 말처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복잡하게 따지지 말자. 인생이란 가끔 힘 빼고 보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마음속 계좌를 채우고 싶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싫으면 피해 가고 힘들면 쉬어가자. 그러다 보면 풍족하고 넉넉한 마음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