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
한 해를 지내다보면 유독 버텨내기가 힘에 부치는 달이 있다. 내겐 3월이 그렇다.
3월은 낯선 설레임이라는 매력을 안겨주지만 그 낯섦이 묘하게 나를 힘들게 한다.
학생으로 산 세월이 16년, 교사로 산 세월이 21년이다. 그렇다 보니 내 인생에서 3월은 한 해의 시작점이 된지 오래다. 의지와 무관하게 3월에는 늘 뭔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리고 익숙했던 내 주변 환경도 많이 바뀐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3월의 낯섦을 버티며 적응하려고 애쓰고 살고 있다.
3월이 시작되기 보름 전부터 몸과 마음은 서서히 3월의 긴장을 느끼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힘을 잔뜩 주고 3월을 맞이하니, 어김없이 매년 3월엔 시름시름 3월 앓이를 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작별인사를 고하며 아쉬움에 자신의 존재를 반짝 내뿜을 즘, 3월 앓이는 절정에 이른다. 천천히 삐그덕대던 몸과 마음은 기어코 고장이 난다. 고장난 몸과 마음을 돌보며 3월을 앓고 있다.
올해만큼만 건강한 3월을 보내고 싶어 단단하게 몸과 마음을 동여멨는데도 어김없이 3월 앓이는 시작됐다. 고장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약을 입에 털어 넣다,
"애쓰며 살지 말자. 적당히 살자."라고 다짐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작은 일에 아둥바둥 조급해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늘어지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도 적당히 잘 지내며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적당히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건강도 적당히 챙기고 일도 적당히 잘 해서 적당한 성과도 내고 싶어졌다.
뭐든 적당히 살자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에서 꿈틀대던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적당히'라는 단어만 들어갔을 뿐 나는 완벽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당히'라는 단어를 앞세워 과하게 욕심을 내고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적당히'라는 욕심에 사로 잡힌 내게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이런 말을 들려준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있다.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기대는 우리를 미래로 내던져 앞날을 그려보는 즐거움을 앗아가고 미쳐 깨닫기도 전에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내게 만든다. 미래에 대해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하다.
미련한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고도 기뻐할 줄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절대 자신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는다.
3월이라는 시간도 어찌보면 흘러가는 내 삶의 한 조각일 뿐인데, 나는 유독 3월을 힘들어 하며 살고 있다. 시작점에 선 나의 미래가 몹시 불안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변화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서 낯선 동료들과도 얼른 가까워지고 낯선 업무도 척척 잘 해내고 싶은 욕망이 나를 시름시름 앓게 한 것 같다. 3월의 두려움은 2월의 시간도 빼앗아갔다. 2월의 나는 3월을 두려워하며 하염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던 3월의 시간이 절반이 지났다.
지나간 3월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두려움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갇혀 놓쳐 버린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전전긍긍 불안해 하던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제법 잘 적응했고 주변의 좋은 동료들을 만났으며 그럭저럭 평범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몽테뉴의 말처럼 현재의 삶에 충실했다면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넘어서서 지혜롭게 3월을 지냈을텐데, 그렇게 지내지 못했음에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아직 3월의 시간은 남아있다.
남아 있는 3월의 시간은 힘빼고 진짜 적당히 살고 싶다.
3월을 힘겨워 하고 계시다면, 부디 남아 있는 3월은 '만족을 놓친 미련함'이 아닌 '만족을 느끼는 지혜로움'으로 무장한 삶을 살아내시길 응원한다.
우리 함께 힘빼고, 3월을 견뎌보는 건 어떨까요.
'몽테뉴의 수상록', 몽테뉴, 안혜린 옮김, 메이트북스, p.68 에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