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ree Apr 02. 2024

갈등의 건강한 맛

올해도 어김없이 중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길고 긴 3월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고, 4월을 맞이했습니다.

3월은 정신없이 바빴고 몹쓸 3월 앓이를 이겨내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매년 비슷한 일을 하고, 매년 겪는 3월이 왜 그리 힘드냐고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학교현장은 매해 새롭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처음 만나보지? 이런 아이들도 있단다. 그러니 교사 너희들은 정신줄 단단히 동여 메야할 거야"라고 경고하듯 매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유형의 금쪽이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오랜만에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를 했습니다. 2007년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맡게 되는 1학년 담임이었습니다. 1학년 학생들의 끊임없는 질문과 돌발행동으로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이 아이들과 함께 2학년으로 올라왔습니다. 일 년 동안 정이 들어서 일까요. 중2병이라는 두려움의 상징인 그들이 예뻐 보입니다. 작년보다 한 뼘 더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들이 눈에 보이며 그들이 희한하게도 예뻐 보여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1학년 울렁증이 있나 봅니다. 1학년 수업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만나고 첫 시간부터 현기증이 왔어요. 현기증이 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발랄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의 엉뚱함, 이곳이 수업 중인 교실임을 분간하지 못하고 뱉어내는 거침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돌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수업 중에도 갑자기 일어납니다. 왜 일어났냐고 물었어요. 쉬는 시간에 친구가 시비를 걸어 속상해서 화난다고 말하며 사과를 받고 싶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꼭 지금 받아야겠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못 참겠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여러 사건들이 있습니다.)


작년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발랄함과 엉뚱함, 기묘하게 어긋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들과 마주할 때마다, '학교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고민과 직면합니다.

  



여러 모습 중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 아는 지나치게 나르시스즘적인 모습입니다.

나르시스즘이란, 지나친 자기애를 뜻하는 정신분석학 용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수선화)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해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끝까지 억지를 부리고, 자신은 존중받기를 바라지만 타인은 존중하지 않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타인의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매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에서 이런 모습을 나르시스즘적 고립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말합니다. 지나친 자기애가 스스로를 고립화시켜 자신을 해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진정한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타자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받은 경험들은 진정한 자존감의 양분이 됩니다. 자신만 존중받고 자신만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들 뿐입니다. 공허함은 법칙처럼 우울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우울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도 피폐하게 만들고야 맙니다.




오늘도 자신만을 알아달라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억울함을 잔뜩 안고 저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입니다. 갈등을 겪어보라고 잘 이겨내 보자고 격려하며 적당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조언합니다. 갈등해결에 일부의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건 당사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갈등 때문에 속도 끓여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머리도 아파봐야 그리고 속상함에 눈물도 흘려볼 때, 갈등과 마주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갈등 없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듯이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갈등 상황을 피하기만 하고 자신만 존중받길 바라는 것은 자존감을 해치는 지름길입니다.

시간이 걸려도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관계 맺음을 통해 단단한 자존감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싶다면 갈등을 이겨내 보길 권합니다.




오늘도 저를 찾으며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이 무척 많습니다.

"이거 해도 되나요, 저거 하면 안 되죠, 이거 잘 안 되는데 해주면 안 되나요. 수정테이프 없는데 빌려주실 수 있나요."라는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까지 받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지 현타가 옵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 몰라 어른인 제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에게 이야기해 보길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대인관계를 통한 다양한 경험만이 이들을 외롭게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에서 읽은 내용을 적으며 글을 마칩니다. "우울증이 증가하는 것은 사람들이 갈등 관계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알랭 에랭베르)"



  

매거진의 이전글 '반 배정 대박' 부적을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