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ree May 12. 2024

분가루 진동하는 교실에서.

화장할 권리 vs 학생다운 외모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아이들을 맞이했다. 

학생들은 8시 30분까지 교실 문을 통과해야 지각을 면할 수 있다. 나는 보통 3분 전에 교무실 문을 열고 교실로 향한다. 너무 일찍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싫어한다. 그리고 너무 늦게 들어가면 '선생님도 지각하는데, 우리도 늦게 오는 게 어때서.'라는 그들의 안일한 태도와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시간은 2분 전이다. 교무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교탁에 수첩을 올려두면 곧 종이 울린다. 아이들은 적당히 내 눈치를 살피며 핸드폰을 제출하고 자리에 앉는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독서시간이 있다. 8시 30분부터 15분간 독서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은데 중학생들은 이 시간에 대체적으로 멍을 때린다. 멍 때리는 것도 삶에서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담임이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몇 명은 따라 하지 않을까 싶어 꿋꿋하게 책을 들고 들어가 한 장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부터 A는 지속적으로 지각을 한다. 안타깝게 3분 정도 늦게 오더니 며칠 전부터 아예 대놓고 수업 시작 직전에 오고 있다. A는 분가루 냄새를 잔뜩 풍기며 당당히 교실 문을 열고 입성한다. 뽀얀 피부화장에 화려하고 진한 눈매와 반짝이며 글로시한 입술을 하고 나타난 그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이 나온다. 게다가 요즘엔 머리까지 곱게 세팅하고 등장한다. 아무리 일찍 일어난다 할지라도 저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까지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싶다. 어쩌면 그녀의 지각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만 해도 티슈를 주고 화장을 지우라고 소리쳤겠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피어싱도 귀걸이도 개수와 상관없이 용인하는 시대다.(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투명한 것은 모두 용인한다.) 그리고 괜히 함부로 화장을 지우라고 했다간 역풍을 맞기 쉽다. 역풍은 파란만장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나만 피곤해지는 복잡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괜한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레 깨달은 진리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학생들에게 과한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과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면 되도록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불편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는 사실만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학생의 잘못을 질책하기보다 교사인 나의 감정을 표현한다. 요즘 아이들은 비난과 비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엔 잘못한 것이 없어도 혼났던 적이 있다. 내 성적이 올랐음에도 학급 평균이 떨어졌다고 방과 후에 기합을 받은 기억도 있다. 억울한 마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삭이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억울한 것, 분한 것을 절대 못 참는다. 그렇다 보니 억울함을 가득 안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느낀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들에게 질책해 봤자 당장 고쳐야겠다는 의지도 없고 잘못을 지적하는 나만 나쁜 사람이 되기 쉽다.


A에게도 사실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지각이네. 벌점이야. 화장도 했네 또 벌점이야. 네가 자꾸 벌점을 받으니 선생님이 안타깝고 속상하네."라고. 그녀에게 관찰한 사실을 전달하고 내가 느낀 감정을 짧게 전한 뒤 교실 문을 나오는데 '도대체 저 아이는 무슨 생각으로 분가루 냄새를 풀풀 풍기며 학교에 오는 걸까'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화장하는 아이들은 매년 조금씩 늘고 있다. 진하게 하지 않을 뿐 다수의 아이들은 베이스와 틴트 정도는 거의 하는 편이다. 화장하는 아이들은 많아졌지만 학교에서 대처하는 방법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화장을 했다면 즉시 지우게 했다. 집에 다녀오라고 한 적도 있고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니 부모님을 학교애 소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의 화장은 용인하는 분위기이며 A처럼 지나칠 경우에만 벌점을 주는 것으로 지도한다. 분가루 진동하는 교실에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예 학교에서 화장을 100퍼센트 허용하는 건 어떨지.'


 90년대 초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외화에서 본 미국 학교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머리가 길고 옷도 자유롭고 화장도 하고 심지어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함께 사귀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 학교와 너무 대조적이라 때론 낯설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그 시절 내가 TV에서 보던 외국 학교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이런 상황에 엄격한 생활지도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칙에 나와 있는 "학생다운 복장과 외모"는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교사인 나도 궁금하다.




종례가 끝나고 A에게 슬며시 다가가 벌점을 받으면서까지 화장을 하고 오는 이유가 뭔지 물어봤다. A는 "화장하는 게 더 예쁘잖아요. 제 얼굴을 꾸밀 권리는 제게 있어요"라고 답했다. A의 말을 들으니 화장할 권리를 간섭하고 제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는 화장하지 않는 맨 얼굴이 순수하다는 어른의 고정관념과 화장품이 피부에 해롭다는 편견을 조금 걷어내면 A의 학교생활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K-뷰티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화장품이 피부에 해로우니 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권리를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어떨까 싶다. 화장과 관련된 벌점이 없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갈등의 건강한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