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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Tree Jun 18. 2024

6월의 중학생을 조심하세요.

6월의 출근길은 지칩니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뻔한 일상이지만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에는 희한하게도 짜증지수가 경계선을 넘을 때가 많네요. 습한 기운이 더해지며 혹시 나도 분조장(분노조절장애)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이 생겨요. 분조장임을 애써 숨기며 제 직장인 학교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요.


그러던 며칠 전, 한 남자아이가 꺼이꺼이 울면서 교무실 문을 열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반 학생이더라고요. 저에게 와서는 집에 가겠다고 떼를 씁니다. 희한하게도 요즘 중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아주 많이 어린아이 같아요. 정말 이들이 과연 중학생일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겉모습은 흡사 성인 남성과 아주 유사하지만 몇 마디 말을 나누다 보면 '너 몇살이니?'라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레 듭니다. 저를 찾아 온 남학생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집에 보내달라고 징징댑니다. 아이에게 물 한잔을 건네고 이런 행동을 하는 연유를 차분히 질문합니다. 아이는 자초지종을 두리뭉실하게 설명합니다. 저 역시 물을 한 잔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고 무작정 집에 갈 수 없다고, 원일을 알아야 집에 보내줄 수 있다고 말해봅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보니 속상한 일 있나 보네. 네가 이렇게 울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도 참 속상하다.”     

아이는 화를 조금 삭히는 눈치였어요. 이때다 싶어 얼른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무슨 일인지 선생님에게 얘기해줄 수 있을까? 네게 도움을 주고 싶구나.”라고요.

사실 저도 사람인지라 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화 내고, 소리지르고,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 중학생과는 단호하지만 다정한 AI가 되어 말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다정한 AI는 늘 나 전달법을 사용해서 말합니다. 너의 잘못보다 자의 감정을 말하죠. 학생들과 대화할 때는 다정한 AI가 되려 노력합니다.

     

아이는 엄마를 소재로 패드립 발언을 한 옆 짝꿍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났더라고요. 감히 우리 엄마를 건드렸다며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겠다는 말까지 합니다. 아이는 시원한 냉수와 달콤한 캬라멜 몇 개를 먹더니 마음이 조금 누구러져 교실로 돌아가 남아 있는 수업 두 시간을 마무리하고 귀가했습니다.

여기서 제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꺼이꺼이 울면서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패드립 가해자로 지목당한 아이는 예전에는 장난으로 받아주더니, 왜 지금 와서 자신이 패륜행동을 저지른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어야하는지 몹시 억울해했어요. 


세상을 살다보면 어떨 때는 괜찮던 일들이 안 괜찮아지는 날이 있습니다. 농담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날이 있고, 그냥 스치듯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의 말이 가슴에 비수를 꽃는 날도 있는 셈이죠.


6월의 습하고 덥고 불쾌한 감정이 정점을 찍던 그 날이 그랬어요.     




중학생들의 감정은 날씨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날씨뿐 아니라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마음이 분주해지면 자연스레 짜증이 늘어나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짜증은 예전엔 장난이었던 것도 장난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죠.

 

6월. 

중학생들은 몸과 마음이 아주 분주해져요각종 수행평가 제출과 기말고사 준비까지 더해져 정말 분주하거든요. 공부는 안하고 노력은 안하지만 성적만큼은 잘 받고 싶어해요. 참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심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학생들은 6월에 많이 지쳐있어요. 자연스레 짜증도 늘어나고요.     

3월은 새 학기라 버틸 힘이 있고, 4월은 이제 적응돼서 학교생활에 재미 좀 붙였으니 버텨봅니다.

5월은 여러 가지 행사로 며칠 학교를 빠지니 그 낙으로 버틸 수 있어요.

하지만 6월은 버텨낼 명분이 전혀 없죠. 


버텨야 하는데 알고는 있지만, 날씨는 불쾌하고 하라는 건 많으니 짜증이 날 수 밖에요. 

그리고 제일 싫은 기말고사도 이들을 기다리고 있고요.      

6월은 중학생들에게 힘든 달입니다. 물론 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들에게도 6월은 몹시 힘든 달이고요.

감정선이 삐그덕대는 6월의 중학생들과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저는 6월을 엄청 조심합니다. 사소하게 눈에 거슬리는 작은 일들은 가끔 보고도 못 본척 하기도 해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6월의 고비를 잘 넘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6월의 중학생들을 조심하세요. 이들이 가장 날카로워지는 시기거든요.

다행히 6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중학생들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정도 시간과 함께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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