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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인의 호수토리 Aug 18. 2020

신데렐라의 NBA 결승 진출기 (2부)

1999 뉴욕 닉스 스토리

뉴욕 닉스. 마이애미 히트.


코트 전역에 대한 피지컬 디펜스와 더불어 슬로우 템포하프코트 세트 오펜스가 대세였던 90년대의 NBA에서, 뉴욕 닉스와 마이애미 히트는 위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의 사전적 정의를 확립한 선구자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로 너무나도 닮아있었던 두 팀. 그 배경에는 마이애미 히트의 감독 팻 라일리가 있었다.


팻 라일리 감독, 그리고 아들 팀 하더웨이 주니어보다 5배 정도 더 잘했던 팀 하더웨이 (출처 : BLEACHER REPORT)


1991년부터 4년간 뉴욕 닉스를 지도하며 팀을 챔피언십 컨텐더로 격상시킨 라일리 감독. 그는 1995년 오프시즌 중 닉스 감독직에서 물러날 의사를 '팩스'를 통해 일방적으로 닉스 구단에 통보하면서, 닉스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소름 끼치는 빡침과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팩스게이트 직후 마이애미 히트의 신임 사장 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또 다른 충격을 가져다준 라일리 감독은, 본인이 과거에 닉스 구단에 주입시켰던 블루칼라 아이덴티티를 히트 구단 전체에 고스란히 되새김질하면서 마이애미를 단숨에 동부의 신흥 강호팀으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97년부터 무려 4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만나게 되는 두 팀은, 매 시리즈마다 UFC를 방불케 하는 피지컬 퍼포먼스를 선사하며 팬들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I. '97 플레이오프 동부 2라운드  #덤블링게이트


1997년 5월 14일. '97 플레이오프 동부 2라운드 5차전. 이미 격앙된 분위기 속에 수많은 테크니컬 파울이 난무하는 가운데, 히트의 PJ 브라운이 마치 덤블링을 연상시키는 아크로바틱한 무브를 통해 닉스의 포인트 가드 찰리 워드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코트 위 난투극이 벌어진다. 난투극에 가한 선수들 6명이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 시리즈는,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이애미 히트의 4승 3패 시리즈 승으로 마무리된다.

* 닉스에서만 총 5명의 선수들이 출전 정지 처분을 받게 된 가운데, 경기당 최소 9명의 선수들이 출전해야 하는 리그 규정에 의거하여 패트릭 유잉/앨런 휴스턴/찰리 워드가 6차전, 그리고 래리 존슨/존 스탁스가 7차전에 결장하게 된다. 덤블링게이트의 주범 PJ 브라운은 6, 7차전 2경기 출전 정지.


1997 #덤블링게이트의 현장 (출처 : REUTERS)


II. '98 플레이오프 동부 1라운드  #복싱게이트


1998년 4월 30일. '98 플레이오프 동부 1라운드 4차전. #덤블링게이트의 후속편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솥밥을 먹던 샬럿 호네츠 시절부터 불화설이 난무했던 래리 존슨과 알론조 모닝은, 경기 종료 직전 일기토를 선언하며 농구 코트 위에서 복싱 매치업을 생중계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펀치가 오고 갔으나 적중 횟수 0회를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복싱게이트는, 22년이 지난 지금은 재프 밴 건디 닉스 감독이 알론조 모닝의 종아리를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인생급 굴욕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출전 정지 처분으로 인해 복싱 메이트 없이 치러진 마지막 5차전*에서, 뉴욕 닉스는 3승 2패로 시리즈를 승리하며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다.

*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 시리즈는 2003년부터 BEST-OF-SEVEN 체제로 개편된다.


제프 밴 건디 감독에게 인생급 굴욕을 안겨준 #복싱게이트 (출처 : NY DAILY NEWS)


팩스/덤블링/복싱으로 얼룩진 두 팀의 과거. 이제 '99 플레이오프에서 두 팀의 번째 매치업이 시작된다.




# ROUND I  :  마이애미 히트 (동부 1번 시드, 정규시즌 33승 17패)


닉스와 히트의 닮은꼴은 스탯으로도 드러났다. 98~99 정규시즌 기준 히트의 팀 평균 실점은 84.0점으로 리그 2위, 닉스는 85.4점으로 리그 4위를 기록하며 라일리 표 최상위급 디펜시브 팀다운 기록을 선보인다. 이에 반해 공격 부문에서는 히트가 팀 평균 89.0점으로 23위, 닉스는 85.4점으로 27위에 오르며 다이내믹한 얼리 오펜스를 꿈꾸는 팬들을 오열하게 만들었다.*

*  BASKETBALL-REFERENCE.COM 자료에 의하면 98~99 시즌의 리그 경기 PACE, 즉 경기당 포제션의 개수는 88.9로 이 지표가 측정되기 시작한 73~74 시즌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참고로 19~20 시즌의 리그 경기 PACE는 100.3으로, 98~99 시즌과 무려 11.4나 차이가 난다.


죠지타운 대학 동문이자 절친인 알론조 모닝 - 패트릭 유잉 센터 매치업 (출처 : AP)


리그 최상위급 방패 간의 맞대결. 예상대로 양 팀은 소름 끼치는 터프 디펜스를 기반으로 '누가 더 적게 득점하나' 대결을 이어간다. 표면상으로는 챔피언십 컨텐더인 동부 콘퍼런스 1위 팀과 언더독 8위 팀 간의 매치업이었지만, 각종 게이트를 딛고 올라온 뉴욕 닉스의 멘털은 전형적인 8위 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1차전부터 원정에서 20점 차 대승을 거둔 닉스는, 4차전까지 히트와 승패를 주고받은 뒤 결정적 5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간다.


'WIN OR GO HOME'

 

대망의 마지막 5차전. 히트의 홈구장 마이애미 아레나.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수비 ONLY 농구. 경기 종료 2분 전 래리 존슨이 자말 매쉬번을 상대로 스핀 무브에 이은 득점에 성공하며 스코어는 닉스 74 : 73 히트. 이후 서로 자유투를 주고받은 양 팀은, 래리 존슨이 팀 하더웨이의 볼을 가로채며 닉스의 마지막 포제션만을 남겨둔 상황. 경기 종료 4.5초를 남기고 닉스 76 : 77 히트. 찰리 워드의 인바운드 패스를 받은 앨런 휴스턴이 던진 러닝 원핸드 점프샷은, 림 앞부분에 맞고 튕겨 올라가 백보드에 닿은 후 림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앨런 휴스턴의 시리즈 위닝 러닝 원핸드 점프샷 (출처 : BLEACHER REPORT)


1차전  히트 75 : 95 닉스

2차전  히트 83 : 73 닉스

3차전  히트 73 : 97 닉스

4차전  히트 87 : 72 닉스

5차전  히트 77 : 78 닉스


콘퍼런스 1번 시드 팀을 8번 시드 팀이 꺾는 대이변. 앨런 휴스턴의 게임 위닝샷은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뉴욕 닉스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 중 하나로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Q :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콘퍼런스 1번 시드 팀을 꺾은 8번 시드 팀은?

1994 덴버 너게츠 (vs 시애틀 슈퍼소닉스)

1999 뉴욕 닉스 (vs 마이애미 히트)

2007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vs 댈러스 매버릭스)

2011 멤피스 그리즐리스 (vs 샌 안토니오 스퍼스)

2012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vs 시카고 불스)


앨런 휴스턴의 'THE SHOT' 그 직후 (출처 : ELITESPORTSNY)


훗날 재프 밴 건디는 MSG 네트워크와의 인터뷰 중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긴다.


"앨런 휴스턴의 한방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인생을 바꿨다"

"One Allan Houston shot saved jobs and altered lives"




ROUND II  :  애틀랜타 호크스 (동부 4번 시드, 정규시즌 31승 19패)


SWEEP. (THE END)


1차전  호크스 92 : 100 닉스

2차전  호크스 70 : 77 닉스

3차전  호크스 78 : 90 닉스

4차전  호크스 66 : 79 닉스


그냥 넘어가면 아쉬우니 코멘트 하나 정도 남기자면, 무대가 커지면 커질수록 빛났던 라트렐 스프리웰의 강심장 플레이가 빛났던 시리즈였다. 시리즈 내내 식스맨으로 출전했음에도 불구, 결정적인 클러치 상황에서는 항상 코트 위를 누비면서 팀 내 최다인 평균 34분의 출전시간과 더불어 22.5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애틀랜타 시리즈를 통해 뉴욕의 넘버 1 옵션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라트렐 스프리웰 (출처 : NEW YORK POST)




ESPN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9화의 배경이었던 1998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래리 버드 감독이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초박빙 승부를 펼쳤으나, 결국 시카고 불스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시즌 마지막 팀 미팅에서 페이서스 선수들 앞에 선 버드 감독은 다음 시즌 기필코 우승할 것을 맹세하며 자리를 뜬다.


98~99 시즌 내내 'THIS IS OUR YEAR'를 외치던 버드 감독의 페이서스는, 정규시즌 33승 17패로 마이애미 히트와 함께 승률 기준 동부 콘퍼런스 공동 1위*를 기록하며 기세 당당하게 플레이오프에 임한다.

* 상대전적에서 앞서 있던 히트가 1번 시드를 받게 되면서 페이서스는 2번 시드 배정


페이서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레지 밀러와 래리 버드 (출처 : BLEACHER REPORT)


닉스 팬들에게 히트의 팻 라일리 감독이 배신감과 빡침의 대상이었다면, 페이서스의 레지 밀러는 '혐오감과 두려움의 공존'*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스와 페이서스는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90년대에만 무려 다섯 차례나 마주치게 되면서 매 시리즈마다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 NBA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 1993 동부 1라운드  닉스 3 : 1 페이서스

- 1994 동부 3라운드  닉스 4 : 3 페이서스

- 1995 동부 2라운드  닉스 3 : 4 페이서스

- 1998 동부 2라운드  닉스 1 : 4 페이서스

- 1999 동부 3라운드  ??


1995 닉스-페이서스 시리즈 1차전. 지나가는 강아지도 한 번쯤은 들어봤다는 '밀러 타임'이 시작된다. 경기 마지막 8.9초간 무려 8득점(..)을 기록하며 승패를 뒤집어버린 레지 밀러는, MSG 코트 위에서 포효하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트래쉬 토킹을 난사한다. 뉴욕 시 전체의 공식 빌런(VILLAIN)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10년 방영된 미국 ESPN의 다큐멘터리 'WINNING TIME: REGGIE MILLER VS. THE NY KNICKS'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듯이, 닉스의 홈구장이자 농구의 메카로 불리는 MSG(MADISON SQUARE GARDEN)에 밀집한 닉스 팬들의 목표는 한 하나였다 : 트래쉬토커 레지 밀러의 주둥이 틀어막기. 


90년대 마지막 플레이오프 대결을 앞둔 두 팀. 상대 전적은 2대 2로 동률. 빌런의 패배를 간절히 염원하는 닉스 팬들의 응원 속에 다섯번 째 시리즈가 시작된다.


레지 밀러의 3점 슛은 MSG의 닉스 팬들에게 재앙 그 자체였다 (출처 : IPACERS.COM)




# ROUND III  :  인디애나 페이서스 (동부 2번 시드, 정규시즌 33승 17패)


인디애나 원정에서 힘겹게 1차전을 승리하며 시리즈를 시작한 닉스는, 2차전 경기 도중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패트릭 유잉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이 되면서 어마어마한 전력 손실을 입는다. 고작 2점 차로 아쉽게 2차전을 내준 닉스는, 3차전에서는 페이서스의 올스타 센터 릭 스미츠에게 골밑을 압도당하며 클러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경기 종료 12초 전. 스코어는 닉스 88 : 91 페이서스. 제프 밴 건디 감독의 전술보드에는 앨런 휴스턴을 위한 세트 플레이가 그려져 있었지만, 페이서스의 적극적인 디나이 디펜스로 인해 찰리 워드의 인바운드 패스는 하프라인까지 뛰쳐나온 래리 존슨에게 겨우 전달된다.


한 차례의 잽 스탭 후 왼쪽으로 페네트레이션을 시도한 래리 존슨은, 페이서스의 아이솔레이션 디펜더 앤토니오 데이비스의 파울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필사적인 3점 슛을 시도한다.


심판의 한 템포 늦은 파울 콜과 함께,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연속동작으로 인정된 래리 존슨의 3점 슛은 림을 깨끗이 통과하며 MSG를 광란의 도가니로 둔갑시킨다.


3차전 막판 래리 존슨의 3점 성공 직후  (출처 : NY POST)


존슨의 자유투 성공으로 4점 플레이가 완성되면서 스코어는 닉스 92 : 91 페이서스. 닉스는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1승을 챙기며 2대 1로 시리즈 리드를 가져간다.


4점 플레이와 함께 닉스의 3차전 승리를 완성시키는 래리 존슨 (출처 : NY DAILY NEWS)


당시 닉스의 선발 포인트 가드였던 찰리 워드는 훗날 'THE RINGER'와의 인터뷰를 통해, 4점 플레이 직후 MSG에 울려 퍼진 팬들의 함성소리가 아직까지도 가슴속까지 진동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페이서스가 4차전을 가져가며 시리즈가 2대 2 동점이 된 가운데, 5차전의 주인공은 닉스의 라트렐 스프리웰과 마커스 캠비였다. 각각 29점과 21점을 기록하며 인디애나 원정에서 팬들의 야유를 잠재운 두 선수들은, 90년대 닉스의 전통 농구와는 다른 젊고 다이내믹한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MSG로 다시 돌아온 6차전. 닉스는 하드코어 디펜스의 정점을 찍으면서 빌런 레지 밀러의 야투를 3/18로 틀어막고 무려 26개나 되는 페이서스의 실책을 유발한다. 이번 시리즈 역시 클로저의 역할은 앨런 휴스턴의 몫이었다. 후반전에 야투 시도 9개 중 8개를 적중시킨 휴스턴은 총 32득점을 올리며 인생경기를 완성, 닉스를 결승전으로 진출시키는 일등 공신이 된다.


1차전  페이서스 90 : 93 닉스

2차전  페이서스 88 : 86 닉스 (유잉 아킬레스건 부상, 시즌 아웃)

3차전  페이서스 91 : 92 닉스

4차전  페이서스 90 : 78 닉스

5차전  페이서스 94 : 101 닉스

6차전  페이서스 82 : 90 닉스


2017년 닉스 OB 행사에 참석했던 라트렐 스프리웰은 1999 닉스를 회상하며 "당시 우리는 닉스의 선수라는데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라고 전한다.


닉스 프라이드가 살아 숨 쉬는 순간 (출처 : CBS)




# LAST ROUND  :  샌 안토니오 스퍼스 (서부 1번 시드, 정규시즌 37승 13패)


결승전 시작에 앞서 닉스 팬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달된다. 페이서스 시리즈 마지막 6차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던 래리 존슨이 결국 시즌 아웃이 되면서, 닉스는 패트릭 유잉에 이어 선발 파워 포워드마저 잃은 채 샌 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결승 매치업에 임하게 된다.


부상으로 인해 1999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한 패트릭 유잉과 래리 존슨 (출처 : THEUNDEFEATED)


당시 MSG CABLE의 PLAY-BY-PLAY 아나운서였던 마이크 브린에 의하면, 1999 결승전 매치업은 닉스가 '체력적 그리고 신체적 측면에서 완전히 열세였던 시리즈'였다. 비록 라트렐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이 시리즈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분전했으나, 이 두 명을 제외하고는 평균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스퍼스의 가드 재런 잭슨(멤피스의 재런 잭슨 주니어의 부친이 맞다)이 결승 시리즈에서 총 9개의 3점을 성공시킨 반면, 닉스는 팀 전체가 겨우 11개(..)를 성공시키는데 그쳤다.


샌 안토니오 스퍼스는 정규시즌 초반 6승 8패의 부진을 씻고 마지막 36경기 중 31경기를 승리하며 리그 전체 1위로 플레이오프에 임한다. 서부 콘퍼런스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LA 레이커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연달아 박살 내면서 플레이오프 세 시리즈 통틀어 고작 한 경기만을 패하며 결승전에 진출한 샌 안토니오 스퍼스는 누가 봐도 압도적인 챔피언십 페이보릿이었다.


불과 2년 차에 이미 팀을 결승으로 이끈 팀 던컨은 결승 시리즈 평균 출전시간 46분(!) / 27득점 / 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유잉과 존슨이 없는 닉스의 골밑을 초토화시킨다.


1999 결승전에서 닉스에 남아 있던 빅맨들을 갖고 놀았던 팀 던컨 (출처 : AIRALAMO)


1차전  샌 안토니오 89 : 77 닉스

2차전  샌 안토니오 80 : 67 닉스

3차전  샌 안토니오 81 : 89 닉스

4차전  샌 안토니오 96 : 89 닉스

5차전  샌 안토니오 78 : 77 닉스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결승 시리즈를 패하기는 했지만, 1999 뉴욕 닉스는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NBA 결승전 진출에 성공한 역대 유일무이 플레이오프 8번 시드 팀으로 남아 있다. 1999 시즌 내내 각종 드라마틱한 잡음과 열세를 딛고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닉스는, 아직까지도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끈기 있는 닉스 팬들에게 '닉스 프라이드'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결승 시리즈 마지막 5차전에서 35득점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했던 라트렐 스프리웰은, 단 1년 만에 리그 최악의 악동 이미지를 벗고 닉스 구단의 '팬 페이보릿'으로 등극한다. 5차전에서 스프리웰의 마지막 점프샷이 림을 벗어나며 스퍼스의 우승이 확정되었지만, 스프리웰이 1999 시즌에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블루 칼라 스타일에 익숙한 닉스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투핸드 몬스터 슬램 덩크의 장인이었던 라트렐 스프리웰 (출처 : NBA.COM)


"나는 실수를 저질렀어. 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어 있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은 내가 스포츠의 잘못된 사례라 비난하지. 나는 내가 올스타에 3번이나 선정되었다고 말할 거야. 사람들은 내가 최악의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라고 하지. 나는 내가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하겠어." (라트렐 스프리웰, 1999 AND1 광고 중)

"I've made mistakes, but I don't let them keep me down. People say I'm what's wrong with sports. I say I'm a three-time NBA All-Star. People say I'm America's worst nightmare. I say I'm the American Dream."



A : NBA 플레이오프에서 라스트 시드를 배정받은 팀이 결승전에 진출한 횟수는 1회



*1999 뉴욕 닉스 스토리는 NBA ON AIR 시즌 5 에피소드 40, 41화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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