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침대는 어떤 공간인가요?
지금, 새벽 3시를 3분 남겨놓은 시각.. 5시간째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자연스럽게 집에 들어오면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향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침대가 나의 사무 공간이 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침대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 루틴도 생겨났다.
1. 침대 오른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물이나 음료를 준비해둔다.
2. 베개를 겹쳐 등받이를 만든다.
3. 배드 트레이를 침대에 올려 책상을 만든다.
4. 각종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온다.
5. 요즘은 날이 너무나도 무덥기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켠다. (단 바람의 방향이 절대 나의 얼굴 쪽을 향하진 않게 한다.)
이상하게 고정된 사무실이나 책상과 같은 공간보다 유독 침대에서 집중이 잘 되는 요즘이다. 수많은 기획안들을 포함한 나의 작업물들은 그렇게 침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침대라는 공간의 특성상 잠들기 전 작업을 마치고 바로 누워서 잠을 청할 수 있기에 대부분 작업의 마무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렇듯 자꾸 침대 위에서 모든 업무를 해결하다 보니, 가끔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버젓이 마련된 책상과 사무공간에는 책과 서류 등의 물건들이 쌓여가고, 사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던 중, 비트라(Vitra)에서 발간한 소식지 중 ‘New dynamics in the home’ 속 한 페이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Uncovering a new workplace (새로운 업무 공간 발견하기)’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함께 사용된 사진 작업은 정말 나를 보는 듯했다. 베개 몇 개를 쌓아두고 등을 기대앉아 통화 중인 한 남자,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문서들. 침대 위에 차려진 사무실.
해당 글에 따르면, 2012년 이미 월스트리트 저널에 뉴욕의 젊은 전문인력 중 80%가 주기적으로 침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난 적도 있다고 한다. 네트워크와 기술력들 그리고 뉴미디어가 발달하자 자연스레 업무공간에 대한 규정과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침실이 아닌 침대 그 자체를 사무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와 전제들이 있었는데, 더욱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공간에 대한 개념이 빠르게 변화되다 보니 침대 그 자체가 가구를 넘어 새로운 공간으로써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가 기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나의 행동과 공간 활용 방식의 변화가 인류의 역사상 굉장히 당연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 속에서 말하는 그 막연한 다수의 사람이 아닌, 실제로 사람들이 침대라는 공간을 사무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주변인들에게도 자신만의 침대 활용법을 물어보려 한다.)
물론, 침대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것이 개인의 건강과 지속 가능함에 있어 얼마나 긍정적인 삶의 행동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레 움직임과 운동량은 줄게 되고 자칫 게을러지기 쉽고, 그렇기에 나 또한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였으니...
그래도 아직까지 해야 하는 일들을 잘 완성해왔고. 또 오래도록은 책상이 집중이 잘되는 시간들도 있었기에, 나의 무의식 속에서 ‘집중에 적합한 환경을 고르는 기능이 변화하는 시기’의 주기적 순환이 있지 않나 생각하며 너무 자책하진 않기로 한다. 요즘 낮시간에는 많은 장소들을 오가며 일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만큼은 특히 가장 무방비한 장소를 찾아 정착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집 안에서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이 침대에서 다른 곳으로 바뀌게 되면 또 그때의 심리에 대해 글을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