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들에 계속됩니다.
지금 또 나는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2021년 11월 12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렸고, 하루하루를 정말 알차게 열심히 살았다. ‘머천다이징’이라는 새로운 모험, 현에서의 행사 오픈을 위한 각종 과정, 동시에 한국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사업들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 그 와중에 코로나19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런던이라 제대로 즐겨야 할 것들을 즐기고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과의 시간도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하루도 분주히 날개 짓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금은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들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음에도 늦은 시간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켜면 어느새 잠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결국 지금은 비행기 안, 핸드폰 네트워크 연결이 없는 탓에 유일하게 나랑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자 밀려오는 잠을 선택할까 글을 적어 내려갈까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런던, 런던에서 서울 11-12시간. 짧지 않은 비행이라 때로는 지루함에 시간이 줄지 않는 비행도 있지만, 가끔은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은 그 시간이 가는 게 아까울 때도 있다.
오늘은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오를 때 추적추적 비가 왔고, 한 달을 함께 보냈던 승민 큐레이터님과의 배웅을 뒤로하는 순간 서로 함께했던 모든 시간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지난 한 달의 앨범을 열어보았고 그 새 엄청나게 정이 들어버린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래서 지난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조금 욕심내서 쪼게 써볼 생각이다.
요즘 같이 전염병의 대유행으로 세상의 크고 작은 부분들이 예상치 못한 타격으로 힘들어하는 시대에, 한국과 런던을 오가며 ‘문화와 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다.
‘슬리퍼스 써밋’ 꿈을 꾸는 자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가길 반복하며 팀을 꾸리고 문화와 예술로 우리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곳(플랫폼). 그리고 그곳을 더욱 단단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김승민 큐레이터님과 나는 법인 회사의 형태로 이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슬리퍼스 써밋은 늘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해 나가고 있으며 당연히 그 지리적 위치, 형태, 참여자의 전문 분야 등 모든 요소에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다.
화상통화가 보편화된 지금보다도 훨씬 전부터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온라인 상으로 미팅을 하고 행사가 실질적으로 벌어지는 순간 모두 트랜스포머처럼 합쳐져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익숙한 집단이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든 우리 사무실이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왔던 것 같다.
이러한 업무 형태를 유지해 왔기에 이번에도 부담 없이 런던행을 결정할 수 있었다(물론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출장 일정이 미뤄지긴 하였지만). 이번에도 동시에 12월 초 열린 KOTRA와 함께한 ‘케이 뷰티 & 케이 팝 팝업 스토어’ 공간 디자인 및 새롭게 꾸려나가고 있는 브랜드인 SSKETCH(스케치)의 참여 및 판매부터 스케치의 내부적 구조와 체계를 갖추는 일, 내년 소마미술관에서의 전시, 공주시 백제문화제 기본 기획, 사부작사부작 이음 창작소 관련 논의 등을 현장에서 그리고 온라인, 원격으로 진행해 나갔다.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팀의 구성원들이 다르고 각기 있는 곳들이 다 다르기에 런던에 옴으로 줌으로 만나고 실제로 뵙지 못했던 많은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을 때 모두가 각자의 역할과 능력을 너무 잘 아는 ‘전문가’들이었고 그 와중에 서로를 신경 써주는 마음까지도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여태까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감사한 점은 주변에 너무나도 멋지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담감들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존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생각하면서도 다들 각기 다른 빛으로 멋지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내는 빛이 터무니없이 희미하진 않은지 한없이 작아지고 자책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돌아보면 지난 한 달도 좋았던 기억과 감정이 상대적으로 커다랗게 기억되고 있지만 그 뒤에 크고 작은 걱정과 자책들이 분명히 있기도 하였다. 그런 찰나의 조각들도 시나브로 쌓여 긍정적인 경험과 함께 나의 성장에 기여하길 바란다.
2021년 연말 런던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 감사를 표하며.
문화예술 기획자 도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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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조금 바뀌었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런던에서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