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나 운이 좋았다. 마치 작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확산되고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벨롱벨롱나우 제주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시점에 과연 행사를 유치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하던 중, 기적처럼 행사가 있던 그 주 잠시 제주의 방역 단계가 1단계로 낮아졌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내가 출국하던 시기, 런던의 방역 관련 대응 장벽이 낮아졌을 때라 한국에서의 백신 접종도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별도의 해외 출국을 위한 PCR 테스트 음성 확인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코로나19가 없던 시기처럼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주일 정도 즐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런던을 나간다고 하니 이곳저곳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잘 다녀오라며 부럽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나의 사진들을 보고 ‘요즘 런던은 어때? 나도 가고 싶은데 덕분에 나마 런던을 느끼게 더 자주 소식 전해줘’ 같은 메시지들을 받기도 했다. 나 또한 오랜만에 어떠한 제한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종종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다니기도 했으며 거리낌 없이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잠시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경험들을 많이 해본 편인데 말이다. 직업이 사람들을 모으고 문화, 예술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다 보니 작년부터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방역수칙과 상황들에 많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는 1년 넘게 준비한 페스티벌 (벨롱벨롱나우 페스티벌)의 진행 가능 여부가 걸려있었고 매 순간 언제 엎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지냈다.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준비해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에서 확진자가 몇 명이라고 발표하였는지, 점심엔 질병관리본부에 행사 관련 방역 방침이 바뀐 건 없는지 묻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가 팀원 중 한 명이라도 ‘제주도 확진자 발생’이라는 뉴스를 먼저 접하여 단톡에 공유가 되는 날엔 기획팀은 더욱 근심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행사를 두 달 앞둔 시점엔 온라인 페스티벌로 전격 대체하는 기획을 다시 하기도 하였고 제주도 동부, 서부를 가로질러 5곳의 베뉴를 사용하다 보니 방역 지침에 따라 갑작스레 행사에 공간을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통하였는지 무사히 전 프로그램 라이브 스트리밍과 함께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매번 다녀오는 출장마다 늘 방역 수칙을 어떻게 준수하였나를 국가에 보고서로 제출하여야 했고. 작성하게 되는 모든 기획안들에는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을 고려한 플랜 B, C까지 준비해야 했다. 사부작사부작 예술 공동체 및 수시로 많은 인원이 모여 진행하여야 하는 행사들은 모두 줌 미팅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8월엔 사전 예약과 시간마다 방문 제한 인원을 지켜가며 <EVER AFTER: 무령왕릉> 전시를 무사히 마치기도 했다.
그렇게 코로나19와 함께 공존할 줄 아는 노하우를 갖춘 기획자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던 중 8월 말에는 런던에서의 전시 <TOUCH>를 위한 출장 준비를 때문에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사방팔방 알아보고, 20대-30대는 거의 백신을 맞지 않았을 시점 기업체 해외 출장을 사유로 주변 친구들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백신을 맞게 되었다. 20-30대가 화이자 1차를 맞고 부작용이 있었다는 기사들이 처음 뜨기 시작할 시점이라 겁이 나기도 했다. 1차 백신을 접종하였을 때가 스케치(SSKETCH) 네일 재고 생산과 전시 <EVER AFTER: 무령왕릉> 준비를 하며 이곳저곳 몸을 쓰고 뛰어다녀 피곤이 극에 달했던지라 더 불안해하기도 했다. 큰 부작용은 없었으나 며칠을 밤만 되면 끙끙 앓았다.
그 후 2차 접종도 순탄친 않았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갑작스레 백신 접종 기간이 3주에서 6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나의 출국 날짜가 잡혀 있었기에 또다시 사방팔방 관련 기관들에 전화를 하여 간신히 백신을 앞당겨 맞을 수 있었다. 그날 역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EVER AFTER: 무령왕릉> 설치를 위하여 3일간 밤을 새우고 전시를 오픈한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백신을 안 맞고 불안하게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다행이다 여겼고 전시를 마감하고 런던에서의 전시를 위하여 작품들을 챙기고 출국 준비를 하던 중,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전 브런치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출국 이틀 전에 동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국가에선 나를 밀접 접촉자로 분류하여 자가격리 14일을 통보하고 출국을 금지하였다. 동생은 병상이 부족하단 이유로 38.9도에 달하는 고열을 집에서 이겨내다 3일 후 간신히 격리치료센터에 갈 수 있었다. 워낙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진 동생이라 온 집안 식구들이 동생 걱정으로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고, 그 와중에 나는 런던에서의 전시를 직접 참여하지 못해 미안함과 속상함에 감정적인 통제가 어렵기도 한 격리 시간을 보냈다.
(런던에서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였던 전시 <TOUCH> 관련 기사)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9/851036/
동생은 다행히 빠르게 호전되었고 그렇게 나는 14일 격리를 마치고 다시 런던 출장 날짜가 잡히기 까지, 서울에서 양평으로, 공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드디어 다녀온 것이 이번 출장이었다. 출국 하루 전까지도 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지, 런던 현지의 상황은 어떤지, 한국 언론에서 말하듯 확진자가 넘쳐나는 국가에 지금 나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출장 내내 런던에서는 수많은 영감들을 마주하며 정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시에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바로 연말 정산을 하고 진행해야 할 일정들을 계산하며 차곡차곡 시간들을 보내왔다.
그러니 역시나 그냥 지나갈 리가 없지...
전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이 감염이 발생했고 영국도 모두 다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머지않은 날짜에 다시 락다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시각 한국에서는 급증한 확진자 수로 인해 현지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변이에 대한 사실이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또 한국에 도착하면 자가격리 10일을 해야 한다.
이미 한번 해보아 얼마나 답답한 줄 알기에... 착잡하지만 차분히 앉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연말 정산, 보고 그리고 내년 행사 기획안들 작성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문화예술 기획자 도연희
코로나19를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음 편에선 이번 런던 출장의 가장 주요한 행사 진행이었던 팝업 스토어 준비와 브랜드 론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