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실: <괴물>은 진실을 다루는 영화다. - 진실은 단일하지 않다. 진실은 여러 파편으로 쪼개져 있다고 나는 본다. 우리는 각자 파편 한 개씩을 들고 우리의 관점으로 세상을 그리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파편을 주워 맞춰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럴 체력이나 마음이 없기도 하다. - 당연히 파편 하나만으로는 모든 그림을 볼 수 없다. 종종, 어쩌면 자주, 우리는 파편을 몇 개 채 모으지도 못했으면서 진정한 의미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 <괴물>은 그런 세태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헛소문과 절반의 진실은 사람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 - 진실은 터져 나오면서도 무시되거나, 종종 벽장 속에 갇혀 아예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괴물>에서는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경험과, 말하고 싶어도 들어주지 않을까 봐 아예 말하지 못하는 경험이 모두 나온다.
2. 구조: 고레에다 감독은 그런 뜻을 알리기에 알맞은 구조를 썼다. - 고레에다 감독은 사오리, 호리, 미나토, 요리 등이 들고 있는 파편을 각자 순서대로 보여주는 방법을 썼다. 관객은 감독이 준 파편을 하나씩 맞춰 보게 되고, 마지막에 미나토와 요리의 파편을 맞춰 보면서 한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 관객에게 두 가지 효과를 준다고 생각했다. 먼저 각 인물에게 공감하면서 상당한 감정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은 올해 학교폭력과 교사의 노동권 침해란, <괴물>에서 다루는 두 가지 양상을 강렬하게 경험했기에 더욱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비슷한 현상을 일컫는 단어가 있다. 그 점이 제목을 짓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더불어 파편을 맞춰 보면서 복선을 회수하게 되므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고레에다 감독은 철저했다. 숏으로 보여준 신발, 카드 등의 물품은 모두 파편이 맞춰지면서 보통 물건이 아니었음이 알려진다. 이유 없이 삽입된 장면은 없었다.
3. '괴물': 고레에다 감독이 변명해 주지 않는 그것이 바로 괴물이다. - 나는 고레에다 감독이 준 파편을 맞춰 보면서 각자 할 말이 있고, 누구도 괴물이라 불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지난하고 정당한 싸움을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되어, 작은 파편만으로 쉬이 비난할 수 없다. (물론 관객이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 휩쓸리는 것도 이해한다.) - 그러나 고레에다 감독은 두 인물(누군지는 스포일러)만은 파편, 혹은 변명을 해주지 않는다. 나는 그 둘이 상징하는 가치가 바로 괴물이라고 본다. 상대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지 않고 깎아내리려는 모습, 남들과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고 수치심을 주려는 모습이다. 보통 이를 줄여서 ‘폭력’이라고 쓴다. 괴물이 사람으로 구현된다면 편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때를 좀 더 많이 보았다. 괴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 아쉽게도 우리는 ‘괴물’에게서 자유롭지 않다. "남자답지 못하다"라고 지나가듯, 악의 없이 말한 호리의 말은 여러 인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시련을 견뎌낸 미나토와 요리는 잘 살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왓챠피디아>에 "오해를 경유해서 이해에 이르는 경험 끝에 관객은 그 햇살 아래서 증인이 된다"란 한 줄 평을 남겼는데, 나는 적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동의한다.